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벗’으로 활동하는 김유정씨 <strong>김지원 사진기자
‘동백벗’으로 활동하는 김유정씨 김지원 사진기자

“제게 위안이 됐던 캘리그라피와 그림으로 벗들과 행복을 나누고 싶어요”

따뜻한 글귀와 그림으로 이화인들에게 희망을 전하려는 이가 있다. 직접 쓰고 그린 캘리그라피(calligraphy)와 그림을 본교 재학생들과 공유하는 김유정(과교·21년졸)씨다. 27일, 본교 앞 한 카페에서 ‘동백벗’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김씨를 만났다.

캘리그라피에 대한 김씨의 열정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도 캘리그라피에 관심은 있었지만 배울 수 있는 마땅한 수업이 없었다. 결국 그는 독학을 통해 캘리그라피의 세계에 입문했다. 무작정 포털사이트나 SNS에 ‘캘리그라피’를 검색해 계속 따라 쓰기 시작했다. 미술 대학에 재학하는 친구에게 잉크를 선물 받은 것을 계기로 잉크 캘리그라피 습작도 시작하게 됐다.

그는 캘리그라피를 시작한 지 약 1년 만인 2018년부터 종종 익명으로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everytime.kr)에 캘리그라피 작업물을 올렸다. 좋은 글귀를 통해 위로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점차 시간과 금전에 여유가 생기면서 캘리그라피를 써주거나 그림을 그려주는 무료 이벤트도 열게 됐다. ‘동백벗’이라는 활동명도 이때 생겨났다. ‘동백벗’은 김씨와 동명이인 소설가 김유정의 대표작 <동백꽃>에서 ‘동백’을 따와 그 뒤에 ‘벗’을 붙여 만든 이름이다.

인터뷰 현장에서 김유정씨가 ‘#벗들에게 희망을’ 문구로 캘리그라피를 쓰고 있다. <strong>김지원 사진기자
인터뷰 현장에서 김유정씨가 ‘#벗들에게 희망을’ 문구로 캘리그라피를 쓰고 있다. 김지원 사진기자

‘#벗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시점도 김씨가 동백벗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쯤이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이나 개강 등 여러 이유로 지쳐 있는 벗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며 “제가 임의로 글귀를 정하기보다는 각자 위로를 얻는 문구를 써드리고 싶어서 ‘#벗들에게 희망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의 이벤트는 주로 비대면으로 진행되는데, 그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에브리타임에 게시한다. 캘리그라피를 원하는 이가 오픈채팅방에 접속해 작업을 의뢰하면 김씨가 이를 작업해 택배로 발송하는 방식이다. 보통 이벤트당 10명 내외의 신청자가 선착순으로 선발된다.

비록 무료로 진행하는 이벤트지만 김씨가 습작을 게을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만족스러운 작업물이 나올 때까지 작업을 끝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 번 만에 마음에 든 적도 있지만 때로는 한 문구를 몇십번씩 쓸 때도 있어요. 짧은 문구는 30번을 반복해서 쓸 때도 있고 긴 글은 오타가 나거나 잉크가 번져 6번에서 10번까지 다시 쓴 적도 있죠.” 김씨는 그런데도 작업물이 점점 나아지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이전 김씨는 ECC에서 대면 이벤트도 종종 진행했다. 그는 다양한 잉크, 종이와 함께 사람들을 기다렸다. 작품을 원하는 이가 등장해 색과 서체를 고르면 즉석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선택을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원하는 글귀에 걸맞은 잉크의 색이나 서체 등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방식에 특별한 선호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김씨는 전했다. 그는 “대면 이벤트는 벗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느낌이 들어 좋고 비대면 이벤트는 대면에 비해 더 많은 벗에게 선물을 드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김유정씨가 그동안 해온 작업물 <strong>김지원 사진기자
김유정씨가 그동안 해온 작업물 김지원 사진기자

김씨는 캘리그라피 이벤트를 진행할 때 요청받은 문구에 어떤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는지 고민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벗들이 요청하는 문구들의 의미를 잉크와 글씨체에 담아내려고 노력한다”며 “이 글귀를 쓰면서 오히려 위안을 많이 얻는다”고 말했다. 그림 이벤트에서는 사람들이 주로 자신감이 넘치거나 웃고 있는 사진을 건네주는데, 김씨는 이런 행복한 순간을 그릴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떨리는 순간도 존재했다. 온라인상에서 작품을 선보인 지 4년이 지났지만, 그는 이벤트 작품을 배송할 때는 매번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캘리그라피를 사진으로 찍으면 잉크색이 잘 안 담겨 실물과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작업물을 실물로 보고 실망하시지는 않을지 매번 마음을 졸이곤 해요.”

김유정씨가 그동안 해온 작업물 <strong>김지원 사진기자
김유정씨가 그동안 해온 작업물 김지원 사진기자

하지만 그런데도 캘리그라피와 그림은 김씨의 삶 그 자체다. 그는 평소 외출할 때도 작은 종이와 펜을 챙겨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모조리 적는다. 김씨는 “종이를 보면 그날 무슨 얘기를 했는지 다 적혀 있다”며 “카페에서도 딸기 음료가 맛있어서 딸기를 그리는 등 평소에 낙서 아닌 낙서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김씨의 SNS 계정 소개란에 ‘잡다구리 낙서들’이라는 말이 적혀 있는 이유기도 하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씨는 “온라인상에서 ‘캘리그라피 어떻게 시작해야 해요?’, ‘어떻게 배우신 건가요?’라는 댓글이 많이 달린다”며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진다면 직접 벗들과 만나 캘리그라피를 가르쳐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 졸업해 교정을 떠난 김씨지만 벗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한결같다.

그는 “중간에 캘리그라피를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친구의 도움 덕에 즐겁게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그때 포기했다면 제 인생의 유일한 낙을 영영 잃었을 텐데 무사히 고비를 넘겨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얻게 됐다”며 “캘리그라피나 그림을 시작하길 망설이고 걱정하는 벗들에게도 이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을 따름”이라고 전했다.

‘동백벗’으로 활동하는 김유정씨 <strong>김지원 사진기자
‘동백벗’으로 활동하는 김유정씨 김지원 사진기자

특별히 좋은 작품이나 기억에 남는 이벤트는 없었냐는 물음에 김씨는 “못 고르겠다”고 답했다. 모든 작품과 이벤트가 매 순간 행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벗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고 전했다. ‘벗’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미소를 띠는 모습에서 이화인에 대한 김씨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제가 지금까지 캘리그라피와 그림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벗들의 따뜻한 응원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이 제 작품으로 즐거움과 위안을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비록 졸업생이지만 계속 동백벗이라는 이름으로 벗들과 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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