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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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킹, 도전1000곡, 아내의 맛, 미스트롯·미스터트롯, 우리 이혼했어요. 제목만 들어도 아는 이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서혜진(사회·93졸) TV조선 제작 본부장의 기획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회의 소리로 가득 찬 TV조선 상암 방송국에서 17일 후드티 차림의 서 본부장을 만났다. 인터뷰 시간을 제외하고 사무실의 끝과 끝을 오가며 후배들과 소통하는 서 본부장을 보며 일에 대한 그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19년 ‘미스트롯’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에 트로트 바람을 일으킨 서 본부장. 그에게 새로움과 재미는 프로그램 기획에 있어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미스터트롯’에서는 트로트 무대에 쇼(show)적인 부분을 가미하고 가수들끼리 그룹을 결성해 활동하는 새로운 포맷을 형성했다. 서 본부장은 “이러한 트로트 무대가 팬덤 문화와 결합해 중장년층에게 재미를 선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미스터트롯은 시청률 35.7%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서 본부장은 “20년이 넘도록 PD 일을 하며 오랜만에 느꼈던 콘텐츠 파워이기에 나에게도 큰 의미를 가진다”며 “콘텐츠만 재밌다면 어느 채널이든 시청자들이 찾아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고 덧붙였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한 것은 서 본부장이 SBS에서 TV조선으로 이직했을 때였다.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포맷이 전체 조직의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서 본부장에 따르면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른 프로그램들보다 한 회당 3배의 자본 투입을 요구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할 경우 해당 조직의 실행력, 사고방식 등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며 “시청자 층을 고려해 오디션 프로그램의 주제를 트로트로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행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트로트 오디션은 처음이기에 시장의 분포, 즐기는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또 처음에는 ‘고등트롯’을 기획해 10대 지원자를 모았지만 인원이 없어 성인까지 지원 연령을 늘리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이 과정을 거쳐 서 본부장이 만든 트로트 프로그램들은 아이돌 위주 음악 오디션의 한계를 극복하고 트로트를 재조명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미스트롯’으로 국무총리 표창과 ‘미스터트롯’으로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예능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프로그램 성공 이후 해당 방송의 출연진들은 타 방송에 많이 출연했고, 방송사들은 트로트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을 우후죽순 내놓았다. 일부 시청자들은 트로트가 지겹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서 본부장은 “원인은 콘텐츠 업계의 상상력 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은 지루한 것은 당장 그 다음날부터 보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콘텐츠가 지루해지는 시점에는 소비되지 않아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방송 추세로는 ‘스피드’를 꼽았다.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생각나는 아이템들을 바로 선보이고 반응이 있으면 빨리 잡아서 프로그램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선 반응이 오는지 안 오는지 보고 때에 맞춰 수정해가는 것이 요즘 트렌드다”고 했다.

이렇게 시장의 흐름을 읽기까지 서 본부장은 무던히 노력했다. 무조건 많이 보고 편집 양을 늘려가며 많은 편집을 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묻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없다”고 답하며 “그래도 쉴 때는 강아지를 산책시킨다”고 말했다.

본인을 기술자에 비유하며 “기술자는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행운을 갖는다”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까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는 일이 재밌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예능 분야에서 머물렀던 그는 2020년 4월 자사 제작 전반을 지휘하는 TV조선의 제작본부장이 됐다. 이전에 비해 고민은 확장됐다. 맡은 프로그램 시간에 시청자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던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재는 24시간 동안 해당 채널 안에 시청자들을 어떻게 머물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 달라지지 않은 점 한 가지는 바로 현장을 대하는 태도였다. 서 본부장은 “프로그램의 답은 현장에 있다”고 했다. 현장성이 있어야 프로그램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고, 복잡한 상황을 파악해 스탭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통 위로 올라갈수록 방 안에서 결재를 한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그런 것은 요즘 콘텐츠 시장에 맞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방 안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제 철칙이죠.”

본교에서 사회학 박사과정까지 밟은 이유에서도 그의 현장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서 본부장은 “이대 사회학은 사상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걷어 올리는 실질적인 주제들로 논문을 쓰게 해줬다”고 말했다.

또 “학문에서의 열린 분위기 뿐 아니라 이화 내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되는 것 역시 좋은 점이었다”며 “나의 기질과 참 잘 맞았다”고 이야기했다.

끝으로 서 본부장은 이화인들에게 야망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그는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에만 몰두하지 않고 좀 더 멀리 보고 높게 봤으면 한다”고 말하며 “그러기 위해선 야망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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