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오래 살고 볼일’(2020)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시니어 모델로 활약 중인 윤영주씨. 김영원 사진기자
MBN ‘오래 살고 볼일’(2020)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시니어 모델로 활약 중인 윤영주씨. 김영원 사진기자

 

할머니 유튜버 박막례부터 미국 아카데미상을 받은 원로배우 윤여정까지, 최근 다방면에서 시니어들의 활약을 발견할 수 있다. 얼마 전 종영한 국내 최초 시니어 모델 오디션 프로그램인 MBN ‘오래 살고 볼일’도 이러한 ‘시니어 신드롬’ 흐름에 함께했다. 경연의 우승자이자 떠오르는 시니어 아이콘으로 주목받는 윤영주(불문·67)씨를 14일 화창한 오후 삼성역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씨는 인터뷰와 방송 출연으로 최근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을 묻자, 그는 패션잡지 보그(Vogue) 화보 촬영을 꼽았다. 그는 “촬영을 위해 젊은 세대가 주로 입는 오버핏 스타일을 입었다”며 “많은 나이에도 젊은 세대의 옷이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받아 어깨가 으쓱했다”고 전했다. 

 

윤씨는 주 일과인 독서를 그만둔 후, 모델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눈이 나빠져, 책을 읽지 말라는 의사의 당부 때문이었다.

“며느리가 평소 제 옷태가 좋다고 하길래 ‘한 번 해 봐?’하는 마음이 생겼죠”

 

어느덧 시니어 모델 3년 차인 윤씨이지만 시작부터 모델의 길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윤씨는 “시니어 모델은 주로 광고 부문에서 활동하고, 전형적인 할머니 역할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할머니 역을 원하지 않을 뿐 더러 그 역할을 하기엔 내가 날카로워 보여서 섭외가 없었다”고 시니어 모델 초기의 고충을 털어놨다. 

 

전전긍긍 하던 중 시니어 모델 오디션이라는 기회가 생겼다. 시니어 모델로서 자질을 마음껏 보여줄 마지막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오디션에 참여한 그는 2000명이 넘는 지원자들 사이 TV 경연에 출연하는 16명 안에 들었다.

 

오디션은 미션이 주어지고, 미션 상황에 맞는 옷과 스타일을 직접 고르고 표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는 “한껏 꾸미고 갔더니 슈퍼마켓을 홍보하는 노인 역할을 하라고 했다”며 “결국 편한 차림으로 꾸민 모습을 원상복구하기도 했다”며 오디션 일화 중 하나를 떠올렸다. 

 

또 액션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2005) 콘셉트로 와이어에 매달린 촬영은 오디션에서 가장 고된 경험이었다. 

“와이어를 이용한 촬영이 가장 힘들었어요. 3층 높이에서 진행됐는데, 짧은 치마와 꽉 끼는 부츠를 신고 매달려 있어야 했죠. 촬영장에 스태프들이 많아서 신경 쓰이기도 했고 높은 곳에 매달리는 게 무섭기도 하더라고요.” 

 

이 미션에서 최저점수를 받은 그는 탈락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마지막 미션인 ‘내 인생의 화양연화’라는 주제에서 최고점을 받으며 1위를 거머쥐었다. 그는 첫사랑과의 이별을 주제로 삼았다. 첫사랑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높은 구두를 신고 드레스를 입는 등 아름다운 모습으로 첫사랑 이야기를 표현했다.

 

오디션이 진행되는 5개월간 그는 일산과 용인 등 여러 지역의 오디션 스튜디오를 제공된 차 없이 직접 이동해야 했다. 촬영은 새벽에 시작해서 새벽에 끝나는 경우가 다수였다. 잠깐의 쇼를 위해 몇 시간씩 대기하는 것은 그에게 상당한 체력적 부담이었다. 

 

그럼에도 윤씨는 “여러 옷을 입으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무대에서 오롯이 내가 주인공이 되는 느낌이 무척 즐거웠다”며 오디션을 지속할 수 있던 원동력을 드러냈다.

 

미션에서의 좌절에도 오디션을 계속 진행할 수 있던 비결을 묻자, 윤씨는 “제가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왔다”며 “학교를 두 번 다니기도 했다”고 답했다. 

 

실제로 그는 20대와 50대, 두 차례에 걸쳐 학교생활을 했다. 두 학기만을 남겨둔 22살, 그는 결혼으로 인해 학교에서 제적을 당했다. 대학 졸업장이 없어 비정규직으로만 일했던 그는 방송국 리포터와 큐레이터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일을 계속하고 싶어도 늦은 나이와 비정규직이 발목을 잡았다.

 

본교가 그를 다시 부른 것은 34년이 지난 2003년. 공부에 목말랐던 그는 누구보다 일찍 재입학했다. 다시 온 학교는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컴퓨터 이용은 필수였고, 종이나 대면으로 이뤄지던 수강 신청과 과제 제출도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40년 만에 전공 공부를 하게 됐던 윤씨는 6개월간 따로 불어 과외를 받기도 했다. 

 

윤씨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느끼고 배웠던 것을 공유하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마음을 밝혔다. 또 그는 명품 패션 브랜드의 모델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전했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느라 바삐 살지만, 어느 날 자녀들이 다 크고 나면 앞으로 무엇을 할지 막막한 게 현실인 것 같아요. 미래가 막막하다는 그들에게 내 행보가 조금의 위안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플루언서(influencer): 주로 sns상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을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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