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주인공입니다.

외모 강박으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주인공으로서의 삶을 선물한 사람이 있다.

미국에서 데뷔한 국내 최초 플러스사이즈 모델, 국내 최초 플러스사이즈 매거진 ‘66100’ 편집장, 동명의 여성 패션 브랜드 ‘66100’ 대표, ‘엉엉 우는 법을 잊은 나에게’ 저자. 모두 한 사람을 향한 수식어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던 3월의 어느 날, 당산동 66100 쇼룸에서 당당한 미소를 띤 김지양씨를 만났다. 그는 외모 다양성 활동가로서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를 한국에 알리는 데 힘써왔다.

미국에서 데뷔한 국내 최초 플러스사이즈 모델이자 여성 패션 브랜드 ‘66100’ 대표인 김지양 씨. 그는 현재 ‘외모다양성 지지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권아영 사진기자
미국에서 데뷔한 국내 최초 플러스사이즈 모델이자 여성 패션 브랜드 ‘66100’ 대표인 김지양 씨. 그는 현재 ‘외모다양성 지지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권아영 사진기자

 

스스로 만들어가는 나

김씨는 ‘당신이 주인공입니다’라는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 시즌 1 슬로건에 운명처럼 이끌려 모델계에 발을 들였다. 2차 오디션에서 탈락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미국 모델 시장에 도전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최대 플러스사이즈 패션위크인 FFF Week(Full Figured Fashion Week) 런웨이에 서기도 했다. 이후 김씨는 다양한 체격의 모델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한국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외모로 고충을 겪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전하고 여러 강연 자리에 서는 스스로를 외모 다양성 활동가라고 칭했다.

자기 몸 긍정주의를 지지하며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선사하는 그도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자기혐오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선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남에게 나를 인정해달라고 하기보다 내 스스로를 인정하고 긍정하는 게 더 확실하고 빠른 극복 방법”이라고 말했다. 

 

‘무난함’ 대신 ‘나다움’

김씨는 입을 옷이 없어 우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여성 의류 브랜드 ‘66100’을 만들었다. 66100은 여성복 66 사이즈, 남성복 100 사이즈라는 뜻을 담아 지었다. 기성복 브랜드의 사이즈 한계를 넘는 옷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단순히 빅사이즈 옷만 판매하는 곳은 아니다. 김씨는 66100 대표로서 방문 착장, 1:1 컨설팅을 진행하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의 취향을 발굴하고 있다. ‘목요회’라는 세미나도 열어 외모지상주의의 문제점과 비만에 대한 고정관념 등에 관해 사람들과 대화했다. ‘사진 포비아를 위한 심포지엄’을 열어 카메라 앞에서 얼어버리는 사람들에게 본인만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찾아주기도 했다. 그의 비법은 표정이 풀어질 때까지 '아에이오우'를 시키고 본연의 표정을 끌어내는 것이다. “저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예쁜 표정을 원하지 않아요. 내가 평소에도 지을 수 있는 표정이어야만 자연스러운 표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1:1 컨설팅의 고객들은 깔끔하고 무난한 스타일을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그는 이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 “무난하다는 건 특징과 개성이 없는 상태니까요.” 그는 고객이 본인의 취향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방문 착장과 1:1 컨설팅을 한다. "무난한 옷도 물론 좋지만 그런 옷은 제 도움 없이도 충분히 구할 수 있죠. 자신만의 색깔을 모르고 사는 건 조금 슬프지 않을까요?" 그는 “내가 나로 보이는 옷을 좋아한다”며 입고 있는 빨간 가죽 자켓을 가리키며 웃었다.

 

외모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66100의 대표 제품은 편안한 속옷이다. S, M, L, XL로 가는 여느 브랜드와는 달리 사이즈가 1에서 6까지 표기된 것이 특징이다. 김씨는 사람들이 XL라는 사이즈가 주는 부담감을 내려놨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새로운 사이즈 체계를 만들었다. “속옷은 제가 필요해서 만들기 시작한 건데 XL라는 말에서 오는 무거움을 덜어주고 싶었어요.”

그는 이번 달 29일부터 새롭게 ‘66100 지지 모임’을 월 1회 열어 섭식장애를 가졌거나 다이어트 강박, 식이 강박, 외모 강박으로 고민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팝가수 리조와 메간 트레이너를 비롯한 인플루언서들이 자기 몸 긍정주의를 지지했고 다양한 외모를 가진 모델들이 당당히 세상 앞에 섰다. 백반증을 가진 모델 위니 할로우, 자연스러운 체모를 드러내는 마돈나 딸 루데스 레온은 세계 여성들에게 자기 몸 긍정주의를 알렸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하다. 김씨는 “우리나라는 엘리트주의만 좇는 게 아니라 ‘잘생긴 엘리트’, ‘예쁜 엘리트’를 추구한다”며 "청년들이 온전히 ‘나’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지적했다.

김씨의 꿈은 국회의원이 돼 ‘외모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성형외과나 다이어트 한약 광고가 버스, 지하철 벽에 붙지 않게 하는 법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또 학교 상담 센터에 섭식장애 관련 소책자를 상시 구비하게 하는 법안을 발의해 학생들을 도울 필요성이 있음을 전했다. 김씨는 의류 브랜드에서 반드시 플러스 사이즈 의류를 제작하게 하는 법안, 특정 ◆BMI(Body Mass Index) 이상만 모델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법안도 구상하고 있다. “외모에 대한 이익도 불이익도 모두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자기 몸 긍정주의: 피부색, 체형, 성별, 신체 능력 등에 관계없이 모든 몸을 포용하여 오늘날 미의 기준에 새롭게 도전하는 사회적 운동

◆BMI: 자신의 몸무게(kg)를 키의 제곱(m)으로 나눈 체질량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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