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선수의 목소리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지적하다

이은규 PD(방송영상·10년졸). 제공=이은규 PD.
이은규 PD(방송영상·10년졸). 제공=이은규 PD.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그런 얘기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저는 좀 바뀌어야 할 부분들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더 얘기하려고 노력했어요.

전 배구 국가대표 김연경 선수가 담담한 말투로 올림픽 여자배구 대표팀 지원 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어 화면이 전환되고 또 다른 여성 운동선수가 국내 스포츠계의 현주소를 이야기한다. KBS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국가대표’(국가대표)의 한 장면이다. 

2020 도쿄 올림픽 직후인 8월12일, 국가대표가 방영됐다. 여성 스포츠의 새 역사를 쓴 6인의 선수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스포츠계의 유구한 성차별에 대해 발언한다. 해당 방송은 전국 기준 시청률 4.7%로, 지상파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7일 기준 KBS 홈페이지 게시판(kbs.co.kr)에 게시된 관련 댓글은 536개로, 대부분 한 자릿수에 그치는 타 회차 댓글 수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다. 본지는 3일 국가대표 제작의 주역인 이은규 PD(방송영상·10년졸)를 ECC B215호에서 만났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하나하나 본다는 건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제가 방송을 하는 이유고요. 이번에 특히 반응이 좋아서 댓글들 하나하나 다 챙겨봤어요."

국가대표 방영 소감을 묻자 이 PD는 웃으며 답했다. 그는 대중의 긍정적인 호응에 대한 비결로 ‘가르치려 하지 않고 보여주려 한 점’을 꼽았다. 내레이션(narration)이 주를 이루는 보통의 다큐멘터리와 달리, 국가대표에서는 선수가 직접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 배경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여성 스포츠 기자의 부연 설명을 통해 보충된다.

이 PD는 "모든 지식을 다 알고 있는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션이 편하고 친절한 방법일 수는 있지만, 특정 쟁점들에 대해서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최대한 당사자들이 겪은 사실과 그들의 생각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자는 고민으로부터 나오게 된 연출"이라고 설명했다.

진행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촬영이 주를 이루는 기존의 다큐멘터리 제작 방식 대신 다양한 매체의 보도자료, 경기 기록 등의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 PD는 당시 참고할 자료가 없어 헤맨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보통 다큐멘터리 제작은 촬영 분량을 확보하고 편집을 통해 제작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아카이브와 인터뷰만으로 제작하는 형식 자체가 모험이었다”고 전했다. 이 PD뿐만 아니라 구성작가, 취재작가도 함께 머리를 맞대 힘을 보탰다.

참신한 연출과 더불어 이 PD가 가장 신경을 기울인 부분은 출연자다. 이 PD는 “어렵게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카메라 앞에 선 출연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방송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들이 방송으로 인해 다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신념은 큰 욕심을 부리지 말자는 마음가짐으로 이어졌다. 그가 작위적인 멘트 대신 출연자들의 목소리에 집중한 이유기도 하다. 

“기존에 진행했던 인터뷰의 말들을 한번 더 듣고 우리의 카메라로 담아 잘 정리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했어요. 이를 위해 제작진과 출연진이 서로 이해하며 대화를 나누는 과정을 충분히 거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PD는 자신의 다큐멘터리가 ‘일상 속에서 나누기 어려운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는 잠깐의 순간’이 됐으면 한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나란히 TV를 시청하곤 했다. 이 PD는 “TV를 보고 맞장구치듯 생각을 더하는 엄마, 할머니의 넋두리가 좋았다”며 “이처럼 함께 영상을 보고 같은 주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는 시청자 소감을 들을 때 제일 좋다”고 귀띔했다.

더불어 이 PD는 이화에서의 시간 덕분에 여성 아카이브 인터뷰 시리즈를 만들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화는 내게 고마운 역사와 같다”며 본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여성 노동자로서 차별 앞에 좌절하기보다 성취의 역사들을 돌아보며 다음을 향해 기운을 낼 수 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이화인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이화 안에서는 괜히 마음이 쫓기듯 바쁘고 내가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분명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데 더 해야 할 것 같고요.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삶은 계속되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순간에 집중하며 충분히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해도 그게 정답입니다.”

현재 이 PD는 차기작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개그우먼’, ‘다큐멘터리 윤여정’, ‘다큐멘터리 국가대표’ 편에 이은 4번째 여성 아카이브 인터뷰 다큐멘터리다. 해당 회차는 2021년 11월 방영 예정이다. 


 

◆아카이브:  소장품이나 자료 등을 디지털화하여 한데 모아서 관리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모아 둔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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