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안에서 보호받는 아이와 아이를 지켜보는 지원봉사자. 김민아 기자
시설 안에서 보호받는 아이와 아이를 지켜보는 지원봉사자. 김민아 기자

비 내리는 밤. 소영이 베이비박스 앞에 아이를 눕힌다. “우성아, 미안해, 꼭 데리러 올게.” 아이를 싼 포대기 틈에서 글씨가 적힌 쪽지가 발견된다. 영화 ‘브로커’의 첫 장면이다.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10일 새벽, 관악구에 위치한 주사랑 공동체 건물에 벨이 울렸다. 베이비박스에 아이가 맡겨졌다는 신호다. 이번이 2076번째다. 보육교사는 곧바로 건물 안으로 연결된 베이비박스의 문을 열어 아이를 안았다. 상담사는 밖으로 뛰어나가 보호자를 찾았다. 2021년 10월 설립된 재단법인 주사랑 공동체는 친생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상담하고 출산부터 자립까지 지원하는 선교단체다. 주사랑 공동체의 이종락 목사는 국내에 처음으로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주사랑 공동체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맡겨지는 아이들은 2012년까지 두 자릿수였지만 2013년을 기점으로 5년간 250명을 넘었다. 2012년을 기점으로 약 3배가 증가한 것이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맡긴 미혼모 3명을 인터뷰했다. 3명 중 2명은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맡긴 이유로 입양특례법을 들었다. 입양특례법은 친생모가 입양시설에 맡기기 전 출생신고를 하도록 규정한다. 출생신고로 친생부모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아이의 존재가 기록된다. 임신 사실을 숨겼던 이들은 공적 기록에 자녀의 존재가 남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베이비박스로 향하는 미혼모들

주사랑 공동체의 베이비룸. 친생부모와 미리 일정을 잡고 상담한다. 김민아 기자
주사랑 공동체의 베이비룸. 친생부모와 미리 일정을 잡고 상담한다. 김민아 기자

베이비박스는 출생신고를 꺼리는 미혼모에게 최선의 선택이다. 인천에 사는 ㄱ(35·여)씨는 입양시설에 아이를 맡기려 했지만,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말에 베이비박스를 선택했다. 그는 “임신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데 출생신고를 하면 아이의 존재를 모두가 알아버리니까 압박감이 컸다”고 말했다.

가족관계증명서에 기록이 남는 것을 꺼리는 친생부모에게는 베이비박스와 불법 거래, 영아 유기라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는다. ㄱ씨는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워주길 바란다”며 “(베이비박스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아이를 맡기는 방법 중 아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베이비박스뿐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울 수 없겠다는 생각에 찾아간 베이비박스에서 되려 희망을 얻은 미혼모도 있다. 대구에 거주하는 ㄴ(26·여)씨는 주사랑 공동체와의 상담을 통해 아이를 키우기로 마음을 돌렸다. 그는 “베이비박스에서 아기와 살 수 있게 지원받는 법을 알아봐 주고 키울 수 있도록 의지를 북돋아 줬다”고 말했다. 주사랑 공동체 베이비박스는 아이와 친생부모가 정착할 수 있도록 3년간 기저귀, 분유 등 생필품이 담긴 베이비케어키트를 제공한다.

부산에 거주하는 ㄷ(29·여)씨는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베이비박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는 한부모 가정으로 인정되지 않아 국가에서 기저귀만 지원받았다. 일을 할 수 없었던 ㄷ씨는 베이비박스에서 분유나 거주 시설을 지원해 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아이에게 밥은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일어설 희망을 얻었다”고 말했다. 한부모 가정은 소득, 재산, 자동차 소유 기준에 부합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기준중위소득 60% 이하여야 하며 재산은 대도시 기준 6900만 원 이하, 배기량은 2000cc미만 차량 10년 이상인 자동차여야 한다. ㄷ씨는 한부모 가정 조건에 부합하기 위해 차를 없애고 소득을 줄였다. 출산 후 1년이 지난 4월 그는 한부모 가정을 재신청해 심사 중이다.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삶의 질을 낮추는 아이러니다.

 

입양특례법을 둘러싼 의혹, 정부의 입장은?

