서울특별시 구로구 경인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8년째 일하고 있는 김태연(영교·16년졸)씨는 시각장애 1급으로 약시다. 눈앞에 물체가 가까이 있을 때만 간신히 볼 수 있는 정도다. 그런 그가 교사로 부임해 일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김씨는 “(교사 부임 초기) 당시에는 불편함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돌아보니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연씨가 담임을 맡은 학급의 아침 조회를 하고 있다. 제공=김태연씨
김태연씨가 담임을 맡은 학급의 아침 조회를 하고 있다. 제공=김태연씨

 

차별 없는 교육 현장에서 차별받는 장애인 교원

MBTI 검사를 하면 I(내향성) 비율이 0%로 나올 정도로 외향적인 김씨도 경인중 부임 초기엔 소극적이고 위축됐었다. “제가 약간 바보같이 느껴졌어요.” 수업 진행 외에 맡은 업무가 아무것도 없어 주위 선생님들의 대화에 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는 배려 차원으로 그에게 업무를 주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로 인해 김씨는 발언권을 잃어 종종 고립감을 느꼈다. “지금은 저와 친한 분이 그때의 저는 외딴섬 같았다고 나중에 말씀하셨어요.”

그런 그의 눈이 돼준 사람은 업무 보조 인력이었다. 김씨가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서 이 자리까지 온 데는 한 몸처럼 움직이는 업무 보조 인력의 역할이 컸다. 김씨는 수업할 때 학생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볼 수 없다.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종종 수업 시간 내내 멍하니 있거나 딴짓을 한다. 그때마다 업무 보조 인력은 “학생이 집중하지 않는 것 같다”며 상황을 전해주곤 한다. 김씨는 업무 보조 인력과 함께 일하며 선생님으로서 해야 하는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김태연씨가 영어 교과 교실에서 시각장애 보조공학기기를 이용해 수업 준비를 하는 모습. 제공=김태연씨
김태연씨가 영어 교과 교실에서 시각장애 보조공학기기를 이용해 수업 준비를 하는 모습. 제공=김태연씨

 

장애인 교원의 손발이 되는 업무 보조 인력, 그 현실은

업무 보조 인력의 고용 현실은 열악하다. 장애인 교원과 손발을 맞춰 하나가 돼야 하지만 교육 공무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기간제 근로자로만 계약된다. 이는 고용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 김헌용 위원장은 “(업무 보조 인력은) 마치 인턴처럼 9개월 단위로 계약해서 채용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지속적으로 업무 보조 인력과 상호작용해야 하는 장애인 교원에게도 불안정한 근무 환경을 초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헌용 위원장이 교실에서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공=김헌용 위원장
김헌용 위원장이 교실에서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공=김헌용 위원장

제도상 업무 보조 인력은 1년 혹은 2년 이상 근무한 뒤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김씨는 “무기계약직으로 업무 보조 인력이 전환되기 전에 계약을 해지하고, 1년 정도 함께 일하면 교육청에서 업무 보조 인력을 내보내라고 한다”고 말했다. 김씨도 여러 차례 업무 보조 인력이 바뀌면서 불편함을 느꼈다. “눈을 대신한다”고 할 정도로 긴밀한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업무 파트너인 만큼 단시간 합을 맞추는 것으로는 장애인 교원의 모든 일과를 함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장애인 교원의 업무 보조 지원은 교육청에서 맡고 있지만, 장애인 근로복지공단으로 넘기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 장애인 교원의 업무 보조 인력을 근로지원인으로 대체하기 위함이다. 김씨는 근로지원인 제도로 업무 보조 지원을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근로지원인은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돕는 역할을 하도록 고용되는 사람으로, 전문적으로 일하는 업무 보조 인력과는 구분된다. 근로지원인과 달리 업무 보조 인력은 장애인 교원이 맡는 수업, 행정 등 업무를 직업으로서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는 “학교에서 전문적으로 일을 하시는 분이 (근로지원인과) 월급이 같으면 누가 지원하겠냐”며 근로지원인 제도로 대체됐을 경우의 우려를 표했다. 김씨는 “현재 시스템을 유지하지도 않으려는 게 문제”라며 “업무 지원 제도가 확실히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업무 보조 인력이 안정적으로 지원되지 않는 상황은 장애인 교원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만드는 요소 중 한 부분이며, 이는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교직 14년차에 들어선 김 위원장은 불안정한 업무 지원 인력에서 비롯되는 변수로 인해 8년 동안 담임 신청이 반려됐다. 그는 “교직에서 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일도 원하는 만큼 자원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다”며 “이 또한 차별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8년차인 올해 처음 담임을 맡게 됐다. 서울 내 시각장애인 교원 중 두 번째다. “만약 제가 담임을 맡은 학급에서 사고가 난다고 가정했을 때 뉴스에 담임이 시각장애인이라 그랬다는 말이 나올까 봐 무섭죠.” 두려움에 담임 신청을 7년 동안 하지 못했던 그는 올해 여러 사정이 잘 맞아 ‘운 좋게’ 담임이 됐다. 김씨는 업무 보조 인력 도움을 받으면 장애인 교원도 충분히 담임 업무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그는 “단지 시각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일할 기회를 박탈하면 장애인 교원은 능력이 있더라도 그 능력을 펼쳐볼 수조차 없는 것”이라며 장애인 교원을 믿고 업무를 맡기는 자세가 필요함을 언급했다.

김태연씨가 영어 교과 교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제공=김태연씨
김태연씨가 영어 교과 교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제공=김태연씨

 

협약이 체결된다 해도 “갈 길은 멀어”

장교조는 장애인 교원을 둘러싼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 7월6일 출범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임원 신분으로 교육부를 대상으로 한 근무 여건 개선 본교섭에 참여했다. 2020년 8월부터 시작된 교섭은 2년 반 동안 23차례 진행됐다. 장교조의 인정과 노조 활동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 장애인 교원의 근무 여건 개선이 핵심이었다. 장교조는 요구안으로 63개조 191개항을 제출했다. 교섭이 이어지는 동안 그중 약 3분의 1이 남았다.

4월28일 장교조는 세종시 정부청사 교육부 앞에서 ‘불성실 교섭으로 일관하는 교육부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장교조가 제시한 안건이 대부분 합의됐음에도 ◆조인식을 개최해 단체 협약을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인식을 5월 중으로 개최하라는 장교조의 성명 발표 이후 교육부에서 다시 회신이 오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6월 내로 단체 협약이 체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교육부의 회신이 있었지만, 그에게 장애인 교원의 근무 환경이 좋아질 것이란 확신은 없다. 이미 합의가 된 사안에 대해서도 변화는 없었다. “단체 협약은 대학교 강의 계획안 같은 역할을 해요. 강의 계획안만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가 없죠.” 단체 협약이 체결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 단체 협약 자체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단체 협약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단체 협약은 코로나19가 시작할 때 만들어져서 코로나19가 완화된 최근의 상황은 포함하지 못했다. 단체 협약에 강제 조항이 아닌 노력 조항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조항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정량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실제 장애인 교원 현장의 변화를 만들기 위한 조직과 예산을 구축하기 위해 법률 개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제도적 인프라가 잘 구축돼야 장애인 교원을 둘러싼 환경에 물리적 변화가 생길 수 있어요."

 

◆조인식: 조약 공문서에 대표자가 서명하는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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