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월 달력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가족에 관련된 기념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꼭 혈연관계로 맺어져야만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 부부를 중심으로 하는 정상 가족의 틀을 잠시 내려놓고 보면 고민 속에 잠 못 드는 밤을 함께 보내고, 아프거나 지쳐 있을 때 힘이 돼주고, 즐거운 일이 생기면 서로 나누는 이들이 모두 가족이다. 사진부는 가정의 달을 맞아 이화인들의 소소하고 특별한 가족사진을 촬영했다. 떨어져 있어도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자매들, 어느덧 7년 차 반려 거북과 반려인, 유닛메이트로 만나 새내기부터 졸업까지 가깝게 지내고 있는 친구들. 서로의 ‘가족’이 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 자매의 첫 가족사진

21살, 20살, 7살. 세 자매가 한 달 만에 뭉쳤다. 이주희(휴먼바이오·21)씨는 본교 입학 후 상경해 6개월 동안 혼자 살았다. 2022년 연년생 둘째 동생 이금희씨가 경희사이버대에 새로 입학하면서 같이 살게 됐다. 시험이 끝날 때마다 대전에 있는 본가에 내려갔던 두 자매는 이번 촬영을 위해 오랜만에 막내 이서희(7·여·대전 중구)양을 서울에서 만났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놀이터에서 이주희씨, 이서희양, 이금희씨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한 달만에 만난 세 자매는 놀듯이 즐겁게 촬영에 임했다. <strong>이주연 사진기자
서울 서대문구의 한 놀이터에서 이주희씨, 이서희양, 이금희씨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한 달만에 만난 세 자매는 놀듯이 즐겁게 촬영에 임했다. 이주연 사진기자

함께 자취하며 티격태격하는 일도 많았다. 이주희씨는 동생의 진지한 인생 조언이 가끔은 답답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옷을 가지고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옷을 더럽게 입거나 허락 없이 입는 서로가 밉기도 했다. 하지만 이주희씨에게 이금희씨는 어릴 적부터 맞벌이로 바빴던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워준 정신적 지지자였다. 서울에 갓 올라와 아팠던 동생을 밤새 간호한 적도 있다. 이주희씨는 이금희씨가 친구 같은 동생이라며 “서울에서 둘이 자취하니까 동생에게 더 속마음을 진솔하고 깊게 터놓을 수 있어 의지가 된다”고 자신의 감정을 털어놨다.

 

세 자매가 놀이터 미끄럼틀에 앉아 비눗방울을 보며 웃음 짓고 있다. <strong>이주연 사진기자
세 자매가 놀이터 미끄럼틀에 앉아 비눗방울을 보며 웃음 짓고 있다. 이주연 사진기자

떨어져 있다 보니 함께 추억을 남기는 일도 어려워졌다. 이주희씨는 “멀리 있다는 등의 핑계로 미루다 보니 가족사진을 찍을 기회가 없었다”며, “이번 기회에 자매들과 함께 첫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지난여름 제주도 여행이 마지막 가족 여행이었다는 세 자매는 이번 여름 가족 여행에 기대를 모았다.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으니, 이금희씨는 이서희양에게 “그냥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며 마음을 전했다.

 

이금희씨, 이서희양, 이주희씨(왼쪽부터)가 세 자매를 꼭 닮은 콩 인형을 하나씩 나눠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strong>이주연 사진기자
이금희씨, 이서희양, 이주희씨(왼쪽부터)가 세 자매를 꼭 닮은 콩 인형을 하나씩 나눠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주연 사진기자

 


우리집 거북이는 반수생(半水生)

