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근 교수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작진에게 선물 받은 컵을 들고 있다. 김나은 사진기자
홍근 교수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작진에게 선물 받은 컵을 들고 있다. 김나은 사진기자

최고 시청률 14.1%. 시즌 1에 이어 수많은 명장면을 낳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 시즌 2'(2021)가 짙은 여운을 남기며 16일 막을 내렸다. 출연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내공과 함께 디테일이 살아 있는 의학 이야기까지.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병원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들을 실감나게 묘사하며 의사뿐 아니라 레지던트, 간호사 등 병원에 몸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현실 고증 드라마'다.

이런 웰메이드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자문 위원들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 드라마 속 이익준 캐릭터의 실제 주인공이자 간담췌외과 자문 위원으로 활약한 홍근 교수(의학과)를 만나, 드라마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홍 교수는 2013년 이대목동병원 교수로 부임해 현재 간담췌외과 내 간이식 전문가다. 그가 슬의생 제작진과 첫 만남을 가진 건 2017년 10월. 당시 드라마 제작을 위해 여러 병원 의사들을 찾아다니던 작가들은 홍 교수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그에게 자문을 부탁했다. 홍 교수는 "당시 이대목동병원 내 간이식 체계가 막 갖춰지고 있던 시기여서 간이식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총망라했다"며 "간이식을 총괄하며 환자들의 개인적인 부분까지 알게 돼 작가들에게도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었다"고 만남을 회상했다.

이러한 홍 교수의 이야기는 극 중 이익준 캐릭터의 자양분이 됐다. 실제 이익준의 화법과 환자를 대하는 태도도 홍 교수와 매우 비슷하다고. 이외에도 홍 교수는 "슬의생 제작진이 만든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보고자 자문을 맡게 됐다"고 계기를 밝혔다.

최고 시청률 14.1%로 막을 내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포스터. 드라마 에피소드엔 의대 홍근 교수의 실제 경험담이 녹아있다. 사진출처 tvN
최고 시청률 14.1%로 막을 내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포스터. 드라마 에피소드엔 의대 홍근 교수의 실제 경험담이 녹아있다. 사진출처 tvN

홍 교수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각색된 에피소드들은 드라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대표적으로 시즌 1 3화에 소개된 '어린이날'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과 여운을 안겼다. 어린이날 사고를 겪은 아버지가 뇌사 상태에 빠져 장기 기증을 하게 되는데, 아이가 매년 어린이날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도록 12시를 넘겨 기증 수술을 진행하게 된 이야기다.

홍 교수는 "당시 체력적으로 지쳐있던 상태라 빨리 수술을 끝내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으로 수술이 미뤄졌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기증자가 한 가족의 소중한 구성원이었다는 것을 느끼고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며 "의사로서 초심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가족에게 간이식을 받았음에도 또다시 술을 마시는 환자 이야기, 심지어 원내 탁구대회 에피소드까지 홍 교수의 실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누구보다 자문에 열심이었다는 홍 교수는 특유의 세심함으로 작가들 사이에서 '홍 작가'로 불리기도 했다.

드라마에 들어갈 에피소드뿐 아니라 이대서울병원에서 드라마를 촬영하게 된 데에도 홍 교수의 몫이 컸다. 드라마가 제작될 즈음 이대서울병원은 개원을 앞두고 있었다. 따라서 홍 교수는 제작진과 병원장 교두보 역할을 자처하며 병원 홍보에 적극 나섰다. 그는 "시즌 1 초반에는 병원 로비 등에서 촬영해 다채로운 장면이 여럿 등장했지만, 코로나19로 시즌 1 후반부터는 세트장에서 진행돼 공간의 제약이 있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촬영지였던 이대서울병원 전경 출처=이대서울병원 홈페이지
'슬기로운 의사생활' 촬영지였던 이대서울병원 전경 출처=이대서울병원 홈페이지

슬의생이 홍 교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 변화'다. 매년 국내에서는 4~500명 정도의 뇌사자가 장기 기증을 하는데, 그에 반해 간이식이 필요한 사람들은 약 1400명에 이른다. 장기 기증에 대한 보수적인 분위기로 기증 비율이 낮아 어려움이 있었지만, 드라마 방영 후 상황이 바뀌었다. 장기 기증 에피소드가 방영된 다음 날 400명이 기증 서약을 한 것이다. 기증된 간이 향하는 곳과 또 수혜자를 비롯해 수많은 주변인들이 감사를 표하는 모습이 드라마에 상세히 나타난 덕이다. 홍 교수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코다) 관계자가 '드라마를 통해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정말 많이 개선됐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는데, 드라마가 지닌 선한 영향력에 도움이 된 것 같아 너무 뿌듯했다"며 웃었다.

사람을 대하는 게 좋아서, 외과에서도 수술 후 가장 눈에 띄게 좋아지는 환자의 모습이 좋아 간이식을 택했다는 홍 교수. 그는 최근 불거진 이른바 3분 진료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환자를 위하는 마음을 갖지만, 시간이 흘러 수백 명의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면 초심을 잊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 교수도 그런 매너리즘에 빠졌던 때가 있었지만,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또 그는 의사가 갖춰야 할 자질을 교육하고자 의대 학생들에게 드라마 시청을 적극 권고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다 보니 타인을 배려하는 걸 배우지 못한 학생들도 있다"며 "이 드라마를 통해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의사들이 어떻게 배려하며 치료해야 하는지 참고해 배웠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의사에게 상처를 입으신 분들도 계실 수 있겠지만, 의사는 언제나 환자의 생명을 지키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드라마를 통해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 함께 시즌 3도 기다려 볼까요?" 그는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천상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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