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최고라는 말을 되게 싫어해요.” 국내 최고의 인터뷰어라고 불리는 김지수 기자가 말했다. “사람 각자가 다 최고고, 최고에는 기준이 없잖아요.” 그는 대신 ‘최전선의 인터뷰어'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따뜻함과 정확함의 최전선’에 서서 인터뷰를 쓰고 싶다는 의미다. 김 기자는 28년째 기자를 업으로 삼고 있다. 2015년부터는 조선비즈에서 인터뷰 시리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연재해왔고 2300만 이상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연락이 닿아 15일 오후, 금호동의 한 작은 도서관에서 김 기자를 만났다. 이날은 인터뷰이였지만 그는 역시 인터뷰어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때로는 특유의 예민함으로 기자의 질문을 꿰뚫어 봤다. 김지수 기자(사회·94년졸)를 만나 그가 출간한 인터뷰집 ‘위대한 대화’(2023)와 인터뷰어로서의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김지수 기자가 5번째 인터뷰집 '위대한 대화'를 들고 있다. <strong>이승현 사진기자
김지수 기자가 5번째 인터뷰집 '위대한 대화'를 들고 있다. 이승현 사진기자

 

시대의 흐름을 기록하는 일

‘위대한 대화’는 김 기자의 5번째 인터뷰집이다. 그는 꾸준히 인터뷰 내용을 엮어 책으로 내고 있다. “웹과는 완전히 다르게 책은 물성을 가졌어요. 한 사람이 탄생하듯이 책이 탄생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가 텍스트로 디지털 공간에 머무는 것과 책을 매개로 개인의 소유물이 되는 것은 다르다는 의미다. 그는 “책을 낸다는 건 시즌별로 인터뷰를 정리하는 느낌”이라며 “책마다 담고 있는 인터뷰이의 지혜가 다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진행해온 인터뷰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다. 인터뷰집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2018)은 좋은 어른에 대한 갈망을, ‘자존가들’(2020)은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터의 문장들’(2021)은 ‘일하는 사람의 소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러던 중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위기를 맞았고 세계의 패러다임이 변했다. 김 기자는 “성장과 경쟁 중심의 사회가 지구를 망가뜨리고 세계를 멈춰버렸다”며 당시는 “어떻게 회복과 재생을 이룰지 고민하던 때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팬데믹의 한가운데서 인터뷰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말을 글로 풀어냈다. 출신지, 성별, 나이, 분야도 모두 다른 전문가들이었으나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같았다. “고난을 빼고 인생을 설명할 길은 없고 우리는 기쁨과 슬픔을 모두 보듬어야 해요.” 제목에 대한 뒷이야기도 밝혔다. 그는 “석학들의 인터뷰집이라 ‘위대한 대화’인 것도 맞지만, 책을 쓰며 진정한 위대함은 나의 약점을 노출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위대하지 않으면 나와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기자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이런 의미의 위대함을 자각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목을 지었다"고 말했다.

 

더 나은 언어로 세계를 엮는 일

글을 오랫동안 써온 탓일까. 김 기자는 인터뷰하는 동안 ‘언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언급했다. 김 기자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과거는 기억, 현재는 기분, 미래는 기대”라고 말했다. “인간은 기억과 기분과 기대,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에 살고 있는데 이 셋의 하모니를 이뤄내는 게 인생이거든요.” 김 기자에 따르면 기록이란 이런 인생을 잊히지 않게 만드는 작업이다. 언어로 기록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김 기자는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언어를 통해서 인생의 서사를 어떻게 정리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인생은 ‘나를 표현할 언어를 찾아나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뷰는 언어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가 서로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동떨어져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김 기자가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전해온 메시지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가 곧 나를 구성한다는 뜻이다.

 

2015년부터 조선비즈에서 인터뷰 시리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연재해온 김지수 기자. <strong>이승현 사진기자
2015년부터 조선비즈에서 인터뷰 시리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연재해온 김지수 기자. 이승현 사진기자

김 기자에게 인터뷰라는 장르가 매력적인 이유는 인터뷰를 통해 모든 걸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로 인물 소설을 쓸 수도 있고요, 연극 대본, 아름다운 수필, 한 편의 시까지 쓸 수도 있어요.” 그에게 인터뷰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세계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인터뷰를 해온 김 기자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가 있다. 이화의 큰 스승이었던 故 이어령 교수다. 그는 “(이어령 선생님을) 가장 많이 만났고 온몸이 문장 속에 흠뻑 잠긴 상태로 (글을) 썼다"며 인터뷰를 추억했다. 그는 2020년 가을부터 2021년 초여름까지 매주 스승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죽음을 지척에 둔 스승이 열여섯 번의 인터뷰를 통해 들려준 지혜는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2021)으로 출간됐다. 둘의 ‘라스트 인터뷰'는 많은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남겼다.

이어령 교수가 ‘선한 사람이 이긴다는 것을 믿으라’고 했던 것처럼 김 기자도 인간의 선한 면을 전하는 인터뷰 방식을 고수해왔다. 그는 “이미 세상에 인간의 악한 면을 드러내는 사건이 너무 많다”며 “갈등보다는 서로를 연결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언어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면 선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이 드러나고 결국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시니컬하거나 공격적인 인터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사실 저널리스트로서는 냉소와 신랄한 표현이 훨씬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오히려 포용하는 공간에서 창의성이 싹터요. 인간은 선하게 지어졌고 전 그런 믿음이 있으니까 인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언어를 쓰려고 하는 거죠."

 

인생을 찾아가는 길목에 서서

김 기자는 패션지 ‘보그’부터 디지털 경제 미디어인 ‘조선비즈’까지 다양한 매체를 거쳤다. 원래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마다 새로운 선택을 하게 만든 원동력은 호기심이었다. 김 기자는 “새로운 걸 하고 싶었다”며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걸 찾아 계속 떠났다”고 말했다. 속한 매체마다 쓰는 글의 형식은 많이 달랐다. 그럴 때마다 매체의 성격에 맞춰가며 글을 썼다. “육아지면 육아지에 맞게, 패션지면 패션지에 맞게, 글로벌 라이센스면 또 그거에 맞게. 계속 몸을 바꿔가면서 글을 썼기 때문에 수련이 된 거죠.”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지속하려는 시도는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고 감동과 울림을 전하는 인터뷰를 쓸 수 있는 이유다.

그는 최근 또 다른 도전을 했다. 얼마 전 몸담고 있던 조직에서 독립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는 계속 연재하지만 횟수를 줄이고 회사와의 관계를 느슨하게 전환했다.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을 또 하는 거죠.” 김 기자는 ‘문장의 배우’, ‘최전선의 인터뷰어’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려 왔다. 이번에는 ‘마인드 커넥터’로 스스로를 칭했다. 더 나은 언어로 세상을 잇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수많은 수식어 중에서 무엇으로 불리기를 원하냐고 묻자 김 기자는 웃으며 “셋 모두를 원한다”고 말했다. “문장의 배우는 글을 쓸 때 필요하고, 최전선의 인터뷰어는 내가 노출되는 환경을 선택할 때 필요한 거고, 마인드 커넥터는 그 선택의 결과인 거죠. 사실 셋 다 중요해요.” 김지수 기자는 오늘도 따뜻함과 정확함의 최전선에서 인터뷰하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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