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충돌로 파행된 국정감사’, ‘국감서 깜깜이 협상 지적 나와’.

이번 국정감사 때 발행된 기사의 제목이다. 언뜻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두 제목에는 모두 장애 차별적인 표현이 담겨 있다. ‘파행’은 절뚝거리며 걷는다는 뜻이고 ‘깜깜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 단어 모두 어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사용된다. 장애가 부정적인 상황을 묘사할 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언론에서 비판 없이 사용되는 차별적 표현에 관심을 가진 기자가 있다. <미디어 오늘>의 장슬기 기자다. 그는 7월 발간된 저서 ‘그런 말은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를 통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차별적 표현을 정리한다. 본지는 장 기자를 만나 차별적 표현과 우리의 일상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무비판적으로 사용되는 차별적 표현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디어오늘'의 장슬기 기자.   이자빈 사진기자
무비판적으로 사용되는 차별적 표현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디어오늘'의 장슬기 기자. 이자빈 사진기자

 

정치 속 혐오 표현에 주목하다

장 기자는 2020년 국회에 출입하기 시작하면서 정치 속 혐오 표현을 맞닥뜨렸다. 그는 이 시기가 “여야 간의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정치인들이 막말로 언론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시기였다”며 “장애인 혐오 표현을 사용하며 상대편을 비하하고 지지층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줬다”고 말했다. 

그해 곽상도 전 의원은 정의기억연대에 관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두고 “한쪽 눈을 감고, 우리 편만 바라보고, 내 편만 챙긴다”며 ‘외눈박이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장 기자는 묻는다. “실제로 한쪽 눈으로만 보는 시각장애인은 사고방식이나 관점도 편향적일까? 사안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합리적인 의견을 내지 못할까?” 당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곽 전 의원을 상대로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곽 전 의원은 “‘외눈박이’는 자연 상태에서 1만 6000분의 1 확률로 발생하는 기형이기 때문에 차별 표현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장애가 정치 싸움에 이용된 거죠. 관련해 장애인 단체들을 취재하는데 그 표현이 장애인 비하냐 아니냐를 떠나 ‘왜 우리의 이야기를 당신네들의 싸움에 쓰느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혐오 표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장 기자는 미디어오늘에 <이런 표현 쓰지 말자>라는 코너를 연재하며 정치인들의 혐오 표현을 비평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꿀 먹은 벙어리', ‘절름발이’, ‘집단적 조현병’, ‘정신 분열’ 등 기사 속 혐오 표현은 끊이지 않았다. 기사를 쓰면서 그의 관심사는 정치인들의 차별적 표현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차별적 표현까지 넓어지게 됐다.

주식 투자에 서툰 사람을 뜻하는 ‘주린이(주식+어린이)’, 헬스 초보자를 뜻하는 ‘헬린이(헬스+어린이)’와 같이 ‘`-린이'가 대표적이다. ‘-린이'를 붙여서 만드는 합성어는 무언가에 서툴고 부족함을 나타낼 때 쓰인다. 이처럼 우리의 주변에는 차별과 혐오의 언어가 만연하다.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 언어

그렇다면 어떻게 차별적 표현이 혐오로 이어지는 것일까. 장 기자는 저서에서 “일상 속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재구성한다”고 말한다. 특정 언어가 재구성한 현실은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킨다. 편견이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생각을 ‘음식’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에 비유한다. 

“비위생적이고 인체에 유해한 그릇에 음식을 담아낸다면 먹기 꺼려질 뿐 아니라 탈이 날 게 분명하죠.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차별적 표현을 대체할 ‘좋은 그릇'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는 “공부를 하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며 대안적인 언어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실시한 ‘온라인혐오표현인식조사’에 따르면 ‘실생활에서 혐오 표현을 경험한 장소가 방송매체'라는 응답이 56.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실제로 많은 기사들은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혐오 표현을 남발한다. <이런 표현 쓰지 말자>에 등장하는 혐오 표현 사례 대다수는 기사 제목에서 사용됐다. 이에 그는 독자를 기자로 상정하고 책을 썼다. 미디어의 무분별한 차별적 표현 사용을 되돌아보자는 의미였다. 발간 후 여러 방송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방송 작가님들이 잘 읽었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작가들의 경우 출연자들의 발언을 민감하게 확인해야 하니 제 책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기자라는 제 정체성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거죠.”

 

장슬기 기자가 집필한 ‘그런 말은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출처=YES24 홈페이지
장슬기 기자가 집필한 ‘그런 말은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출처=YES24 홈페이지

 

약자들을 위한 표현의 자유

혐오 표현을 사용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면 ‘표현의 자유'라는 논리가 항상 따라붙는다. 어떤 말이든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장 기자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혐오 표현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혐오 표현은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내포된 용어지만 ‘표현의 자유'는 이를 은폐한다. 그는 “시장경제에도 ◆시장실패가 있어 100% 자유로운 경쟁이 불가능하듯 언어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도 강자와 약자는 공정하게 경쟁하지 못한다"며 “표현의 자유가 강자들의 권리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에 의하면 “표현의 자유는 약자들의 필수 권리”다. 민주주의의 발전이 사회적 소수자가 힘을 얻는 과정이라면, 약자들이 공동체를 향해 당당하게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자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하려면 그들을 공격하는 목소리를 막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 혐오 표현을 계속 경계하는 거죠.”

차별적 표현이 가시화되면 자연스레 일상 속 혐오도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인권 확장에는 용어 전환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차별적인 용어를 대안적 용어로 대체함으로써 혐오를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차별적 표현을 비판하고 대체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이런 주제로 토론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때, 소수자는 공론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 시장실패: 시장에 자율적으로 맡겨 둘 경우 효율적 자원배분이 불가 또는 곤란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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