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흰 토끼를 쫓아 자신만의 원더랜드로 향한다. 책 ‘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 저자 앨리스 전(Alice Jeon·경영·12년졸)씨도 해외취업이라는 오랜 꿈을 쫓아 싱가포르로 여정을 떠났다.

“너는 뾰족한 산처럼 개성 있는 사람이야. 이 회사에 다니려면 너의 산을 깎아 호수를 만들어야 해.” 사회생활을 위해 스스로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회사 상사의 조언에 그는 싱가포르행을 결심했다. 다양한 개성이 존중받는 곳인 만큼 자신의 뾰족산을 지켜낼 수 있는 나라일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2022년 그래미어워드에 회사 '프레스토랩스' 대표로 참석한 전씨. 그는 이곳에서 다양한 기업 리더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공=앨리스전씨
2022년 그래미어워드에 회사 '프레스토랩스' 대표로 참석한 전씨. 그는 이곳에서 다양한 기업 리더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제공=앨리스전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과 싱가포르로 무작정 모험을 떠난 본인이 닮았다는 생각에 전씨는 영어 이름을 ‘앨리스’로 지었다. 현재 그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아시아 퀀트 트레이딩 기업 ‘프레스토랩스’(Presto Labs)에서 사외이사로 근무하다 잠시 휴직 중이다. 프레스토랩스는 데이터 알고리즘 자동 거래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루 3조 원 이상의 거래량을 자랑한다.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전씨를 화상으로 만나 그의 흥미진진한 싱가포르 모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만의 강점으로 문제 풀기

본교에 경영전략 공부를 할 수 있는 마땅한 조직이 없어 아쉬워하던 전씨는 경영학회 ‘ECON’을 만들었다. 3기 회장으로 선출된 전씨는 이전 회장들과 달리 토론을 직접 이끌 만할 경영지식은 부족했다. 고민 끝에 그는 학회를 운영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회장인 전씨가 학습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전문가를 연사로 모셔 좋은 수업을 구성하는 방법이었다. “제가 문제를 직접 푸는 게 아니라, 그 문제를 제일 잘 푸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죠.” 이를 통해 전씨는 다른 사람과의 협력과 연결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때의 배움은 10년이 지나, 회사의 대외적인 네트워크와 내부 핵심인력의 채용을 돕는 사외이사 업무에도 큰 도움을 줬다. “맥킨지(Mckinsey)에서 일해보고 싶은데 우리 학교에는 설명회도 안 열려서 아쉬웠어요.” 그는 어떻게든 맥킨지와의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무턱대고 다른 대학에서 열린 채용설명회에 참석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업 관계자에게 본교에서도 설명회를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눈물을 보일 정도로 간절했던 진심에 맥킨지는 전씨의 경영학회와 산학협력을 맺었고 인턴 기회도 얻어냈다.

그런 전씨에게도 취업의 문턱에서 절망한 순간은 있었다. 50개가 넘는 회사에 지원서를 제출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모두 불합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취업을 위해 남들과 다른 창의적인 방법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장님을 만나야 했어요.” 10대 대기업의 채용 설명회에 참석해 희망 기업의 사장을 찾았다. 결국 그는 입사를 원했던 에너지 기업 사장에게 노란 포스트잇 한 장을 건넸다. “제게 5분만 주신다면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라고 적힌 쪽지였다.

