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은 우리에게 친숙한 식재료다. 저렴하고 조리하기도 쉽다. 치솟는 밥상 물가 속 깻잎만은 예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누군가의 얼굴이 있다. 깻잎을 재배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얼굴이다.

깻잎은 이주노동자에게 맞춤인 작물이다. 농한기가 있는 작물과는 다르게 1년 내내 일거리가 있고 노동집약도가 높다. 작은 농가에서도 안정적인 소득을 기대할 수 있다. 

대신 깻잎은 시간 싸움이다. 상품성 있는 잎이 자라도록 곧지 않은 줄기와 싹을 계속 쳐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손이 필요하다. 이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은 화장실도 못 가고 깻잎을 딴다. 깻잎 밭에선 매일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온 세상이 ‘깻잎 논쟁’을 얘기할 때, ‘깻잎 투쟁’에 주목한 한 학자가 있다. 우춘희(여성학 석사·10년졸)씨는 매사추세츠대 사회학 박사과정 중 한 깻잎 농장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주노동문제를 연구했다. 이후 밥상 위의 인권이 가시화되기를 바라며 ‘깻잎 투쟁기’(2022)를 썼다. 농업 이주노동자에 관한 최초의 참여 관찰기인 깻잎 투쟁기는 알라딘, 한겨레 등 여러 매체에서 ‘2022년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깻잎밭에서 수확 중인 우춘희씨(가운데)와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 제공=우춘희씨
깻잎밭에서 수확 중인 우춘희씨(가운데)와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 제공=우춘희씨

 

한국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다

“손에 더러운 거 묻는 것도 좋아하고, 농사에도 관심이 있으니 이거다 싶었죠.”

우춘희씨는 원체 ‘먹을 것’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사회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그의 관심이 이주노동자 문제로 이어지게 된 것은 박사과정 중 받은 한 과제에서부터였다. 인간사회를 연구하는 수업인 <사회인류학>을 수강하던 그는 1년 동안 매주 최소 3시간 이상 현장연구할 공동체를 찾아야 했다. 공동체를 찾던 와중 그는 도서관 옆에서 꾸러미 사업을 홍보하는 붉은색 천막을 발견했다. 꾸러미 사업은 봄에 회원들의 돈을 모아 학생들이 식물을 정하고 재배한 후 가을에 그 농작물을 배부하는 활동이었다. 그는 약 3년간 사업에 참여하며 씨앗을 심고 잡초를 뽑았다. 

“농사를 짓다가 문득 궁금증이 들더라고요. 한국의 농사는 누가 짓지?” 그렇게 우씨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방학에 한국의 지방을 돌아다니며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같았다. “이제 외국인 없으면 농사 못 지어.” 

우씨는 처음엔 이 말이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농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농촌의 상황은 심각했다. 쌈채소부터 달걀 하나하나까지 이주 노동자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들이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던 우씨는 고용노동부 앞에서 이주노동자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 그날 한 연사가 말했다. “우리는 노예가 되기 위해서 한국에 온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로서 자유롭게 일하기 위해서 한국에 왔습니다.” 

 

연구활동가, 우춘희

그렇게 시작된 우춘희씨의 연구는 이주노동자 지원활동과 발걸음을 맞췄다. 우씨는 이주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활동을 이어갔다. 그들이 전한 농촌의 노동 환경은 참혹했다. 임금 체납은 기본이었고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 최저 시급도 주지 않는 경우가 빈번했다. 

2020년 여름, 그는 이주인권 연구를 위해 경상도의 한 깻잎 농장으로 향했다. 이주 노동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곳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지구인의 정류장에 도움을 청하러 온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그곳에선 하루에 10시간 동안 깻잎 1만5000장을 따야 한다”고 말했다. “저는 그냥 받아 적었어요. 한 달에 딱 이틀 쉬고, 매일매일 하루에 10시간 깻잎을 따는구나. 그런데 이게 어떤 노동 강도인지 연구자는 사실 모르잖아요. 그래서 직접 갔죠.” 이곳에서 그의 ‘깻잎 투쟁기’가 탄생했다. 다행히 농장주는 우씨의 참여관찰연구를 허락했다. 그는 낮에는 농장주의 집에서 먹고 자며 깻잎을 땄고 저녁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친분을 쌓았다. 

농촌에서 지내며 그가 목격한 것은 극심한 인력난과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이주 노동자들이 한 달만 일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그 정도로 우리가 이 사람들의 노동에 기대어 살고 있더라고요.”

통근 버스를 타고 일터에 나서는 캄보디아 사람들. 우춘희씨가 캄보디아 현장연구 중 찍은 사진이다. 제공=우춘희씨
통근 버스를 타고 일터에 나서는 캄보디아 사람들. 우춘희씨가 캄보디아 현장연구 중 찍은 사진이다. 제공=우춘희씨

이처럼 우춘희씨의 이주인권 연구는 이주노동자 지원활동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스스로를 연구 활동가라 소개하는 그는 어떻게 두 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었냐는 물음에  웃으며 대답했다. 

“이걸 ‘액션 리서치(action research)’라고 해요. 연구자가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기록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가서 함께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 연구라는 뜻이에요. 연구 활동이 단순히 연구와 출판의 목적으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 내가 참여해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충분히 그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는 이주노동자들을 연구 대상자가 아닌 연구 참여자라고 부른다. 연구자가 일방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하는 대상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방식의 연구는 그가 여성학을 전공하며 배운 것이었다. 

우씨의 연구 활동은 결실을 봤다. 그는 2022년 12월, 여성학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와 여성에 대한 지식 확장에 기여해 온 학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제3회 이화-현우 여성과 평화 학술상’을 수상했다. 연구 참여자들과 상호작용하는 여성학의 방법론을 사용해 한국 사회 속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이해를 확장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우춘희씨에게 이 상은 이주인권 연구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자신감이 돼줬다. “독자는 늘 지도 교수님밖에 없으니,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연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내 연구가 의미가 있구나’,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에 우주의 먼지만큼이라도 기여를 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해오며 우춘희씨 스스로의 변화와 발전도 있었다. ‘먹거리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던 과거와는 달리 식재료 이면에 담긴 사람들의 표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공정무역 커피와 초콜릿을 사며 스스로를 가치 소비자로 여겼던 것에 만족했어요. 그걸 재배한 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죠. 이제는 식재료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됐어요.” 

우씨는 여전히 ‘사회를 먹여 살리는 사람들’을 연구한다. 농촌에서 시작된 그의 이주인권 연구는 어촌과 식품 공장까지 넓어지고 있다.

 

어업의 경우에는 섬을 나가기 어려우니 농촌 사회보다 더 고립돼 있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전복 양식장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서 ‘전복 투쟁기’를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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