아이를 위해 제정된 입양특례법이 어쩌다 미혼모를 베이비박스로 내몰게 된 걸까. 입양을 다룬 법안의 시작은 6.25 전쟁으로 생겨난 전쟁고아를 해외로 입양 보내기 위해 도입된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이었다. 수많은 전쟁고아를 돌볼 수 없었던 정부는 해외 입양을 보내기 위해 해당 법안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출생신고 없이 입양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게 가능했다. 국내 입양의 경우 양부모가 친생부모인 것처럼 출생신고했고 해외 입양된 아이는 해외로 보내기 전 입양시설에서 기아나 고아로 취급해 새로운 성을 만들어 출생신고했다. 친생부모가 누구인지 공적 기록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입양아가 자신의 혈통을 찾을 방법은 사라졌다.

입양특례법으로의 개정은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이 입양아가 친생부모를 알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2012년 8월3일 시행 규칙 전부를 개정하면서 공포된 「입양특례법」은 입양시설에 맡기기 전에 출생신고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친생부모가 아이를 출생신고해야만 입양시설에 맡길 수 있도록 바꾼 것이다.

아이가 있다는 기록이 남는 걸 원치 않았던 이들은 입양 시설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았다. 이에 입양특례법으로 인해 영아 유기가 늘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지적과 정부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었다.

정부는 입양특례법으로 영아 유기가 증가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보건복지부는 “영아 유기가 급증한 것이 입양특례법 시행의 영향이라고 보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혼전출산 이외에도 혼외출산, 가정해체 등의 증가를 영아유기의 주된 원인으로 봤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김민지 위원도 “입양특례법과 영아유기 사이 명확한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영아 유기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지만, 그 이유를 입양특례법의 조문 하나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현재 베이비박스를 대체할 사회 제도나 서비스가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상용 교수는 “(베이비박스를) 대체한다는 것은 산모의 익명성을 보장해 아이를 낳도록 하는 것”이라며 “그런 건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기보다) 임신 단계부터 국가가 제도적으로 포섭해 친생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이런 시스템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출생신고를 꺼리는 미혼모가 법적인 틀 안에서 도움받을 방법은 없었다.

김 위원은 출생신고 의무화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헤이그국제입양협약 비준을 위한 국내 입양 법제 정비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임신,출산,양육 인프라를 마련해 궁극적으로 아동의 권리와 여성의 자율적인 삶의 선택권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김 위원은 “협약에 최종적으로 동의하면 협약 체약국 간에 해외 입양이 자동으로 체결돼 절차가 간소화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2013년 협약 가입 의지를 표명했지만 관련 법안이 미비해 아직 법적 효력은 없다.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에 맞춰 국내 입양 법제를 정비하기 위해 ▲입양특례법 개정안 ▲출생통보제 ▲보호출산제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입양특례법 개정은 민간 주도의 입양을 국가 주도로 개편하는 게 핵심이다. 입양 실무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으로는 아동권리보장원이 거론되고 있다. 민간에 흩어져 있던 입양 지원 시설을 아동권리보장원이라는 하나의 국가기관으로 통합하고 국가가 나서서 미혼모를 지원하는 것이다.

출산통보제와 보호출산제는 연결된다. 출산통보제는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아동의 자료를 국가기관에 통보하는 제도다. 출생한 아동의 수와 출생신고된 아이의 수를 확인해 누락되는 아이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때 출생신고되지 않은 아이의 부모가 출생신고를 꺼리는 경우 보호출산제를 통해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도록 보호받는다. 보호출산제는 친생부모가 아이를 직접 양육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는 선택지를 보장하는 셈이라는 지적도 있다.

 

진부하지만 진리에 가까운 '관심'

입양특례법을 둘러싼 문제 제기는 항상 있었지만 약 10년이 지나서야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유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 때문이다. 김 위원은 “공적 기록의 진실성을 훼손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강했던 과거와 달리 아동과 미혼모를 보호하려는 인식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높아진 의식을 바탕으로 2020년 포용국가 아동정책과 입양특례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19대, 20대 국회에서는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현재 본 회의 전 단계인 법제사법위원회의 안건으로도 올라가지 못했다. 아동은 투표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안 발의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특별한 사건으로 논란이 되지 않는 이상 법안으로 논의되기 어려운 탓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인 만큼 국회에서 가정과 관련한 법안이 가장 많이 통과된다. 아동 권리 법안이 통과의 동력을 받을 적기다. 김 위원은 “(법안을 추진하는 이들은 5월인) 지금이 아니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안이 논의되고 통과되는 동력은 결국 국민의 관심에서 비롯된다. 2023년 돌아온 가정의 달, 입양특례법 개정안은 여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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