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뉴스데스크에서 태풍 힌남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현인아 기자  출처=MBC NEWS 유튜브
MBC 뉴스데스크에서 태풍 힌남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현인아 기자  출처=MBC NEWS 유튜브

“이 태풍은 수온이 가장 높은 해역을 통과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높은 수온은 태풍의 에너지죠. 태풍은 마치 지능이 있는 생명체처럼, 먹이가 가장 풍부한 곳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9월5일 우리나라가 태풍 힌남노의 영향권에 들었다. 태풍 소식에 사람들은 기상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봐야 했지만 복잡한 정보와 어려운 과학 용어는 큰 장애물이었다. 이때 어려운 태풍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한 보도가 주목받았다. 본지는 뛰어난 태풍 보도로 화제가 된 MBC 기후환경팀 현인아 기자(신문방송·97년졸)를 27일 만났다.

현 기자의 태풍 힌남노 보도는 큰 화제였다. 힌남노의 특이점과 이동 경로, 영향 등을 쉽게 풀어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태풍을 생명체에 비유하며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MBC 뉴스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은 조회수 500만 회를 넘었고, 영상에는 “이해하기 쉬운 해설이다”, “지구과학 수업을 듣는 것 같았다” 등 칭찬의 댓글이 가득 달렸다.

뜨거운 반응을 얻은 소감을 묻자 현 기자는 “원래 그런 방송을 해왔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4분 정도의 긴 시간을 혼자 보도하는 일이 흔치 않아요. 충분한 시간 덕분에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어 많은 분들께 다르게 느껴진 것 같아요.” ‘이번 태풍은 정말 이상하지 않아요?’, ‘이런 태풍은 처음 봤네’ 같이 기상청 취재원과의 편한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보도였다. “‘내일은 서귀포 남쪽 300km까지 오겠고’ 처럼 뻔한 얘기 말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채널, 보도들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어떤 의미를 담고 어디에 주안점을 둘지 오래 고민했죠.”

 

지상파 최초로 여성 기상팀장이 된 현인아 기자 제공=현인아 기자
지상파 최초로 여성 기상팀장이 된 현인아 기자 제공=현인아 기자

현 기자는 기상캐스터로 처음 MBC에 입사했다. 1997년부터 2016년까지 20년간 근무한 최장수 여성 기상캐스터이기도 하다. 20년이라는 시간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다음 해에는 방송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오랜 기간 그를 괴롭혔다. 여성으로서 최초, 최장수 타이틀을 얻기까지도 어려움이 많았다. “매 순간 제가 일 번 타자였고 선례가 전혀 없었던 일을 도맡아야 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기상캐스터 맏이로서 책임감도 막중했다.여성 선배가 없어 제일 먼저 결혼과 임신을 경험한 여자 기상캐스터였다. 그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도 두려웠다”고 말했다. 임신하고도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사는 그가 첫째를 임신한 뒤에 선뜻 복귀를 요청하지 않았다. “결혼하고도 방송을 계속하고 싶다, 아이를 출산하고도 계속했으면 좋겠다, 10년을 채웠으면 좋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방송을 오래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요.”

묵묵히 일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흘러갔다. “언제 어디서든 회사에서 연락 오면 바로 방송하고, 방송 전에 미리 가 있고,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회사한테 잘 보이려는 게 아니라 내 일에 대한 책임감이었죠. 그게 오랜 시간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여성 기상캐스터로서 많은 선례를 남겼지만, 처음부터 기상캐스터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의 꿈은 보도국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가 되는 것이었다. 학부 시절에는 본교 언론고시반 초대 실장을 맡기도 했다. “저희 때는 여자 기자를 한 명 뽑거나 아예 안 뽑았는데, IMF까지 겹쳤어요. 아나운서는 그래도 여자를 두세 명은 뽑을 것 같아서 지원했어요.” 그는 당시 MBC 아나운서 시험에서 최종까지 갔지만 떨어졌다. 차점자였던 그는 기상캐스터로 입사할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았다. “세 번 거절했죠. 기상캐스터는 안 한다고 했는데, 이재경 퇴임교수님(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께서 일단 MBC에 들어가면 여러 가능성이 생길 거라면서 저를 설득하셨어요.”

기상캐스터로 입사하고도 기사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일했다. 숫자를 많이 다루다 보니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기 쉬워 전문가들에게 여러 번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기상청에서 받는 똑같은 정보로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보게 하는 방송을 만들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저는 항상 제가 유통업자라고 생각했어요. 기상청이 도매상이면 나는 소매업자다. 매일 반찬이 바뀌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람처럼 오늘의 재료 중 뭐가 제일 신선도가 좋을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2018년에는 기상팀장을 맡으며 기자가 됐다. 기상 전문 남성 기자들이 담당했던 관례를 깬 지상파 최초의 여성 기상팀장이었고, 최초의 기상 캐스터 출신의 기상팀장이기도 했다. 그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상팀장으로 일하면서 모든 뉴스에 들어가는 기상 코너를 총괄했고 ‘오늘비와?’라는 유튜브 채널을 새로 만들었다. 후배 양성에도 큰 노력을 들였다.

현재는 기후환경팀에서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 관련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현 기자는 “앞으로 지구와 환경을 위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실천하게 만드는 보도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후나 환경 문제가 유행이어서 잠깐 실천하다 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의미 있는 실천으로 옮겨 갔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돌아봤을 때, 어떤 행동을 바꿔 지구를 지켜내는 것에 제 보도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언론인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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