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학기 제도를 통해 뮤지컬 ‘사색의 성야’를 기획한 ‘아일’의 팀원 조세연씨, 이혜선씨, 배윤진씨, 장세민씨(왼쪽부터). 김지원 사진기자
도전학기 제도를 통해 뮤지컬 ‘사색의 성야’를 기획한 ‘아일’의 팀원 조세연씨, 이혜선씨, 배윤진씨, 장세민씨(왼쪽부터). 김지원 사진기자

잊혀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사색의 성야(星夜)’가 21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19일부터 4회에 걸쳐 올라간 공연은 관객 약 300명의 눈을 사로잡았다. 본지는 ‘사색의 성야’의 극작부터 연출, 무대 디자인까지 도맡아 기획한 도전학기 ‘아일’ 팀의 이혜선(작곡·19)씨, 배윤진(수학·16)씨, 장세민(작곡·19)씨, 조세연(조소·19)씨를 6일 ECC B215호에서 만났다. 

팀명 ‘아일’은 향후 희망 진로로의 통로(aisle)를 마련하고 새로운 섬(isle)을 개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배씨는 “학교에 공연 관련 전공이 없는 만큼 직접 공연을 올리며 경험을 쌓아 스스로 진로를 준비해 보겠다는 의미를 팀명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평소 뮤지컬에 관심이 많았던 장씨는 같은 과 동기 이씨에게 도전학기를 통해 공연을 올려보자 제안했다. 이에 이씨는 함께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그렇게 모인 팀 아일이 주목한 것은 ‘잊혀진 여성 독립운동가’의 존재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 여성들은 지위와 역할이 제한적이었음에도 여러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그에 비해 이들의 이름은 거의 남지 않았죠. 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지켜낸 가치는 무엇인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거라 생각해요. 저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싶었습니다.”

뮤지컬 ‘사색의 성야’의 커튼콜에서 배우들이 마지막 노래를 부르며 관객의 박수를 받고 있다. 김영원 사진기자
뮤지컬 ‘사색의 성야’의 커튼콜에서 배우들이 마지막 노래를 부르며 관객의 박수를 받고 있다. 김영원 사진기자

뮤지컬 사색의 성야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실존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를 모티브로 한다. 평남도청과 평남 경찰부에 폭탄을 투척해 폭파한 안경신, 교육자이자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2·8 독립선언문을 국내로 들여온 김마리아, 간호사들의 독립운동단체 ‘간우회’를 설립해 독립운동에 뛰어든 박자혜, 3·1운동 당시 수원에서 기생조합만세운동을 이끌었던 김향화. 이 4명의 인물을 모티브로 탄생한 게 등장인물 박경선, 김애란, 이원정, 임서화다. 추가로 등장하는 인물 정수안은 이 인물들을 한데 모으는 연결고리로, 유일한 가상 인물이다. 

뮤지컬은 1925년 총에 맞은 경선과 그녀를 숨겨준 수안, 원정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경선과 함께 지내며 수안과 원정은 독립운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고민의 답은 결국 뛰어드는 것. 어린 여자아이란 이유로 가만히 있어야 했던 수안도, 독립운동으로 친구였던 서화를 잃고 용기를 내지 못하던 원정도 결국 경선과 함께 독립운동에 가담한다. 애란의 지휘하에 진행된 폭탄 거사의 작전명은 ‘사색의 성야’. 훗날 홀로 남은 수안이 다른 이들을 회고하며 극은 막을 내린다. 

극이 처음 기획되고 막을 내리기까지 모든 과정에 팀원들의 손길이 닿았다. 극작을 맡은 배씨는 약 두 달간 대본을 완성하는 데에 사력을 다했다. 배씨는 “실제 역사 바탕의 극이다 보니 역사 고증에서 실수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자료 조사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 독립운동가를 다룬 논문과 연구 자료들을 바탕으로 정보를 정리한 뒤 사건 재구성을 위해 다시 짜 맞추며 이야기를 짰다”며 “한창 자료 조사할 때는 중앙도서관에서 책을 7권씩 싸 들고 집에서 읽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대본이 완성된 후, 작곡 전공인 이씨와 장씨가 각자 7개씩 총 14개의 ◆넘버(number)를 작곡했다. 넘버 작곡 외에도 이씨는 연출을, 장씨는 음악감독을 맡아 극을 채워나갔다. 조씨는 직접 합판과 각목으로 소품과 구조물을 만들며 무대를 디자인했다.

오롯이 이들의 힘으로 뮤지컬을 만들기까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 번은 연습실을 대여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허탈하게 웃으며 말문을 연 장씨는 “40평인 줄 알고 연습실을 대여했는데, 막상 가보니 24평이었다”며 “환불을 요구했으나 사용하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도 환불해 주지 못한다는 답변이 돌아와 현재 피해 구제 신청을 해둔 상태”라고 전했다. 

마땅한 연습실을 다시 찾아 연습을 진행했으나 문제는 또 발생했다. 배씨는 “효율적인 연습 방법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며 돈이 풍족하지 않아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함께 연습실을 써야 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당시 스태프는 스태프대로 회의하고 배우는 배우대로 연습하다 보니 너무 시끄러워 서로 집중하지 못했다. 그때서야 시간대를 나누거나 온라인 화상회의를 활용해 연습 시간을 분배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완벽한 극을 올리기 위해 정진했다. 매일 밤 온라인으로 회의를 진행하며 새벽까지 의견을 나누고, 밤을 새워 연습실에 갔다. 보다 좋은 무대를 올리기 위해 예술 사업에 지원하기도 했다. 이들은 텀블벅(tumblbug.com)과 연계된 아르코 청년예술가 지원사업을 통해 후원을 받았고, 164명의 후원자를 통해 목표한 금액의 109%인 654만5000원을 확보해 극에 완벽을 더할 수 있었다. 

뮤지컬 ‘사색의 성야’ 첫 공연을 마치고 ‘아일’의 팀원들이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았다. 사진은 포스터 앞에 모인 조씨, 장씨, 배씨, 이씨(왼쪽부터). 김영원 사진기자
뮤지컬 ‘사색의 성야’ 첫 공연을 마치고 ‘아일’의 팀원들이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았다. 사진은 포스터 앞에 모인 조씨, 장씨, 배씨, 이씨(왼쪽부터). 김영원 사진기자

봄부터 시작된 이들의 여정은 21일 마지막 회차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장씨는 “몇 개월간 단체생활을 하다 공연이 끝난 후 혼자 남게 되니 공허함이 크다"며 "우리가 공연을 올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장씨는 공연의 필수조건으로 ‘사람’을 꼽았다.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다 같이 모여 힙을 합쳐야만 올릴 수 있는 게 공연이더라고요. 이번 뮤지컬은 배우 단 4명만으로도 재밌는 공연 만들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던 기회이자, 협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재연 올립시다, 여러분!”

 

◆넘버(number): 뮤지컬에서 사용되는 노래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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