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성 건강을 위한 제품을 제작하는 브랜드 ‘세이브앤코’의 박지원 대표. 민경민 사진기자
여성의 성 건강을 위한 제품을 제작하는 브랜드 ‘세이브앤코’의 박지원 대표. 민경민 사진기자

월경주기 분석 애플리케이션, 기능성 생리용 속옷, 생리컵 등 최근 여성의 건강을 위한 기술이 각광받고 있다. ‘펨테크’라고도 불리는 이 기술은 Female(여성)과 Technology(기술)이 합쳐진 신조어로, 여성의 건강과 생활개선에 집중한 기술을 일컫는다. 미국에서 시작된 펨테크의 물결을 이어 여성용품회사 세이브앤코(saibnco)를 시작한 박지원(시각정보디자인·09졸) 대표를 동작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세이브앤코는 편견을 뜻하는 영어 단어 ‘Bias’를 뒤집은 것으로, 여성의 성을 바라보는 편견을 뒤집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이브앤코는 섹슈얼 웰니스(sexual wellness)를 지향하는 브랜드로, 여성용 콘돔과 여성 청결제 등 여성의 성 건강에 도움이 되는 제품들을 제작한다. 

 

“한국에서는 여성이 성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성에 대한 논의가 부족해요. 화장품 성분은 따지면서 자신의 몸에 들어갈 콘돔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에 충격을 받아서 관심을 갖게 됐죠.”

 

박 대표가 여성용 성인용품이라는 낯선 길을 처음부터 구상했던 것은 아니다. 본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유학 이후 미국 텍사스대(Texas University)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사회적 가치와 디자인의 결합을 가르치던 그는 첫 수업 과제 중 한 학생의 작품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학생이 콘돔을 가지고 작업했기 때문이다. 

 

피임의 중요성을 알리는 이 과제물을 학생들은 무척 자연스럽게 대했지만, 박 대표는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미국 학생들이 성에 대해 성숙하게 접근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성에 무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후 성 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에서는 성에 대한 논의들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돼 있는 반면, 미국에서는 오히려 본인을 챙기지 않는 것에 더 창피함을 느낀다”며 “성에 관한 문화적 차이를 느낀 뒤 이를 개선해야겠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여성의 성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일본의 ‘수치 시장’을 알게 된 이후 더 구체화됐다. 수치 시장은 여성들에게 문제 되지 않던 부분을 수치스럽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제품을 판매한다. 생식기 착색을 막는 미백제, 유두를 핑크색으로 물들이는 크림 등이 이에 속한다. 박 대표는 “여성의 불안감을 조성해 돈을 버는 수치 시장이 불쾌했다”며 “여성의 몸에 좋은 성분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시장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성에게 유해하지 않은 상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박 대표는 시장 분석에 돌입했다. 그는 국내에 판매되는 콘돔들을 모두 구매해 비교했다. 

 

“야한 여성이나 황금 말이 그려져 있는 남성적 이미지가 콘돔을 구매하려는 저와 이질적이라 느껴졌어요. 이런 성인용품 디자인도 여성이 성을 금기시 하는 데 기여한 것 같아 바꿔보고 싶었죠.”

 

박 대표는 현재 8명의 직원들과 세이브앤코를 키워가고 있다.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직원들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품을 제작한다. 박 대표는 세이브앤코가 강조하는 두 가지 신조를 설명했다. 첫째는 건강하고 안전한 성분이다. 그는 “여성의 경우 성인용품이 신체 안으로 들어가기에 남성에 비해 독성을 42배 정도 더 흡수한다”며 “건강한 성분들을 이용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중점을 두는 것은 여성 친화적 디자인이다. 박 대표는 “최대한 거부감이 없고 자연스럽게 제품을 받아들이도록 신경 쓴다”며 “아직 대다수의 여성들이 콘돔을 지니는 것에 두려움이 있기에 일반 소품처럼 보이게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세이브앤코의 콘돔은 기성 콘돔들과 달리 작은 틴케이스 등에 담겨 제작된다.

 

올해로 창업 3년 차를 맞은 세이브앤코는 올리브영, 롭스 등 유명 상점에서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대표상품 ‘saib 프리미엄 콘돔’은 65만 개 이상 누적  판매를 기록했다. 2020년에는 해외 시장에 진출했고, 여성 청결제는 영국에서 비건 인증도 받았다. 최근에는 독일에서 실시한 ◆더마테스트에서 최고등급을 받기도 했다.

 

세이브앤코는 성 인식 개선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반 제품 수익의 10%와 캠페인 상품 수익의 100%가 건강한 성문화와 성평등을 위해 기부된다. 성년의 날에는 보호 종료 아동에게 성년의 날 선물 세트와 성교육 책자를 제공하기도 했다. 회사 자체 웹진 컨텐츠 ‘세이브세이드(saib-said)’에서는 젠더 이슈에 관한 이야기도 다룬다. 

 

박 대표는 “대한민국에는 콘돔을 한번도 구매해보지 않았던 여성들이 더 많다”며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입장에서 소비자들에게 교육을 제공해 가부장적인 기존 인식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업을 꾸려나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가보지 않은 길이기도 하고, 사업 소재가 특수한 데에서 오는 어려움 역시 존재했다. 

 

“회사 관련 기사가 나가면 회사와 제품을 비방하거나 희롱하는 댓글들이 달리기도 해요. 여전히 저급하고 속된 제품이라는 시선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당면한 문제들이 많기에 박 대표는 포기할 수 없다. 그는 개선돼야 할 한국의 성 문제 중 하나로 ‘콘돔 사용률’을 꼽았다. 박 대표는 “OECD 국가 중 한국의 콘돔 사용률이 최하위”라며 “주기법과 같은 불확실한 피임보다 콘돔 사용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화인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도 전했다.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두려움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학생 시절에는 얼마든지 실패해도 되는 시기이기에 가능한 많은 것에 도전하길 바랍니다.”



 

◆더마테스트: 독일의 대표적인 민간 공인인증으로, 검증 절차가 까다로워 공신력이 있는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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