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뇨의학과는 ‘남성들만 다니는 곳’이라는 오해를 받곤 한다. 그러나 비뇨의학은 남성과 여성이 공통으로 지닌 비뇨기관 전반을 다루기에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학문이다. 여전히 비뇨의학과를 남성의 영역으로 여기는 인식이 만연한 가운데 국내 여성 최초로 비뇨의학과 전문의가 된 사람이 있다. 윤하나 교수(의학 박사·00년졸)는 1994년 본교 의대를 졸업한 후 1999년 비뇨기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 현재 이대서울병원 비뇨의학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윤 교수는 5일에서 8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제74차 대한비뇨의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2022년 올해의 여성비뇨의학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거짓말이죠. 실제로는 의사들끼리 모여 밥 먹고 수다 떨 시간조차 없어요.” 24시간 응급 콜 대기로 밤잠을 설쳐야 하는 일상에 지치기도 하지만 힘이 닿는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를 진료하고 싶다는 윤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성 비뇨의학 전문의 1호로서 이대서울병원 비뇨의학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윤하나 교수 제공=윤 교수
여성 비뇨의학 전문의 1호로서 이대서울병원 비뇨의학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윤하나 교수 제공=윤 교수

 

비뇨의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하기까지

윤 교수는 “이화여대에서 공부하지 않았다면 여성 의사가 전무했던 비뇨의학과에 감히 도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별의 제약 없이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무엇이든 도전하는 본교 학풍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남녀공학을 갔다면 비뇨의학과를 전공하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이화여대에서 6년을 보내며 성별과 관계없이 일단 밀어붙이고 도전하는 자질을 자연스레 갖추게 됐어요.”

여러 의학 분야 중 비뇨의학을 선택한 이유는 내과와 외과 성격을 모두 지닌 비뇨의학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학부 시절부터 그는 수술적 치료를 담당하는 외과의 성격을 띠는 동시에 약을 처방해 치료하는 내과의 특성도 지닌 비뇨의학의 독특한 학문적 성격에 관심을 가졌다. 여러 다른 학과 교수들의 적극적인 섭외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감히 관심 분야였던 비뇨의학을 선택했다.

윤 교수는 비뇨의학의 가장 큰 매력을 ‘은밀한 쾌감’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비뇨의학이 “남들에게 쉽게 이야기하기 어렵고 비밀스러운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써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참지 못해 고통받던 환자들이 치료 후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찾아올 때 큰 뿌듯함을 느낀다. “저는 신체 기관이 원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치료하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일상에서 소변을 6시간 참는 것도 힘든데 그보다 더 긴 시간을 고통 속에 살아온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은 정말 보람찬 일이죠.”

 

여성 비뇨의학 발전을 이끌다

윤 교수는 국내 여성 중 최초로 비뇨의학 전문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전공에 대한 개인 역량, 교육 인력을 갖춘 학과, 사회적 분위기의 삼박자가 잘 맞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뇨의학이 1945년에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와 선입견으로 인해 50년이 넘도록 여성 의사가 없었다. 하지만 윤 교수가 전문의에 도전할 당시에는 폐쇄적이었던 사회 분위기가 조금은 유연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회 통념상 여성들이 외과 의사를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는데 방광이랑 신장, 요도처럼 민감한 부위를 다루는 비뇨의학과에서는 더욱 그랬죠. 환자도 의사도 준비가 부족했던 거죠.”

여성 비뇨의학 전문의 1호로서 힘든 점은 없었냐는 질문에 윤 교수는 “오히려 뒤를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 나갈 수 있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했다”고 답했다. 윤 교수가 첫발을 내딛자 타 대학에서도 그를 모델 삼아 여성 후학을 양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분야든 처음이 가장 중요해요. 뒤이어 도전하는 사람들이 저절로 생기거든요.” 윤 교수를 시작으로 현재 비뇨의학과 자격증을 가지고 활동하는 여성 전문의와 레지던트의 수는 약 60명이다.

남성 의사와 여성 의사의 수가 거의 비등한 외국에 비하면 여전히 불균등한 성비지만 이러한 변화는 한국 여성 비뇨의학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여성 비뇨의학은 신체구조적으로 방광질환에 취약한 여성들에 특화된 학문이며 폐경 등의 이유로 생기는 신체기능 변화를 중심으로 다룬다. 윤 교수는 비뇨의학에 이론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특이요소가 많아 해당 증상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여성 의사들이 여성 비뇨의학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무래도 여성환자가 여성 의사에게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보니 여성 환자의 비뇨의학과 진입 문턱도 낮췄어요.”

 

윤 교수의 끝나지 않는 도전

하고 싶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해 끝장을 보는 성격의 윤 교수는 지난해 연구와 강의로 바쁜 일상 속에서 머슬마니아 대회에 도전했다. 그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2021 맥스큐 머슬마니아 피트니스 챔피언십’에서 2개 분야의 메달을 거머쥐었다. “의사는 제 생명을 갈아서 환자를 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을 잘 챙겨야 하니까 운동을 시작했죠.” 목과 허리의 디스크와 각종 성인병으로 고생하며 환자들을 진료하던 윤 교수는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본인의 건강관리가 필수임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운동과 식단관리를 시작했다. 그는 “앞으로도 꾸준한 운동을 병행하며 환자 진료, 연구 그리고 강의라는 네 마리 토끼를 다잡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여자들이 못하는 건 남자 화장실 들어가는 것밖에 없죠.” 윤 교수는 성별 때문에 못하는 일은 더 이상 없는 세상이라 말했다. “우리 과만 봐도 여자 의사가 있는 데다가 남자 간호사만 네 명인걸요. 성별은 전혀 상관없어요.” 그는 “일에 대한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못 할 것은 하나도 없다”며 위축되지 않고 일단 도전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동시에 그는 여전히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불합리한 차별이 있음을 인정했다. “아무래도 여성이 사회에서 일한 경력이 남성에 비해서는 짧지만 누군가가 새로운 불모지를 개척해준다면 어디서든 성별과 관계없이 능력만으로 선택되는 날이 올 거예요. 그런 날이 빨리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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