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여권통문의 날 기념전 기획자 조은정 교수를 만나다

여권통문의 날 기념전에 출품된 오명희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조은정 교수. 조 교수는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김지원 사진기자
조은정 교수 김지원 사진기자

1일부터 7일까지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2021 “여권통문女權通文의 날” 기념전(여권통문전)이 열렸다. 

여권통문은 여학교설시통문으로 우리나라 최초 여성권리선언으로 한국 여성운동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1898년 9월1일, 서울 북촌의 김소사, 이소사라는 여성들이 발표한 여학교설시통문에는 여성의 교육권, 직업권, 참정권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당시 여권통문은 황성신문, 독립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여성가족부는 2019년 10월, ‘양성평등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통해 매년 9월1일을 여권통문의 날로 지정했다.

올해로 3회째 열린 여권통문전은 토포하우스 오현금 대표가 전시 공간을 마련하고, 약 30명의 작가가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 기획은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조은정(미술사학 박사∙05년 졸)초빙교수가 맡았다. 본지는 여권통문전을 기획한 조 교수를 5일 토포하우스에서 만났다.

어떻게 전시를 기획하게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 교수는 “부채 의식이 있다”며 운을 뗐다. 조 교수가 여권통문전을 기획한 이유는 여권통문의 내용과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다. 그가 여성으로서 살아오며 느낀 점이 여권통문전을 기획하는 바탕이 됐다.

“여성으로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렇지 못한 많은 여성분들에 비해 혜택을 받은 것 같아요. 그리고 여권통문을 발표한 용기 있는 여성들 덕분에 내가 교육을 받고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다고 느꼈죠.”

본교 재학 시절 조 교수는 성별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 그는 “이화에서는 여학생이 아닌 학생 조은정으로 성장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한 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조 교수는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급여를 받고 승진을 거치는 과정에서 본인이 여성임을, 그리고 사회적 여성의 지위를 인지하게 됐다.

“여성이 남성보다 급여가 적은 것이 처음엔 너무 당연했어요. 당시에는 뭐가 잘못됐는지 몰랐었다는 거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몰라서 당연했다는 걸 느끼게 됐죠.”

조 교수는 여권통문전 전시 서문에 여성들의 대학진학률은 남성보다 높지만 여성 고용률과 임금은 남성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그는 “여성은 과거부터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와야 했다”며 그 이유로 “결국 여성들이 역사 안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가 인용한 통계청의 ‘201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8년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은 남학생보다 약 7.9%p 높은 73.8%다. 하지만 남녀 고용률 차이는 남성에 비해 여성이 19.9%p 낮고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가 남성보다 74만 2천 명 많으며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남성 임금의 68.6% 수준이다.

여권통문을 발표한 김소사, 이소사의 ‘소사’는 나이 든 기혼 여성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조 교수는 “어쩌면 이름이 없어서 역사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이름이 없게 해서 역사에서 지우는 것”이라고 했다.

“역사 속에서 여성의 이름을 불러주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여성들의 서사가 살아나야 지금의 여성, 미래의 여성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권통문전은 조 교수가 자발적으로 기획해 진행했다. 그가 의뢰를 받지 않고 기획한 전시는 코로나19 이후 최초의 온라인 전시였던 ‘더 피스풀 워리어즈 인 뮤지엄(The Peaceful Warrioirs In Museum)’ 이후 처음이다. 우연히 토포하우스 오 대표를 만나 여권통문전이 이미 두 차례나 진행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전시들이 주목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획을 맡기로 했다. 오 대표는 전시 공간을 무료로 제공했다.

여권통문전에 참여한 약 30명의 작가들은 모두 여성이다. 조 교수가 전시 참여를 부탁한 작가들 중 개인전이 얼마 남지 않은 한두 명의 작가를 제외하고는 그의 부탁을 흔쾌히 승낙했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가져와서 걸어야 했고 작품에 보험을 들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작가들은 기쁜 모습으로 본인 작품을 가져와서 걸었다.

“작가님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여권통문을 왜 몰랐는지에 대해 반성한다고 하셨던 작가님들도 계셨죠.”

이렇게 만들어진 전시에서 조 교수가 가장 강조한 것은 ‘연대’다.

“누군가의 욕심에 의한 후원을 받지 않고, 전시에 참여한 모두가 좋은 전시가 되길 바라는 뜻으로 가득한 전시라는 것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어쩌면 후원하신 분들, 전시에 참여하신 분들도 함께 하는 것이 긍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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