5분의 시간을 허락받은 전씨는 사장 앞에서 평소 에너지 산업에 대한 생각과 입사를 향한 열정을 피력했다. 사장은 전씨의 포스트잇을 가져갔고 두 달 뒤 열린 채용에서 그는 당당히 합격했다. 전씨는 “남들과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회사에 입사한 전씨는 해외 거래처와 영어로 진행한 회의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회의 내용을 단 한 마디도 이해 못 했어요. 영어를 못하니 눈앞의 좋은 기회들을 모두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죠.” 더 이상 미루던 해외취업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3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모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성장의 나라, 싱가포르

싱가포르 땅에 발을 딛자 전씨를 괴롭히던 모든 고민들은 사라지고 이유 모를 해방감이 그를 감쌌다. 호기롭게 시작한 타국에서의 구직 생활은 6개월로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룸메이트의 지인이 먼 곳에서 꿈을 찾아온 전씨에게 관심을 갖고 본인이 근무하는 회사의 면접을 권유했다. 아쉽게도 그가 원하던 마케팅 업무는 아니었지만, ‘일단 해보자’는 당찬 마음으로 전씨는 싱가포르에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싱가포르에서의 전씨. 제공=앨리스전씨
싱가포르에서의 전씨. 제공=앨리스전씨

직원들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싱가포르 회사 문화는 전씨를 놀라게 했다. 처음에 다녔던 헤드헌팅 회사는 약 50명 정도의 직원이 함께 일하는 작은 규모였음에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이뤄졌다. 회사는 그 누구의 취향도 배제되지 않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다. “채식여부와 종교를 하나하나 다 물어보면서 엄청 신경을 쓰더라고요.” 회사 동료 간 통일성을 중요시하는 한국 기업과는 달랐다.

한 기업에서 오래 근무하며 경력을 쌓아가는 한국과 달리 싱가포르는 직원들이 한 기업에서 오래 근무하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원들이 다음 직업을 잘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특이한 문화도 있었다. 싱가포르의 기업 문화를 통해 전씨는 직업을 선택할 때 근무 기간이나 연봉이 아닌 오직 회사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특히 전씨는 연봉이 절반, 혹은 그 이상으로 줄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오직 성장을 위해 달려갔다.

내가 원하는 목표가 있다면 끊임없이 발버둥을 치면서 나아가는 거예요. 다른 조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2012년 싱가포르행부터 함께한 전씨의 노트. 장단점은 서로 연관돼 그저 한 사람의 개성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제공=앨리스전씨​
​2012년 싱가포르행부터 함께한 전씨의 노트. 장단점은 서로 연관돼 그저 한 사람의 개성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제공=앨리스전씨​

한국에서부터 꿈꿔왔던 글로벌 마케팅을 하고자 전씨는 소비재 대표 기업 ‘P&G’으로 떠났다. 한국 기업에서 ‘뾰족한 산’이라 지적받던 그의 거침없는 성격은 마케팅 직무에서 빠른 결단을 내리도록 도왔다. 한국에서 받았던 조언은 더 이상 전씨에게 어떤 의미도 갖지 못했다. 싱가포르 회사에서 전씨의 뾰족산은 오히려 강점이 됐고 성장의 날개가 돼 주었다.

 

변화는 또 다른 세상으로의 기회

전씨의 성공적인 모험에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사람은 내 전부’라는 마음으로 항상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챙기던 전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환학생 때 만난 대학교 총장은 전씨가 원하는 기업에 지원할 때 아주 훌륭한 학생이라며 추천서를 써주기도 했다. 싱가포르에서도 현지 친구의 도움을 받아 거처를 해결했다. 그는 본교 후배들에게 “모든 운과 기회는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며 세상으로 나가서 다양한 사람과 친구가 되라는 조언을 남겼다.

전씨의 이야기를 담은 책 ‘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을 통해 독자들의 변화도 끌어냈다. 전씨는 해외취업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수차례 메일을 받았다. 직접 싱가포르에 와서 상담을 신청한 독자도 있었다. 그 독자는 현재 싱가포르에서 취업에 성공해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전씨는 “행복한 삶을 쟁취한 독자들의 삶에 제가 작게라도 일조했다는 것이 보람차다”며 웃음 지었다.

그가 계속해서 변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씨는 “인생의 변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상은 끝없이 넓어요. 어떤 목표를 쫓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면 또 다른 목표와 세상이 절 기다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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