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메타버스 플랫폼 본디(Bondee)가 20대 마음을 사로잡았다. 본디는 가상공간에서 아바타와 방을 꾸미는 융합형 소셜미디어 서비스다. 본디 전체 사용자는 2월26일 기준 18만1018명으로, 여성이 85.8%를 차지하고 그중 20대 여성은 41.5%다. 메타버스 플랫폼은 10대들의 전유물이라는 기존 인식과 달리 본디는 2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본디의 특징은 친한 친구를 중심으로 하는 폐쇄적인 소통구조다. 본디는 출시된 지 4개월 만에 구글플레이에서 누적 다운로드 수 500만 회를 넘겼고,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에서 7일 이상 인기 앱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온오프라인의 매력 모두 잡았다

본디는 가상공간에서의 아바타를 활용해 일상의 공유 정도를 넓혔다. ‘상태 업로드’ 기능을 활용하면 메시지를 남기지 않아도 일상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능을 통해 사용자는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캐릭터로 표현할 수 있다. 식사, 업무, 휴식 등의 상태를 선택하면 아바타가 이를 행동으로 보여준다.

가상 공간에 한데 모인 아바타들은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심리적으로 가까운 느낌을 준다. 김민정(의학·18)씨는 공부에 집중하느라 인간관계가 협소해진다는 생각이 들 때 본디를 켰다. 자신과 친구의 아바타가 한데 모인 가상 공간에서 ‘공부 중’ 상태를 선택했다. 그는 “하루 종일 공부하다 보니 친구들을 못 만나는데 아바타를 띄워두면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최승주(한국음악·22)씨는 본디로 “그 사람의 현 상태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그는 문자로 ‘퇴근 중’이라고 말하기보다 허리가 꺾이고 터덜터덜 걷는 캐릭터의 모습에서 친구의 상태를 더 생생하게 느꼈다. 사용자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묘사하는 아바타로 글보다 직관적인 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본디의 또 다른 매력은 가상 공간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다는 것이다. 본디 사용자들은 아바타와 방을 꾸미며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다. 문희예(국문·22)씨는 아바타에게 평소 자주 입는 반바지와 후드티를 입히고 좋아하는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도록 꾸몄다. 최씨는 “친구들이 꾸민 아바타를 보면 딱 본인 같다고 느낄 만큼 닮았다”고 말했다. MZ세대에 대한 대중 감성 연구를 진행한 서울장신대 안명숙 교수(신학과)는 “자신의 고유한 아바타를 선택하고 꾸미는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탐색하고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 공간을 통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을 이루기도 했다. 안은재(불문·23)씨는 자신의 가상 공간에 좋아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포스터를 붙이고 흐트러진 방을 연출했다. 안씨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 깔끔한 방을 유지해야 했지만, 물건을 찾을 수 있기만 하면 너무 깨끗하게 정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벽을 액자로 채우고 책과 프린트물도 한꺼번에 두는 등 원하는 대로 방을 꾸몄다. 그는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을 본디의 매력으로 꼽았다.

가상공간에서 자취의 로망을 실현한 안은재씨. 제공=안은재씨
가상공간에서 자취의 로망을 실현한 안은재씨. 제공=안은재씨

 

폐쇄에서 개방으로

본디의 가장 큰 특징은 친구를 50명으로 제한했다는 점이다. 본디 한국 디지털 마케팅팀 김규범 팀장은 “친구 수보다 본디에서 지속해 관계를 맺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더 중시했다”고 말했다.

친구 수 제한이 주는 폐쇄성은 사용자에게 안정감을 줬다. 허정민(철학·23)씨는 “정해진 수만큼만 친구를 만들고 그들의 방으로 이루어진 나만의 아파트를 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아늑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친구 50명 제한은 팔로워 수에 집착하지 않는 장치가 되기도 했다. 안씨는 “만약 (친구 수) 제한이 없으면 게임을 즐기기보다 인맥을 자랑하는 용도로 쓰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지영 교수(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는 본디가 “인스타그램 등의 개방형 SNS에 피로감을 느끼던 사용자들을 겨냥해 MZ세대의 인기를 끌었다”고 분석했다.

본디의 소통 구조가 마냥 폐쇄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용자들은 플로팅 기능을 통해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도 있다. 친밀한 관계의 안전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더 많은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본디 코리아 김 팀장은 “(이러한 소통구조가) 현실 세계에서 성장하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했다. 친한 친구 수는 제한적이지만 언제든 낯선 이를 만날 수 있는 상태가 공존하는 건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플로팅 기능은 망망대해에 혼자 배를 타고 떠다니며 모르는 이의 메시지가 담긴 해류병을 줍거나 우연히 낯선 사람을 만나 짧게 대화할 수 있게 한다. 플로팅 기능은 본디가 아는 사람들끼리만 즐기는 사이버 방명록에 국한되지 않도록 하고 사용자가 모르는 이들과 접촉하는 수단이 된다. 허씨는 “현실에서도 버스 정류장에서 잡담을 나누거나 학교에서 옆자리 모르는 학생에게 질문을 건네며 시야의 범위를 넓혀가는데 그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안씨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는 주되 (친구 수 제한으로) 인맥 확장의 부담을 줄여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끝없는 바다를 항해하는 그래픽의 플로팅 기능은 사용자를 사색에 잠기게 만든다. 안 교수는 망망대해를 떠가는 배를 일종의 케렌시아로 봤다. 케렌시아란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로, 투우장의 소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홀로 잠시 숨을 고르는 자기만의 공간을 뜻한다. 배 위에서는 아바타로 표상되는 자신이 친구들과 분리돼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혼자 있을 때만큼 편하진 않기 때문에 사용자는 페르소나를 벗고 진정한 내가 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반짝' 인기 되지 않으려면

지속될 것 같던 본디의 인기는 2월 중순부터 국적 세탁과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 논란이 일며 정체됐다. 논란은 본디의 제작사인 메타드림이 중국 기업 트루리(True’ly)의 지적 재산권을 인수한 중국 기업이라는 의혹에서 시작했다. 중국 기업이 싱가포르 기업으로 국적을 세탁해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이다. 트루리의 소셜 네트워크 앱 ‘젤리’가 개인정보 침해 논란이 있어 사용자 사이에서 “본디도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졌다.

논란은 신뢰도에 영향을 미쳐 사용자들의 탈퇴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김희정(정외·20)씨는 본디를 사용할 초기에는 차세대 SNS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논란으로 함께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 생각을 바꿨다. 안씨는 “탈퇴한 후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30일간 보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사용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용자들의 탈퇴는 또 다른 이탈을 낳았다. 친구와의 내밀한 소통 공간이 특징인 만큼 주변 사람들의 참여가 결정적인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본디를 이용하던 윤씨의 지인 13명 중 7명은 탈퇴했다. 본디를 이용하는 지인 수가 줄어들면서 지속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강 교수는 “폐쇄적이고 개인정보를 많이 담고 있는 앱인 만큼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 정책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본디는 초대장이 있어야 가입할 수 있었던 클럽하우스와 방식은 다르지만, 소통 대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클럽하우스의 수순을 밟지 않기 위해선 폐쇄성의 한계를 보완하는 친밀한 소통성과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AI미래전략센터 김규리 선임연구원은 “본디가 클럽하우스의 전철을 밟게 될지는 차별화된 핵심 기능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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