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운영하는 동네 책방”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서점 입간판에 적힌 소개 문구다. 문을 열자마자 ‘변호사 김소리’ 팻말이 걸린 사무실이 보인다. 변호사 사무실을 지나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책방 진열대에는 ▲노동권 ▲여성인권 ▲동물권 ▲환경권 등 책방지기의 취향이 담긴 책들이 분류별로 꽂혀 있다. 제2의 법률 인생을 시작한 김소리 변호사의 ‘밝은 책방’과 법률사무소 ‘물결’이다. 책과 법, 문학과 정의가 공존하는 그의 놀이터 ‘밝은 책방’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김소리 변호사는 미비한 현행 동물보호법에 대해 다룬 ‘동물에게 다정한 법’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이자빈 사진기자
김소리 변호사는 미비한 현행 동물보호법에 대해 다룬 ‘동물에게 다정한 법’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이자빈 사진기자

 

비주류 로스쿨생 "나는 내 길을 간다"

김소리씨는 대학생 때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노무현 정권이 비정규직법을 통과시키면서 비정규직이 양산되자 학내 청소노동자 등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김씨는 취업한 선배들이 사회 문제에서 멀어지는 모습에 생계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사회 문제를 다루는 현장에 있는 직업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해당 직업으로 변호사가 제격이라고 생각한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 가입해 공익인권 활동을 하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약 1200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민변은 1988년 설립된 대표적인 진보 법률가단체다. 민변은 공익적인 사건을 온라인으로 신청받아 2016년부터 약 250건의 공익인권변론사건 변호를 맡았다.

서울대 로스쿨에 들어가기 전 김씨가 가장 먼저 했던 걱정은 ‘대형 로펌을 지망하는 주류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가’였다. 그는 “공익인권 활동을 하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말했다.

우려와 달리 로스쿨 생활은 그의 목표를 확고히 하는 과정이었다. 인턴 실무 수습 기간이 되자 주변에서는 대부분 대형 로펌에 지원했다. 공익 사건 변론을 지향했던 김씨는 주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형 로펌과는 맞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유명 대형 로펌을 원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고 싶은 방향과는 맞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자신과 같은 ‘비주류’들에게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혼자만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 같아 작아지고 속상해지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표준화된 삶을 쫓아가려는 경향이 있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되게 불안하잖아요. 법조계도 마찬가지로 다들 하니까 힘들어도 꾸역꾸역 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주류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강한 자기 확신 덕분이었다. 김씨는 “모든 걸 떠나 자기가 가는 길에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만의 가치관을 키우면 선택에 어느 정도 확신이 생긴다”고 조언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타인의 욕망을 따르는 것 같다”며 “인생을 길게 봤을 때 당장 어디든 취업하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 직업은 변호사, 책방은 내 놀이터

노동권, 여성인권, 동물권 등의 기본권을 중심으로 김소리 변호사가 직접 추천하는 책들. 세미나와 낭독회, 변호사와 함께하는 ‘법토크’ 등 책방은 활발한 의견교류의 장으로 역할한다. 이자빈 사진기자
노동권, 여성인권, 동물권 등의 기본권을 중심으로 김소리 변호사가 직접 추천하는 책들. 세미나와 낭독회, 변호사와 함께하는 ‘법토크’ 등 책방은 활발한 의견교류의 장으로 역할한다. 이자빈 사진기자

변호사에게 홀로서기는 숙명이다. 김씨는 법무법인 ‘이공’에서 7년간 근무했다. 5~6년 차 변호사가 되면 로펌을 퇴사하고 법률사무소를 개업하는 건 순리와도 같다. 2021년 5월, 그가 퇴사하자 주변 사람들도 ‘할 때 됐다’는 반응이었다.

김씨의 퇴사는 ‘소송이라는 싸움에 평생을 지친 채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다. 김씨는 변호사를 ‘의뢰인을 대신해 칼싸움을 벌이는 직업’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싸움에 지친 채 주말만 기다리며 남은 생을 채우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변호사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던 김씨는 재미있고 지속 가능한 변호사 생활에 대해 고민했다.

김씨는 로펌을 퇴사하기 1년 전부터 책방 창업 계획을 세웠다. 책방 창업은 문화예술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에서 시작했다. 건물 전체를 영화관, 도서관 등 문화 공간으로 채운다는 김씨의 어린 시절 꿈은 책방으로 실현됐다. 책방은 그가 마음만 먹으면 일일 강좌나 전시 등 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밝은 책방’과 법률사무소 ‘물결’이 한 공간에 만들어졌다.

김씨는 “변호사면서 문화기획자처럼 일한다”고 말했다. 책방이 문화 공간으로 적극 활용됐기 때문이다. 시집 읽기 세미나, 시 낭독회처럼 문학 행사를 열거나 ‘법토크’ 등 변호사의 전문성을 살린 프로그램을 기획해 진행했다. 법토크에서는 차별금지법, 탄소중립법, 성매매특별법 등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법에 관해 시민과 전문가가 이야기를 나눴다.

김씨는 밝은 책방을 “자신의 놀이터”라고 표현했다. 책방 운영이 스스로 주는 쉬는 시간이라서다. 그는 책방 창업을 결심할 당시 “‘한 번뿐인 인생인데 금방 문 닫더라도 하고 싶은 거 해보자, 이 정도 열심히 살았으면 자격 있다’고 스스로 되새겼다”고 말했다. 김씨는 책방이 본인에게 놀이터가 된 것처럼 많은 이들의 아지트가 되길 바랐다.

남들과 다른 길을 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분인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김씨는 “거창한 용기를 낸 건지 모르겠다”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기존의 방식대로 사는 게 싫어서 쉽게 선택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패할 것 같다는 걱정에 사로잡혀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김씨는 모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도 용기를 전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았을 때 오는 불만족감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똑같이 실패해도 내가 선택해서 한 거면 덜 후회하잖아요. 설사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도 결국 자산이 돼요.”

밝은 책방을 운영한 지 1년째, 김씨는 여전히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만약 재미없고 스트레스만 받는다면 과연 맞는 길인지 고민하겠지만 아직까지는 되게 재밌다”고 말했다.

김씨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가능성을 활짝 열어뒀다. 그는 “새롭고 재밌는 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책방이 아니더라도 즐거운 일이라면 언제든 도전할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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