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온세상의 김재련 대표 변호사. 그는 19년 간 여성 관련 사건의 피해자들을 대리해왔다. 김지원 사진기자
법무법인 온세상의 김재련 대표 변호사. 그는 19년 간 여성 관련 사건의 피해자들을 대리해왔다. 김지원 사진기자

 

2020년 7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사건이 알려지며 정치권은 한 차례 격동을 겪었다. 김재련 변호사(법학·96년졸)는 피해자의 변호인으로서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19년동안 변호사로 활동해온 그는 고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을 비롯해 주로 아동학대와 성폭력 사건 등의 피해자 변호인으로 활동해왔다.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한 달 뒤인 4일, 김 변호사를 서초구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성폭력 피해 사건 무료 법률 지원 및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을 대리하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 때부터 헌법, 기본권, 인권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본교 선배 사무실에서 변호사 실무 수습을 하면서 가정폭력 피해자, 성폭력 피해자, 아동학대 피해자인 여성 의뢰인들을 만난 일인 것 같다. 관심 있었던 분야의 법을 개인 사례에 적용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한 사건들을 접하며 여고, 여대 출신인 내가 그동안 여성 차별에 대해 피부로 체감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수습 기간이 끝난 후에도 선배 제안으로 해당 사무실에서 변호사로서 첫 출발을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도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19년 동안 성폭력 피해 사건을 맡은 변호사로서 피해자 인식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성폭력 범죄 및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매우 견고하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평소 어떤 사람이었는지 등을 평가하며 사건 발생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는다. 또 피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겪게 될 불편함 등을 피하고자 배상을 요구하며 합의를 진행하면 돈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간다. 피해자들 역시 사회에 만연한 편견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하지만 2018년 미투를 기점으로 이러한 인식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미투를 통해 우리 일상 속에 함께 있던 피해자들을 보게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인적으로 사회는 언제나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속도가 우리가 기대하는 정도에 미치는지 여부인 것 같다.

성폭력 판결에 있어서 문제점은 무엇인가

변호사를 시작했던 초기와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단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처한 상황, 가해자가 가지고 있던 위력이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 행사에 어떻게 억압의 요소로 작용했는지 등을 사건 전체 맥락 속에서 종합해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서울시 동료 직원 성폭력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녹음하거나 영상 촬영을 하지 않는 한,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기 매우 어렵다’며 ‘그렇기에 성폭력이 발생했을 당시 상황 등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판결에서의 변화가 무고한 사람들을 양산해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법부가 말하는 ‘성인지 감수성’, ‘피해자 중심주의’ 관점은 피해자 말을 다 믿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은 기소된 피고인을 무죄로 추정한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따라서 진술이 신빙성을 얻기까지 피해자는 본인의 삶을 해체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야한다. 사건 발생 전후 피해자가 가해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에 비춰 봤을 때 진술에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 범죄사실 본질과 관련된 부분이 아닌 미세한 부분에 있어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되면 진술 전체가 부정당하는 경우들도 많다. 또 피해자의 평소 행실을 문제 삼아 피해자 진술을 깎아내리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 진술이 A에서 Z까지 일관되고 신빙성이 있어야지만 유죄 인정의 증거로 인정된다. 이 혹독한 과정을 거쳐 인정된 죄에 대해 정말 무고한 사람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한일 합의 이행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 배제로 논란이 된 화해치유재단에서 이사로 활동했다. 현재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하는 모습과 모순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당시 재단이 비판 속에 발족해 참여하려는 전문가들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던 중, 박근혜 정권에서 여성가족부 권익증진 국장을 하며 국제학술대회 개최 및 피해자 지원 등 관련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나에게 참여 요청이 왔다. 나 역시 내 경험을 바탕으로 20세기 최대 규모의 전시 성폭력 문제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재단에서 적극적 활동을 펼치고 싶었다. 또 위안부 문제는 지금까지도 분쟁지역에서 계속되는 성폭력 문제와 맞닿아있기에 재단을 통해 국제적인 연대 사업을 하고 싶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사로 활동하게 됐다.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를 해결하는 방식은 피해자마다 다를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서 피해자의 목소리보다 우리 목소리가 앞서 나가서는 안된다는 것이 피해자 중심주의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일 위안부 합의가 피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합의 전까지 한일 양국 국장이 회의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외교부 관계자들이 관련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알고있다. 또한 재단을 통해 약 70%의 피해자분들이 치유금을 수령했다. 따라서 화해치유재단의 사업이 정말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맡은 전(前)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은 정치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해당 사안이 단순 정치적 이슈로만 소모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성폭력 사건은 폭력에 대한 사건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범죄다.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 학생들이 안전하게 학교에서 학습할 수 있는 권리 등과 관련한 문제기 때문에 사회적 논의의 장에서 들여다봐야 한다. 즉 피해자들과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사를 진영 논리나 정치적 기준으로 들여다볼 일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진 가해자가 내 편인지 아닌지에 따라 진영 논리가 작동하는 것 같아 유감이다. 피해 사실이 알려진 직후,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며 가해자의 뜻을 잇겠다고 말한 의원들이 몇몇 있었다. 이전에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과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가해자가 누군지에 따라 달라지는 연대와 지지에 진정성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소 직후, 피의자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이 예정돼 있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잘못이 법원에서 인정되고, 가해자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해 고소를 진행했다. 하지만 가해자의 사망으로 피해자는 법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피해를 이야기하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 권리 자체를 차단당했다. 이 부분이 가장 안타깝다. 피의자 사망으로 그를 형사 처벌할 수는 없게 됐지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고소한 피해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기획 미투, 살인녀 등의 2차 가해가 양산됐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 사실을 입증해 내는 것은 앞으로 권력형 성범죄가 계속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제도가 보완돼야 하는지 찾는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역시 화두에 올랐다.

2차 가해는 이 사건 피해자만 감내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이번 수사가 진행되면서 피해자의 실명이 고스란히 인터넷에 공개되고, 피해자를 살인죄로 고발하겠다는 내용의 SNS 글에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조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런 일들은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에게 ‘목소리를 내면 너도 이런 처지가 될거야’라는 메시지를 주는 셈이다. 따라서 개별 사건에 대한 2차 가해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가해행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뿐 아니라 침묵하는 것 역시 2차 가해를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토양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결국 우리들의 침묵은 2차 가해행위에 대한 사회적인 방조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이 2021년 한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성폭력 사건은 정치 영역의 문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건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정치적 잣대, 진영 논리를 걷어내면 본질은 명확하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성적으로 괴롭히고 착취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잣대를 걷어내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또 우리는 과연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지 늘 점검했으면 좋겠다. 점검을 통해 폭력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는 것이 우리 일상 속 폭력을 멈추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변호사로서 계획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변호사로서 일을 줄이고 내 개인적 삶에 더 충실해지는 것이 계획이다. 영어 공부도 제대로 하고 싶고 스페인어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너무 힘들었고 나를 지키는 평형수들이 다 고갈된 것 같아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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