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otgotten' 스틸컷. 제공=김수진씨
'Unfotgotten' 스틸컷. 제공=김수진씨

“위안부에 희생된 젊은 소녀들을 대상화해야만 고통을 전달할 수 있는 걸까. 할머님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실사화하지 않고서는 공감할 수 없는 것일까.”

김수진(서양화·14년졸)씨의 의문에서 출발한 애니메이션 ‘Unforgotten’(2020)이 학생 아카데미상(Student Academy Awards) 금메달 상의 영예를 안았다.

학생 아카데미상은 아카데미 시상식 개최 기관인 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협회가 주관하는 국제 학생 영화상이다. 김씨는 본교 졸업 후 캘리포니아 예술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실험 애니메이션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는 2021년 10월2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주제로 한 석사 과정 졸업 작품으로 국내 대학 애니메이션 부문 금메달 상을 받았다. 금메달 상은 각 부문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에 수여된다.

학생 아카데미상 역대 수상자로는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시리즈와 ‘인사이드 아웃’(2015)을 만든 피트 닥터(Pete Docter), ‘포레스트 검프’(1994)와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로버트 저메키스(Robert Zemeckis), '007 노 타임 투 다이'(2021)의 캐리 후쿠나가(Cary Fukunaga) 감독이 있다. 촉망받는 인재에게 주어지는 상이기에 학생 아카데미상은 영상학 전공생들의 꿈의 관문이다.

‘Unforgotten’은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김순덕 할머니, 김화선 할머니의 증언 음성을 바탕 삼아 피해자의 아픔과 좌절감을 3D 애니메이션으로 시각화한다. 피해자에게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는 폭력적인 이미지 사용을 지양하고 상징적인 시각물을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김씨는 위안부 가해자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타 실사 영화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간접적인 묘사법을 택했다. 그는 “여성의 몸이 어떻게 유린당하고 고문 받았는지 자극적 언어로 묘사하는 일은 폭력을 재생산한다고 생각했다”며 “대신 할머님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시적이고 비유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의 용기 있는 행보는 종종 간과됐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세상을 향해 목소리 낸 피해자분들의 저항 의지에 초점을 맞췄어요.”

'Unforgotten' 스틸컷. 제공=김수진씨
'Unforgotten' 스틸컷. 제공=김수진씨

일본군이 피해자를 가둔 위안소는 작중에서 ‘붉은 방’으로 표현된다. 이에 대해 김씨는 “성폭행 당한 여인의 몸이 널브러져 있지 않아도 그 공간만으로 폭력과 고통을 얘기할 수 있다”며 “피 묻은 이불, 외압에 의해 깨지는 붉은 벽을 통해 피해자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암시적으로 나타냈다”고 밝혔다.

작품 주제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택해 상세히 조사하고 표현 하나에도 수정에 수정을 반복하기까지, 그의 열정은 역사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됐다. 김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해 자신의 작품에 역사를 담고 싶다고 줄곧 생각해왔다. 그는 원하던 주제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고통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기도 했다. “가슴 아픈 증언 기록을 살펴보며 이 거대한 이야기를 몇 분짜리 졸업 작품에서 다룰 수 있는지, 내가 그만한 역량이 되는 사람인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부딪쳤다. 피해자의 경험을 작품에 반영하기 위해 위안부 피해자 증언 영상을 밤새 보며 당시 현장을 상상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위안소를 재현한 방에도 직접 들어가 보며 점차 그들의 고통에 가까이 다가갔다.

김씨는 졸업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다. 그만큼 많은 공을 들였지만 학생 아카데미상에 출품할 때 수상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주제가 무거운 데다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전개 방식에서 벗어난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소재가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문제라는 미국 정계의 입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김씨는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도 수상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예술은 다른 분야에 간섭받지 않고 독립적인 영역에서 기능해야 한다’는 본인의 철학을 관철했다. 그는 “이번 학생 아카데미에서 사회 고발적인 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 많은 작품들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며 “아카데미 측도 작품을 매개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강조한 것 같다”고 전했다.

현재 김씨는 캘리포니아 예술대학 석사 학위 취득 후 2021년 가을학기부터 애리조나 주립대(Arizona State University) 조교수로 임명돼 교직 생활을 시작한 상태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훌륭한 인격을 갖춘 스승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로서의 행보도 이어갈 예정이다.

“내가 가진 예술적인 재주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Unforgotten’처럼 여성의 고통스러웠던 시기를 고발하거나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이야기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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