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페이스에서 마케터로 근무하는 장은나씨 <strong>이주연 사진기자
닷페이스에서 마케터로 근무하는 장은나씨 이주연 사진기자

#우리는어디서든길을열지

23일 기준 인스타그램에 ‘우리는어디서든길을열지’를 해시태그로 내건 게시물은 약 1만4000개. 게시물 속 무지개 깃발을 든 캐릭터는 초록빛 배경으로 이어져 하나의 행렬을 이룬다. 2020년 코로나19의 여파로 ◆퀴어 퍼레이드(퀴퍼)가 불발되자 미디어회사 ‘닷페이스’(dotface)는 온라인 공간에서 퀴퍼를 진행했다. ‘우리는어디서든길을열지’는 2021년에 진행된 제2회 온라인 퀴퍼의 슬로건이다. 이 행사의 슬로건을 함께 만들고 기획한 사람은 누구일까. 20일, 합정의 한 카페에서 미디어 마케터이자 비건 크리에이터로 살아가는 장은나(언론∙19년졸)씨를 만났다.

 

닷페이스가 함께한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닷페이스는 젠더, 기후 위기, 노동, 장애 등 사회적 이슈를 영상 및 글 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미디어 스타트업이다. 그간 닷페이스는 10대 성매수 피해 여성, 텔레그램 N번방, 장애인 탈시설, 보호 종료 아동 등을 주제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해왔다. 2021년에 입사한 장씨는 닷페이스의 콘텐츠가 많은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홍보하는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영상의 ◆섬네일(Thumbnail)을 만들고 인스타그램을 관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제2회 온라인 퀴퍼는 입사 이후 장씨가 처음 맡은 대형 프로젝트였다. 아이디어 기획부터 홍보 집행까지 도맡은 장씨는 “두 번째 온라인 퀴퍼인 만큼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퀴어 퍼레이드가 오프라인으로 진행될 때 안 보이는 데서 하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왜 우리는 안 보이는 곳에 있어야 해? 왜 우리는 숨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죠.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우리는 어디서든 길을 열지’라는 슬로건이 탄생했다. 3주간 모인 온라인 퀴퍼 참여자는 자그마치 약 3만9000명. 온라인 퀴퍼 홈페이지에서 원하는 옷과 깃발을 선택해 생성한 캐릭터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면 참여가 끝난다. 장씨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대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 성소수자의 존재를 온라인 공간을 넘어 일상적인 장소에서도 가시화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닷페이스는 온라인 퀴퍼 행렬을 영상으로 제작해 버스정류장, 지하철 등 109개 광고판에서 상영했다. 또 신청자들의 요청에 따라 국회, 병원, 서점, 카페, 학교 등 357개 공간에 온라인 퀴퍼 포스터를 발송하기도 했다. 

온라인 퀴퍼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소감에 대해 장씨는 “뿌듯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온라인 퀴퍼 포스터가 소수자를 포용한다는 인증서가 된 것 같았다”며 “포스터가 붙은 장소에 간 사람들이 ‘여기는 열려있는 공간이구나’ 생각하고 안정감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길 바란다”고 말했다.

 

닷페이스 2021년 온라인 퀴퍼 기념 영상 속 참여자 행렬 캡쳐 <strong>출처=닷페이스 유튜브(youtube.com/facespeakawake)
닷페이스 2021년 온라인 퀴퍼 기념 영상 속 참여자 행렬 캡쳐 출처=닷페이스 유튜브(youtube.com/facespeakawake)

 

비건은 모두에게 열린 문, 유튜브 채널 ‘비건먼지’ 

장씨는 2020년부터 ◆사이드 프로젝트(Side Project)로 유튜브 ‘비건먼지 VeganMonji’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닷페이스로 이직 전 그는 광고 회사에 다니며 ‘사람 장은나’는 없고 ‘직장인 장은나’만 남은 것 같은 아쉬움을 느꼈다. 이에 2019년 말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소모임을 시작했고 이는 비건먼지 채널 개설로 이어졌다.

비건 콘텐츠가 지금보다 부족했던 2020년, 장씨는 영상을 통해 비건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자 했다. 평범한 학생과 직장인도 쉽게 비건을 접하고 시도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윤리적으로 깨끗하고 선한 사람들만 비건이 될 수 있다는 이미지를 깨고 싶었어요. 퇴근 후 맥주 마시기를 좋아하고 야근할 때면 가끔 회사 욕도 하는 평범한 직장인도 비건이 될 수 있다는 걸 전달하고 싶었죠.”

비건먼지는 비건에 대한 오해, 비건식 브이로그, 비건 관련 정보 등 다양한 관련 콘텐츠를 제작한다. 장씨는 비건먼지 제작자들과 모여 기획 회의 후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올리기까지 결과물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겁다고 전했다. 

“저희는 이 채널로 돈을 벌려는 것도 아니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 것도 아니에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우리가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비건먼지 '식물은 안 불쌍하냐고? 비건들이 직접 대답해줄게!' 영상 캡쳐 <strong>출처=비건먼지 VeganMonji 유튜브(https://www.youtube.com/channel/UCMdRPMt2fH-v-kpZvltwWQg)
비건먼지 '식물은 안 불쌍하냐고? 비건들이 직접 대답해줄게!' 영상 캡쳐 출처=비건먼지 VeganMonji 유튜브(https://www.youtube.com/channel/UCMdRPMt2fH-v-kpZvltwWQg)

 

끝없는 고민, 결론은 “좋은 이야기를 전하는 장은나가 되고 싶다” 

졸업 후 광고회사에 입사해 닷페이스로 이직까지. 그간 걸어온 길을 통해 직업에 대한, 나아가 삶의 방향에 대한 장씨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콘텐츠로 사람을 설득하는 설득 커뮤니케이션과 마케팅에 흥미를 느껴 광고계에 입성한 그는 마케팅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러나 광고 회사에서 실무를 하며 딜레마가 찾아오기도 했다. 비거니즘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동물성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장씨가 동물성 성분이 들어간 제품 홍보를 해야할 땐 하루종일 콘텐츠를 짜고 퇴근하며 “나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지속가능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2021년 닷페이스로 이직을 결심하고서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여기서 발을 떼면 다시 광고업계에 들어가기 힘들 것 같다’는 걱정이 한켠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닷페이스에서 마케터로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다음에는 새로운 비즈니스에도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직이 두렵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장씨는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시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구조적인 차별이 있잖아요. 일반 미디어에서 단일한 사건을 보도할 때 그 안의 구조적 차별을 함께 짚어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닷페이스는 이런 걸 짚어내는 미디어라서, 그 목소리가 더 많이 가닿을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사회에서 이야기돼야 할 것들을 가시화하고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보탬이 되면 좋겠어요.”

 

◆퀴어 퍼레이드: 성소수자로서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공개문화행사. 부스 프로그램, 공연, 퍼레이드 등으로 구성되며 매년 6월에 진행됐으나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부터는 진행되지 않았다.

◆섬네일(Thumbnail): 인터넷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작은 크기의 견본 이미지.

◆사이드 프로젝트(Side Project): 경제적 이유를 떠나 본업과 함께 평소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일을 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