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에 키부츠 현대무용단 입단… 최초 한국인 무용수로 활동 중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키부츠현대무용단의 최초 한국인 무용수 김수정씨. 자신을 믿고 늘 최선을 다한다는 김씨는 좋은 아티스트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김영원 사진기자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키부츠현대무용단의 최초 한국인 무용수 김수정씨. 자신을 믿고 늘 최선을 다한다는 김씨는 좋은 아티스트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김영원 사진기자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수정(무용과 석사∙99년졸)씨가 내한 공연을 위해 10월22일 한국에 돌아왔다.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기존에 소속된 무용단에서 나와 전세계를 누비던 김씨는 39세에 이스라엘로 가 6개월 만에 키부츠현대무용단(Kibbutz Contemporary Dance Company, KCDC)의 최초 한국인 정단원이 됐다. 한국에 도착하고 자가격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연습에 들어간 김씨를 강남의 한 호텔에서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키부츠현대무용단은 현대무용 강국인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예술 단체로, 인간의 신체를 한계까지 몰아넣는 역동적인 무용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무용수가 은퇴할 40세의 나이로 세계적인 현대무용단에 들어간 사람은 다름 아닌 김수정씨. 한국인 최초로 정단원이 된 김씨는 2021년 기준 벌써 8년째 활발히 꿈을 펼치고 있다. 그는 “사실 이렇게 오래 활동할 수 있을 줄 몰랐다”며 “무용수로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춤을 췄더니 어느 새 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현재 최연장자로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김씨가 한 단체에서 오랫동안 소속돼 있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학창시절 그는 국내에서 본교 무용과가 가장 유명하다는 사실을 듣고 고민 없이 입학했다. 졸업 후 그는 자연스럽게 무용과 동문으로 구성된 현대무용단 ‘탐’에 들어가 무용수 겸 안무가로서 활동했다. 2007년 서울댄스콜렉션 우수상, 2009년 서울국제안무경연대회 대상, 2010년 공연예술축제(PAF∙Performing Arts Festival) 주최 ‘최우수 레퍼토리상’을 받는 등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나 탐에서의 활동은 그에게 부족했다. 그는 “비록 국내에서 알아주는 무용단이었지만 그 이상을 원했고 춤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며 “한 곳에만 소속돼 있으면 발전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스스로를 위해 탐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인터뷰 하는 무용수 김수정 김영원 사진기자
인터뷰 하는 무용수 김수정 김영원 사진기자

“홀로 독일에 가 1~2년간 공연 관련 프로젝트 작업을 하다가도, 한국에 돌아와 안무가로만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과 외국에서 번갈아 활동하다가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무용수 우리 이브기(Uri Ivgi∙56∙남)를 만났고 생각지 못한 이스라엘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국내외를 넘나들며 활동하던 김씨에겐 국내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해마다 해외 안무자를 초청했는데, 김씨는 프랑스 안무자, 이스라엘 안무자와 합동무대를 하며 색다른 그들의 춤에 사로잡혔다. 그는 “이스라엘 무용수가 전달하는 역동적인 춤의 언어를 보고 춤에 대한 갈증을 다시 한 번 느꼈다”며 “당시 이스라엘 무용수 우리 이브기가 속했던 키부츠 현대 무용단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무용단에 연령 제한이 있었지만 춤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가지고 무용단의 댄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이력서를 보냈다”고 말했다.

김수정씨의 이력서를 본 키부츠현대무용단은 김씨에게 이스라엘로 오라는 연락을 보냈다. 김씨는 “처음에 연락을 받았을 땐 믿기지 않아 이력서를 다시 확인해달라는 요청을 보냈다”고 했다. 여러 번의 확인 끝에 김씨는 안심하고 이스라엘로 가 6개월간 댄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춤을 배웠다. 그는 “그러던 중 바로 일주일 뒤에 있을 독일 공연에 참여하는 무용수에게 문제가 생겨 엑스트라 무용수를 찾는 오디션을 봤고, 오디션에서 뽑혀서 대신 서게 됐다”고 했다. 독일 공연을 본 라미 비에르(Rami Be’er·64·남) 감독이 김씨의 춤에 관심을 가졌고, 김씨는 개월 만에 한국인 최초로 키부츠 현대무용단의 정단원이 됐다. 이 운명 같은 사건으로 그의 무용수이자 안무가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2021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케렌시아'를 선보이는 김수정 무용수 제공=김수정
2021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케렌시아'를 선보이는 김수정 무용수 제공=김수정

처음 무용단에 들어갔던 김씨에게 키부츠 특유의 역동적인 안무는 버거웠다. 김씨는 “이스라엘 무용단이 전반적으로 역동적인데 특히 키부츠가 그렇다”며 “라미 비에르 감독님이 사람을 극으로 끌고 가 독특한 안무를 탄생시키는 걸 좋아해 처음엔 힘들었으나 이제 요령이 생겼다”고 말했다. 역동적인 안무로 저명한 라미 비에르 감독의 공연을 준비하다보면 김씨에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춤에 대한 그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포기하고 싶다가도 한계에 도달하면 어느 새 적응해 있었다”며 “마음 먹기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라 말했다.

김씨는 매일 오전 10시에 안무를 연습하기 위해 키부츠의 ‘메인 컴퍼니’에 출근한다. 그는 신작을 준비하거나 해외투어에서 할 ◆레퍼토리 공연을 연습하는 등 매일 무대 를 준비한다. 현재는 ‘메인 컴퍼니’에만 소속돼 있으나, 라미 비에르 감독의 권유로 새로운 무용수를 양성하는 ‘세컨 컴퍼니’에서 감독 대신 무용수들이 연습할 안무를 짜는 게스트 안무자로 2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김씨는 “키부츠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분위기”라며 “제가 현재 무용단 내에서 최연장자인데 19살의 어린 무용수와 함께 듀엣공연할 때도 있다”고 했다. 이어 “모든 무용수들이 안무와 공연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분위기”라며 상하 위계가 없는 키부츠현대무용단의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그는 “무용수들에 대한 모든 직원 및 관계자들의 존중과 배려심이 남다르다”며 “특히 공연 당일엔 감독을 포함한 모든 직원과 관계자들이 오직 무용수의 컨디션만을 신경 쓴다”고 했다.

 

2021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전염'을 선보이는 김수정 무용수 제공=김수정
2021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전염'을 선보이는 김수정 무용수 제공=김수정

김씨는 2년에 한 번씩 한국에서 초청을 받아 내한 공연을 하고 있다. 이번에도 그는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초청돼 10월27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독무대를 선보였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 ‘전염’은 코로나19 상황으로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현대사회를 소재로 만든 신작이고 ‘케렌시아’는 소가 투우장에서 경기를 하다가 숨을 쉬는 시간이 있듯,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재충전 공간을 창조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케렌시아’의 경우 2020 헝가리 모노탄츠 페스티벌 그랑프리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 리허설을 하는 사람은 오직 김씨뿐이다. 그는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할 지경에 이를 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이것이 지금까지 그가 세계적인 무용수로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춤에 대한 그의 열정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늘 그랬듯 오늘 죽어도 될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자 한다. 꿈이 있다면 앞으론 좋은 아티스트들이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좋은 작품을 하나 만드는 것이다...”

◆레퍼토리 공연: 극단 또는 기획사가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하는 공연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