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

어느덧 3월도 거의 끝나가고 캠퍼스 곳곳에서 봄의 정취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 날씨의 장단에 맞추는 게 어렵습니다. 지난 한 주 저의 마음은 마치 이 일교차 같이 봄과 겨울을 몇 번이나 오갔습니다. 1657호에 이태원 참사 유족 인터뷰를 낸 후 걱정과 기대의 마음으로 독자 분들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읽어주길 바라면서도 과연 독자들에게, 또 유족에게 내용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사실 해당 인터뷰 기사를 발행하기까지의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작년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때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컨택에 어려움이 있었고, 이번에 다시 기사를 내기로 결정하면서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기사를 낸 이유는 그것이 신문의 역할이자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지만, 기사로 쓸 일이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렇게라도 고인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기억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들이 인터뷰를 마치고 눈에 눈물이 고인 채 학보실로 들어오던 날을 기억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인터뷰 현장을 채운 감정이 어땠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고 기사를 쓰기까지 꽤나 오랜 기간 고민하는 기자들을 보며 무엇을 그리 고민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너무 슬프게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제가 부국장과 함께 에디팅을 할 때도 보다 신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혹시라도 미숙한 판단을 내릴까 싶어 읽고 또 읽었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들의 의도대로, 감정을 정해서 전하지 않기 위해 표현을 다듬고 최대한 감정적인 서술을 배제했습니다. 그렇게 감정이 무뎌질 때까지 읽어보며 제가 한 생각은 그저 독자들이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며 고인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담담하게 써내려간 기사지만 행간 속에서 그의 찬란했던 순간들이 드러나길 바랐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신문의 맨 앞, 그 중에서도 독자들에게 제일 잘 보이는 탑에 배치했습니다. 1면 탑으로 배치하는 것이 옳은 판단일지 고민을 하기도 했었으나,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읽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우리의 기사를 보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감정을 표했습니다. 웹 기사 하단에 있는 슬퍼요’ ‘화나요추천등의 반응 수가 1000개를 넘습니다. 내부에선 이를 보고 고인 영정에 올리는 국화꽃송이 같다는 말이 오갔습니다.

정혜윤 작가의 책 슬픈 세상의 기쁜 말에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딸이 잃은 것은 미래였다. 그토록 사랑하는 딸이 잃은 것이 미래라면, 이제 그 미래를 그가 만들어야 한다.” 저는 이 내용을 읽고 떠나간 이의 미래는 남은 이들의 기억을 통해 이어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의 기사를 읽고 고인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던 이의 인생이 함께 캠퍼스를 거닐었던 동료와 스승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