첫 만남으로부터 어느덧 7년. 이은혜(디자인·22)씨는 중학교 1학년 때 반려 거북 ‘꼬부기’와 처음 만났다. ‘아프리카 헬멧티드 터틀(African Helmeted Turtle)’인 꼬부기는 종 특유의 웃는 얼굴이 트레이드 마크다. 14살 소녀는 꼬부기를 “정말 잘 키워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경기도 구리시에 거주하는 이은혜씨는 앞으로 전면 대면 수업이 진행되더라도 자취는 하지 않을 계획이다. 꼬부기를 책임지고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번 밥을 주고, 이삼일에 한 번은 84L 용량의 수조에 담긴 물을 갈아주고, 수온은 27°C 정도로 맞춰주며 햇빛을 대신할 자외선램프를 켜주는 것까지 이은혜씨는 꼬부기의 ‘반려인’으로서 신경 쓸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은혜씨에게 힐링이 되는 ‘물멍(물 보며 멍 때리기)’를 재연했다. 수조 앞에 누워 꼬부기와 눈을 맞추며 꼬부기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관찰하는 것이 이은혜씨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strong>김지원 사진기자
이은혜씨에게 힐링이 되는 ‘물멍(물 보며 멍 때리기)’를 재연했다. 수조 앞에 누워 꼬부기와 눈을 맞추며 꼬부기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관찰하는 것이 이은혜씨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김지원 사진기자

 

꼬부기 사진으로 만든 이은혜씨의 대학교 첫 과제물 <strong>제공=이은혜씨
꼬부기 사진으로 만든 이은혜씨의 대학교 첫 과제물 제공=이은혜씨

이렇게 정성을 다함에도 개나 고양이처럼 주인을 알아보지는 못하는 꼬부기에게 서운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려니 이해한다며 이은혜씨는 “꼬부기에게는 사람들이 다 비슷하게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꼬부기가 따뜻한 램프 아래에서 목과 팔다리를 대(大)자로 쭉 뻗고 잘 때 굉장히 귀엽다고 말하는 이은혜씨의 눈에는 반려 거북을 향한 애정이 듬뿍 서려 있었다. 22학번 신입생인 이은혜씨는 대학교 첫 과제물로 꼬부기 사진이 들어간 영화 포스터를 만들어 제출했다.

 

이은혜씨의 반려 거북이 꼬부기. 꼬부기는 웃는 입과 순둥한 표정, 겁이 많은 성격이 매력이다. <strong>김지원 사진기자
이은혜씨의 반려 거북이 꼬부기. 꼬부기는 웃는 입과 순둥한 표정, 겁이 많은 성격이 매력이다. 김지원 사진기자

사람처럼 대화가 통하지는 않아도 꼬부기는 이은혜씨에게 힘이 되는 존재다. 우울한 일이 있을 때는 수조 옆에 누워 멍하니 꼬부기를 바라보곤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기분이 어느새 나아지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꼬부기의 사진을 노트북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놓고 힘들 때 보면서 기운을 차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겨울 이은혜씨는 꼬부기가 걱정돼 눈물을 펑펑 흘렸다. 꼬부기에게 처음으로 심한 상처가 난 것. 수조에 넣어준 수돗물에 염소가 남아있어 몸이 간지러웠던 꼬부기는 턱뼈가 보일 정도로 턱을 긁어댔다. 한 달 내내 약을 발라줘야 했다. 이은혜씨는 항상 한결같은 꼬부기가 사랑스럽지만 “아플 때도 별다른 기색이 없는 점은 걱정된다”며 “아플 땐 아프다고 표현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꼬부기를 작은 어항으로 옮겨 눈높이를 맞췄다. 이은혜씨가 조심스레 어항을 들고 있다. <strong>김나은 사진기자
꼬부기를 작은 어항으로 옮겨 눈높이를 맞췄다. 이은혜씨가 조심스레 어항을 들고 있다. 김나은 사진기자

 


