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수(조소·97년졸) 설치미술가
박혜수(조소·97년졸) 설치미술가

설치 및 개념미술가, 기획자, 작가로 활동 중인 시각예술가. 본교 조소과를 1997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주로 사회의 내재된 보편적 가치와 무의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개인의 기억과 삶의 가치를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의문을 가지고 시각화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13회 송은미술대상전 대상과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작가상2019’ 후보로 선정된 바 있다.

 

“내가 만일 내 인생의 전환기를 느낀다면 그것은 내가 얻은 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잃은 그 무엇 때문이다.”(알베르 카뮈)

사람들에겐 ‘인생 영화’, 죽기 전에 봐야 할 책, 버킷 리스트 같은 삶의 중요한 터닝포인트로 작용하는 것들이 있다. 나의 ‘인생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이고(그의 모든 영화를 사랑하는데 특히 초기작들을 더 좋아한다), 죽기 전에 봐야 할 책은 알베르 카뮈와 프란츠 카프카의 모든 책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한 문장을 고르자면 바로 저 카뮈의 글이다.

저 문장을 봤던 시기가 30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미술대학,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막 예술가의 삶을 시작했을 때였다. 지금의 취준생들이 스펙을 쌓고 자격증 준비를 하듯이 예술가들도 전시를 하고, 작품 포트폴리오를 들고 셀프 마케팅을 해야 한다. 물론 경쟁도 치열하다. 신진작가 공모는 나이 제한이 있기에 모두가 과열된 페달을 멈출 생각이 없다. 지금 내가 어디쯤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 채, 좌우 앞뒤의 경쟁자들에 휩쓸려 떠밀려 가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발견한 저 문장에 나는 무언가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왜 나는 이렇게 끊임없이 일하고, 경쟁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 원하던 결과를 얻어도 그 기쁨은 며칠 가지 못하고 또다시 ‘다음엔 뭘 해야 하는지’로 불안했다. 그리고 이 불안은 그다음의 짧은 만족감이 생길 때까지 계속됐다. ‘과연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일까’, ‘다음엔? 그리고 그다음엔?’, ‘이 걱정은 대체 언제 끝날까’ 같은 생각이 가득했지만 이미 경쟁에 익숙해진 나는 스스로 멈추는 법을 몰랐다. 그때 저 문장이 나를 멈추게 했다.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얻고자 했고, 되고자 했다. 그 무언가가 나를, 내 삶을, 이 불안을 없애줄 것이라 믿던 가운데 무언가는 사라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들…. 어쩌면 그것들이 내가 나일 수 있도록 지켜야만 했던 것들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어렵사리 내가 그동안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돌아봤다. 조금 나은 작업 환경과 인지도를 얻는 동안 인생 친구라 믿은 친구와 멀어졌고, 음식의 맛을 음미하는 여유와 망설이는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아는 기다림, 그리고 무작정 떠나는 무계획 여행과 같은 무모함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내가 얻은 것을 통해 ‘되고 싶은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쩌면 나는 저 ‘사라져 버린 것들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나는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질문을 하고, 그 답변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시각예술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때문에 각 프로젝트마다 저마다의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그중 ‘꿈의 먼지’(2011)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포기한 꿈’을 묻는 작품이었다. 전시장에는 ‘포기한 꿈’을 묻는 설치 작품과 ‘지금 꿈’을 묻는 조향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20대 후반으로 보인 한 남학생은 사랑은 미래를 위해 포기할 수 있으며, 지금 꿈은 “안정된 직장”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2~3시간 뒤, 삶의 안정감이 느껴지는 한 중년 남성 관객은 “지금 불같은 사랑을 꿈꾼다”고 답했다. 마치 오전에 만난 남학생의 20년 뒤 모습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젊은 시절 어렵지 않던 흔한 사랑은 20년이 지나 많은 자본과 노력을 들여야 겨우 획득할 수 있는 것이 돼버렸다. ‘그냥 그때 할 걸…’이란 후회가 이미 늦었다는 걸 마주하는 대화 속에 그도, 나도 알았다.

여기서 나는 다시 카뮈의 질문을 생각한다.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가. 그 포기한 것들을 추후 다시 찾을 수 있는 건 확실한가?’

이 질문에 머리가 어지러울 때마다 생각나는 인디언의 예화가 하나 있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가다가 종종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자신들의 영혼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움직이면 움직이는 건 사람들의 몸뚱이일 뿐, 미처 영혼은 쫓아오지 못했기에 잠시 멈추고 영혼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애쓰는 일, 그것은 무엇을, 누구를 위한 일인가? 우리가 ‘지금’을 갈아 넣고 영혼을 기다리지 않으면서 얻고자 하는 그 일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중 한 사람(One of them)’ 혹은 홀로 남는 것이 두려워 뒤쫓던 ‘누군가’가 되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영혼 없는 몸뚱이의 조련사가 되어야만 한다. 자신의 삶은 사라지고 살아남는 일만 남은 시지프스의 삶에 만족과 기쁨이 없는 것은 나도, 당신도 안다.

만약 조금이라도 자신의 삶을 지키고 싶다면 잠시 멈춰서 당신의 발걸음과 숨소리를 들어보기를 권한다. 자신의 몸을 만져서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음을 확인해야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우리 모두, 나에게 닿기를. 그 순간 당신 곁에 당신의 소중함을 자각시켜줄 사랑하는 누군가가, 예술이, 책이 함께하길 바라본다.

첫 숨부터 마지막 숨까지 당신의 삶을 살기를.

박혜수 설치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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