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문장가 신유한에 대한 평전 ’천하제일의 문장’으로 제 41회 두계학술상을 수상한 하지영 연구교수 <strong>이주연 사진기자
조선후기 문장가 신유한에 대한 평전 ’천하제일의 문장’으로 제 41회 두계학술상을 수상한 하지영 연구교수 이주연 사진기자

“신유한은 해유록 저자로만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몇몇 중요한 순간이 있지만 이것만으로 우리가 살아온 삶 전체가 완성되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관점에서 저는 최고가 되고자 했던 문장가이면서도 누군가의 스승, 벗이었던 신유한의 모든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본교 한국문화연구원 하지영 연구교수가 2022년 5월6일 제41회 두계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두계학술상은 한 해 동안 나온 국학, 문학, 사학 분야 단행본 중 성과가 우수한 저서의 작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하 교수는 조선 후기 문장가 청천 신유한에 대한 ◆평전 ‘천하제일의 문장’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신유한은 조선 후기 문장가로, 유명한 저서로는 해유록과 청천집 등이 있다. 한미한 가문의 서얼로 태어나 장원급제했음에도 출신 성분의 한계에 좌절할 수밖에 없던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하 교수는 학부 시절 이혜순 명예교수(국어국문학과)의 수업을 계기로 신유한을 처음 접했다. 그는 해유록에 대한 수업을 들으며 신유한이 추구했던 문장들, 습작했던 작품들에 자연스레 관심을 두게 됐다. 해유록은 일본 ◆제술관으로서 당시 일본의 변화상을 기록한 것으로 신유한의 가장 유명한 저서 중 하나다.

이후 하 교수는 본교 대학원 재학 중 박사 학위 논문인 ‘18세기 진한고문론의 전개와 실현 양상’에서 신유한을 중요 작가로 다루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연구에서 신유한의 일부만 다뤄야 했던 것이 그의 마음 한편에 아쉬움으로 자리했다. “연구 논문에서 다루다 보니 신유한이라는 인물의 특징과 그 사람이 쓴 작품에서 제 논지에 맞는 부분만 다루는 측면이 있었죠.”

하 교수는 신유한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삶 자체를 연구하고자 했다. 2016년 한국학진흥사업단 주관 한국학총서 사업에 참여하며 평전 집필의 기회를 얻은 것이 좋은 기회가 됐다. 하 교수를 포함한 4명의 인문학 연구자가 18세기 대표 작가인 신유한, 유한준, 이용휴, 조귀명에 대해 평전을 집필했다. 물론 하 교수는 신유한 담당이 됐다.

하 교수는 평전에서 신유한이 지녔던 성공에 대한 솔직한 욕망, 뚜렷한 비판의식, 남들과는 다른 문장을 쓰고자 했던 창작의식에 특히 주목했다. 그는 “나약하고 부족한 점이 많았던 신유한이 살면서 거쳤던 좌절과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흔적에 집중했다”며 “경계 밖 사람으로서 경계 안 사람들이 못 보고 지나쳤을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모습은 우리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신유한의 욕망과 비판의식에 주목한 하 교수의 시선은 ‘경계 밖’이라는 용어에서 두드러진다. 하 교수는 평전에서 ‘경계 밖’이라는 말로 신유한을 표현한다. 그가 말하는 ‘경계’란 조선 후기 당시 사대부가 보편적으로 추구했던 가치와 문장, 삶을 의미한다. 신유한은 비루한 양반 가문에서 서얼로 태어나 항상 ‘경계 밖’ 사람이었고, 항상 ‘경계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신유한의 창작의식은 그의 문장에서 드러난다. 하 교수의 말에 따르면 신유한이 살았던 시대에는 성리학의 이데올로기를 쉽게 풀어쓰는 문장을 훌륭히 여겼다. 그는 “이를 따랐던 사대부와는 다르게 신유한은 독특하고 예술적 가치를 지니는 문장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조선후기 문장가 신유한에 대한 평전 ’천하제일의 문장’으로 제 41회 두계학술상을 수상한 하지영 연구교수 <strong>이주연 사진기자
조선후기 문장가 신유한에 대한 평전 ’천하제일의 문장’으로 제 41회 두계학술상을 수상한 하지영 연구교수 이주연 사진기자

신유한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는 한편 하 교수는 ‘신유한이 천하제일의 문장가인가?’라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적인 능력에서 신유한이 연암 박지원이나 삼연 김창흡과 같이 유명한 학자들과 대등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며 “(그러나 신유한의 삶이나 문학 작품을 봤을 때) 결점은 많았지만, 문장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겠다는 열망이 가득했던 인물이었다”고 덧붙였다. 비록 신유한이 천하제일의 문장가는 아닐지언정 ‘천하제일의 글을 읽고 천하제일의 문장을 쓰라’는 본인의 말만큼 그의 삶을 관통하는 표현은 없기에 평전의 제목이 ‘천하제일의 문장’이 된 것이다.

집필은 하 교수에게 큰 깨달음을 제공했다. 아직 연구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자료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자료 조사 과정에서 신유한 가문을 방문해 300년 가까이 된 친필 자료를 발견했다”며 “신유한 문학에 대한 번역과 연구가 일제강점기 때부터 오랜 기간 동안 이뤄졌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 연구자들에 비해 실증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신유한의 삶과 문장에 대해 작업한 부분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신유한 후손가에 아무도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하니 신유한 가문에 직접 가서 조사한 사람은 아마 제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체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그는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대중적인 학술서’를 쓰고자 했던 목표를 100% 이루지 못해서 아쉽다”며 “대중들에게 신유한의 문장과 신유한이 살았던 18세기 조선의 모습을 쉽게 풀어 쓰려고 노력했지만 앞으로 더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작업 과정에서 스스로 과제를 던졌다. 바로 ‘신유한에 대한 전설, 다른 문인들이 남긴 기록,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었다. 저술가로서 인물과 문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자신의 평전이 ‘경계’와 투쟁했던 신유한의 영혼에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는 남산 근처에서 작업하던 중 집들이 빼곡히 차 있는 남산의 전경을 바라보며 몸소 신유한의 외롭고 힘들었던 심정을 이해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수많은 사대부들이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고 있는 그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없던 신유한의 심정 말이다.

조선후기 문장가 신유한에 대한 평전 ’천하제일의 문장’으로 제 41회 두계학술상을 수상한 하지영 연구교수 <strong>이주연 사진기자
조선후기 문장가 신유한에 대한 평전 ’천하제일의 문장’으로 제 41회 두계학술상을 수상한 하지영 연구교수 이주연 사진기자

이어 그는 신유한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현재 신유한 산문을 대중들이 읽기 쉽게 번역하고 평서를 붙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현시점 그의 목표는 신유한을 중심으로 18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글쓰기 양식, 사유의 틀을 보여준 문인들을 연구해 조선 후기 모습을 세심히 그려내는 것이다.

“이 평전을 통해 신유한이라는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이 있으니 본받아야 한다기보다는, 우리가 경계 안에서 살아가면서 모르고 지나쳤던 부분들을 하나하나 다 지적하고 목소리 냈던 신유한의 모습을 되짚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평전: 저자가 자신만의 관점으로 한 인물의 업적, 활동, 삶, 주변 인물, 시대적 상황 등을 평가하고 서술한 전기문

◆제술관: 외국에 사신을 파견할 때 동행하는 수행원으로, 파견 기간 동안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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