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제공=김도요씨
제공=김도요씨

입주자와 경비원이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명절이 되면 이웃과 선물을 주고 받는 일상. 지극히 평범한 것 같지만 시설에 모여 사는 중증 장애인에게는 다소 먼 이야기다. 그 모순을 바로잡고자 시설에서 일생을 살아온 중증 장애인들을 시내 아파트로 불러온 이가 있다. 바로 10년차 사회복지사 김도요(사학·07년졸)씨다. 본지는 4월 장애인의 달을 맞아 ‘동행빌리지’의 원장이자 책 ‘우리도 아파트에 삽니다’ 저자인 김씨를 만났다.

김씨가 원장으로 근무하는 동행빌리지는 여수에 위치한 아파트형 장애인 거주 시설이다. 4동의 건물, 약 1000세대로 구성된 아파트에 총 30명의 중증 장애인이 거주 중이며 이들은 한 세대에 4~5명씩 공동으로 지내고 있다. 모든 입주자가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중증 장애인이기에 19명의 사회복지사도 교대 근무를 통해 곁을 지킨다. 중증 장애인이 사는 8세대를 제외한 나머지 세대에는 비장애인 거주자들이 살고 있다.  

이들이 기존에 거주하던 장애인 시설 ‘동백원’에서 지역사회 한가운데 위치한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김씨는 이에 대해 “평범한 삶을 누리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게 참 진부하리만큼 흔한 말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죠. 아직도 장애인 거주 시설은 도심에서 떨어진,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어요. 장애인 관련 시설을 지을 땐 주민들 눈치 보는 건 물론이고 부당한 반대 시위에도 맞서야 하고요. 사회는 줄곧 장애인을 분리해 왔어요. 우리는 분리된 삶을 거부하고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아파트로 이사 온 겁니다.”

김씨는 동행빌리지를 구축하는 업무를 전담했다. 그는 가장 먼저 서류 작업을 통해 보건복지부 예산을 확보한 후, 곧바로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독 주택, 원룸 등 모든 지역사회 주택이 후보군에 있었다. 그 중에서 아파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김씨는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살 수 있는 곳이 아파트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파트를 제외한 모든 거주 시설에는 제약이 존재했다. 단독 주택은 아무리 단층이어도 대문 앞에 턱이 있었고, 원룸은 엘리베이터가 작고 복도도 좁아 휠체어 운용이 불가능했다. 결국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아파트 뿐이었다. 김씨는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내내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살 수 있는 집이 굉장히 한정돼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며 허탈함을 드러냈다.

보금자리를 아파트로 결정한 후에도 김씨는 바쁘게 일했다. 그는 전국의 아파트형 장애인 거주 시설을 견학하며 운영방식, 직원의 근무 형태 등을 샅샅이 살폈다. 입주자를 모으기 위해 동백원의 장애인과 보호자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그 노력이 지금의 동행빌리지를 만들었다.

현재 김씨는 동행빌리지의 원장으로서 장애인 입주자들이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올바르게 돕는 방식을 제시하고자 노력 중이다. 

“사회복지사는 무의식중에 장애인을 가르치려 들기 쉬워요. 그렇지만 장애인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원장으로서 사회복지사 직원들과 장애인 입주자들이 서로 의견을 묻고 논의하며 지낼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김씨는 장애인 입주자들이 연습 끝에 스스로 집을 찾아오는 데 성공하거나 장애인 입주자의 인사를 다른 이웃이 정답게 받아줄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기쁜 순간도 있었지만 괴로운 순간도 많았다. 김씨는 “전염병을 옮기는 것도 아닌데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싫어하거나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터놓았다. 이어 “한 번은 아파트에 장애인이 돌아다녀서 불안하다는 민원을 받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공고하다는 것을 체감한 김씨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고, 2021년 11월 ‘우리도 아파트에 삽니다’를 출간했다. 해당 책은 동행빌리지에 사는 장애인 입주자들이 어떻게 이사를 결정했으며 무엇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지 등 소소한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담아냈다. 김씨는 “장애인도 우리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건네고자 책을 쓰게 됐다”고 전했다. 

장애인 입주자들의 일상이 생생히 구현된 이 책은 사회복지사 직원들의 ‘홈 일지’를 토대로 완성됐다. 홈 일지는 단어 그대로 입주자들의 홈(Home)에서 일어나는 하루의 기록 그 자체다. 이를테면 ‘마트에 갔는데 사장님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같은 단순한 기록이 적혀 있다. 김씨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일상에 스며드는 과정을 기억하기 위해 일과를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이 책은 장애 인식 개선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쓴 책”이라며 “장애인이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사람들, 그렇기에 장애인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많이 읽어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책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변화하기를 소망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분리돼 살아왔기 때문에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요. 그래서 자꾸 마주치고 만나며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식당에서, 카페에서, 공원에서 장애인을 마주치다보면 그들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동시에 우리 사회가 변화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현재 김씨는 장애인 인식 개선 외에도 ◆유니버설 디자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장애인이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며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파트 내 새로 생긴 산책로에 경사로를 설치할 것, 동네 은행에 있는 경사로 폭을 넓힐 것 등을 건의하며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끝으로 김씨는 장애인의 편의를 위한 요구사항은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강조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장애인은 계속 요구만 하는 사람, 도움을 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비춰질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편의시설이 갖춰지는 것은 사실 장애인만을 위한 건 아닙니다. 시설을 이용하는 데 있어 장애인에게 편하면 사회 전체 구성원에게 편하니까요. 경사로 등 편의시설을 갖춰달라는 요구는 단순한 부탁이 아닌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복지에 기여하는 방식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앞으로도 다른 이와 연대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써보겠습니다.”

 

◆유니버설 디자인: 성별이나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이용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고안된 보편적인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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