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블랙핑크의 ‘Pink Venom’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지 29시간 만에 1억 조회수를 달성했다. 보이그룹 BTS의 노래 ‘Butter’는 발매 후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 케이팝(K-POP)의 인기가 뜨거운 요즘, 케이팝 댄스를 연구하고 책까지 쓴 사람이 있다. 바로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San Diego State University) 무용과 오주연 교수(무용학부, 석사·08년졸)다.

오 교수의 저서 ‘케이팝 댄스: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을 팬더밍하는 방법(K-pop Dance: Fandoming Yourself on Social Media)’은 출간과 동시에 아마존(Amazon) 대중춤·커뮤니케이션 분야 신간 1위에 올랐다. 오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인 최초 무용 이론으로 미국에서 종신 임용된 교수가 됐다.

본지는 지난 2일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오주연 교수를 화상으로 만났다. 어린 시절 췄던 춤을 추억하는 것부터 시작해 얼마 전 마무리 지은 저서 이야기까지, 인터뷰하는 내내 오 교수의 얼굴에는 춤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미소가 가득했다. 평생을 춤과 함께한 그에게 케이팝 댄스에 관해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무용과 오주연 교수 제공=오주연 교수 
미국 샌디에이고주립대 무용과 오주연 교수 제공=오주연 교수 

 

케이팝 댄스를 주제로 책을 쓰기까지

오 교수의 책 ‘케이팝 댄스: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을 팬더밍하는 방법(K-pop Dance: Fandoming Yourself on Social Media)’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40명의 케이팝 댄서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주로 캘리포니아, 뉴욕, 서울에 거주하는 10~20대 무용수들이었고 그중에는 전문 안무가도 있었다. 책의 전반부는 케이팝 댄스의 이론적 특징을 논한다. 후반부는 1980년대부터 2020년까지 케이팝의 진화, 그리고 대표적인 케이팝 댄서 사례로 방탄소년단을 연구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오 교수는 케이팝의 발전과 함께 자란 세대다. 그가 처음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2010년 걸그룹 소녀시대가 미국 미디어에 등장했다. 전문 댄서들처럼 춤을 소화하는 케이팝 아이돌의 모습에 오 교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무용을 전공한 제가 보기에도 케이팝 안무는 고난도의 춤으로 구성돼 있어요.” 이에 흥미를 느낀 그는 케이팝 안무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연구를 진행하며 케이팝의 역사부터 안무, 트레이닝 시스템 등 많은 것들을 알게 됐다.

미국에서 케이팝의 인기는 일시적인 ‘열기’로 치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보편적이다. “힙합을 가르친다고 놀라울 게 없듯이 케이팝도 마찬가지예요.” 오 교수는 “케이팝이 갑자기 뜬 것 같지만 지금 케이팝을 좋아하는 10대들은 어린 시절부터 케이팝을 듣고 자란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케이팝의 역사가 그만큼 오래됐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케이팝 초창기 전 세계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며 “이제 그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빨리빨리' 진화하는 케이팝 안무

오 교수는 케이팝 안무가 관객들이 원하는 것을 가장 빨리 반영하는 안무 양식이라고 본다. 이는 한국만의 독특한 ‘빨리빨리’ 문화에서 비롯됐다. 한국 특유의 경쟁 사회도 이에 한몫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효과적으로 협업을 해서 만들어지는 케이팝 안무는 유행을 빨리 반영할 수 있다.  

케이팝 댄스도 진화한다. 현재 케이팝 댄스와 소셜미디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대표적인 것이 틱톡(TikTok)이다. 최근 케이팝 업계는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고려해서 틱톡에 게시할 댄스 챌린지용 안무를 짜기도 한다. 오 교수는 “춤의 무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길거리에서 극장으로 무대가 이동했고, 이제는 텔레비전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했다. 작은 화면 안에서 시청자의 이목을 끌어야 하기에 화면에 잡히는 상체를 주로 사용하고 다채로운 표정으로 시선을 끈다.

오 교수에 따르면 춤은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시간에 취약하면서 민감하다. 수백 년 후에도 다시 읽힐 수 있는 문학 작품과는 달리 춤은 누군가 따라 추지 않으면 유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종과 성별을 불문하고 춤을 따라 추는 사람들의 존재는 케이팝을 지속시킨다. “기존의 텔레비전이나 뉴스와 같은 거대 미디어를 이끄는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백인 남자였는데, 케이팝 댄스는 여성이나 소녀들이 더 많이 참여하는 경우가 있어요.” 오 교수는 이런 상황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그룹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전복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본교 중앙댄스동아리 액션의 공연 모습 출처=이대학보DB
본교 중앙댄스동아리 액션의 공연 모습 출처=이대학보DB

 

춤이 가지는 힘을 믿으며

동양인 여성 학자가 케이팝 댄스에 대해서 연구하고 책을 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언어의 장벽과 각종 차별 속에서 오 교수는 ‘바닥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막막함’을 느꼈다. 미국인들에게 낯선 케이팝 안무를 소개하는 일은 어려움도 많았다. 오 교수가 처음 2012년 전미커뮤니케이션학회(NCA)에서 걸그룹 소녀시대의 안무를 분석한 논문을 처음 발표했을 때는 단 2명의 청중이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꾸준히 연구한 결과는 결국 빛을 발했다. 

“제가 세계춤 교양 강의를 처음 개설했을 때는 수강생이 18명뿐이었어요. 그런데 케이팝 및 아시아의 대중춤 내용을 확대하면서 지금은 거의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듣고 싶어 하는 대형 교양 수업이 됐어요.”

오 교수가 무용 이론 연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여성 교직원 비율이 높은 이화의 영향이 컸다. 학부 재학 당시 여자 교수님들에게 강의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롤 모델로 삼게 됐다. 오 교수는 “교수님들을 보면서 어느 순간 저도 당연히 교수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 교수의 다음 목표는 이번 책에 이어 ‘SNS 인플루언서 댄스’를 연구 분석한 책을 내는 것이다. 오 교수는 “춤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상상하게끔 하는 힘이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춤이 얼마나 우리 인생을 더 기쁘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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