엄마보다 자주 보는 우리

E-house(이하우스) 301동 505호. 2018년 이곳에서 여섯 명의 새내기는 유닛메이트가 됐다. 신설 학과였던 휴먼기계바이오공학부(휴먼바이오)의 학생들을 배려한 기숙사 우선 배정 제도 덕에 호실은 모두 휴먼바이오 18학번 학생으로 구성됐다. 공식 입사일에 가장 먼저 입사한 이예빈(휴먼바이오·18)씨는 새 식구 한 명 한 명을 맞이했다. 5번 방에 입사해야 했던 이율화(휴먼바이오·18)씨가 방 번호를 착각해 1번 방에 먼저 짐을 풀면서 벌어진 소소한 사건도 있었다. 1번 방의 진짜 주인인 이보경(휴먼바이오·18)씨가 도착했을 때 누구 것인지 모르는 짐이 이미 있던 상황이었고, 이씨는 그 짐을 거실로 옮겨뒀어야 했다. 전후 상황을 모르는 이예빈씨는 거실에 놓인 짐 때문에 냉장고 문이 막혀 화를 내기도 했다. 지금은 웃으면서 나눌 수 있는 추억이 됐다.

 

연구협력관 앞 횡단보도에서 비틀즈의 ‘Abbey Road’(1969) 앨범 커버를 오마주한 가족사진을 남겼다. 이들에게 연구협력관은 많은 추억이 깃든 특별한 장소다. 왼쪽부터 이소현씨, 이보경씨, 이율화씨, 이정원씨, 이예빈씨. <strong>김영원 사진기자
연구협력관 앞 횡단보도에서 비틀즈의 ‘Abbey Road’(1969) 앨범 커버를 오마주한 가족사진을 남겼다. 이들에게 연구협력관은 많은 추억이 깃든 특별한 장소다. 왼쪽부터 이소현씨, 이보경씨, 이율화씨, 이정원씨, 이예빈씨. 김영원 사진기자

여섯 명은 같이 살면서 규칙이 필요했다. 다 같이 모여 서로 청소할 구역을 나누고 규칙을 정했다. 첫 학기에는 규칙이 나름 잘 지켜졌지만 2학기부터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그럼에도 끝까지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모두 무던한 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금방 친해져 지금까지 인연을 유지해온 비결에 대해 “서로 결이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새내기 시절 공동거실에서 종강을 기념하며 ‘쓸모없는 선물 주기’를 했다는 이들은 대부분이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졸업을 준비하는 지금도 크리스마스, 연말에 마니또를 정해 선물을 주고받으며 기념일을 챙긴다. 생일에는 생일을 맞은 사람이 밥을 사주는 문화도 지켜오고 있다.

 

5명의 유닛메이트들이 정문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이하우스로 가고 있다. 이예빈씨(맨 앞) 옆에 이날 참석하지 못한 이소연씨의 자리를 남겨뒀다. <strong>김영원 사진기자
5명의 유닛메이트들이 정문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이하우스로 가고 있다. 이예빈씨(맨 앞) 옆에 이날 참석하지 못한 이소연씨의 자리를 남겨뒀다. 김영원 사진기자

이들은 같은 고난을 겪은 것이 끈끈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휴먼바이오 2학년의 전공선택 과목인 <고체역학>, <유체역학>, <의용신호처리> 등은 이들에게 공동의 고난이었다. 2018년 이후 더 이상 모두 한 공간에 모여 살지는 않았지만, 어려운 과목을 함께 공부하며 긴 시간 동고동락했다. 이예빈씨는 “2학년 말에 가정사로 학교도 빠지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다들 걱정 말라며 전공과목의 필기를 보내주는 등 고마운 일이 많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소현(휴먼바이오·18)씨는 “휴학하고 학교와 멀어졌던 시기를 친구들 덕에 잘 극복했다”며 “학교라는 공간과의 거리감을 친구들이 좁혀줬다”고 전했다.

 

부모님보다 자주 보는 유닛메이트들의 우정이 시작된 이곳, 이하우스 301동 앞에서 이들만의 가족사진을 촬영했다. <strong>김영원 사진기자
부모님보다 자주 보는 유닛메이트들의 우정이 시작된 이곳, 이하우스 301동 앞에서 이들만의 가족사진을 촬영했다. 김영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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