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사무총장을 만나다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 박주희 사무총장. 2007년 국내 1호 국제도핑검사관이 됐다. 민경민 기자 minquaintmin@ewhain.net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 박주희 사무총장. 2007년 국내 1호 국제도핑검사관이 됐다. 민경민 기자 minquaintmin@ewhain.net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러시아 선수들은 자국 이름을 달고 출전할 수 없었다. 국가 차원의 도핑(Doping) 스캔들 때문이다. 그만큼 도핑은 스포츠계에서 중요한 분야다.

스포츠 도핑계에서 ‘국가대표’라 불리는 이화인이 있다. 국내 1호 국제도핑검사관 박주희(체육학과·03년졸) 동문이 그 주인공이다. 박씨는 현재 도핑검사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스포츠외교를 위해 활동하는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의 사무총장이자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의무반도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2월24일 ISF에서 박씨와 만났다.

박씨의 전문분야는 스포츠 도핑이다. 도핑은 운동선수가 심장흥분제근육증강제 등 약물의 힘을 빌려 경기에서 체력을 극도로 발휘시키려 하는 행위를 말한다.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부정행위일 뿐만 아니라 선수의 건강에도 심한 부작용을 미치기에 도핑 방지는 필수다.

도핑검사관은 공정한 경쟁과 선수의 건강 보호를 위해 선수들의 혈액이나 소변 등의 시료를 채취하는 등 현장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검사는 경기기간 중 검사와 경기기간 외 검사로 나뉘어 이뤄진다. 박씨는 “경기를 끝낸 선수들은 무작위, 표적 순위 등으로 도핑검사를 시행하고, 또는 불시에 선수 소재지에 방문해 경기기간 외 검사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은 선수가 체중감량을 이유로 2주 동안 물을 안 마시고 15kg을 뺀 탓에 도핑 검사에서 소변이 안 나와 소변 시료 채취에 10시간이 걸린 경우도 있다”며 도핑검사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박씨는 “소변 바꿔치기와 같은 부정행위가 이뤄질 수 있으므로 검사관이 선수가 소변을 용기에 담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격 정지 등 ‘선수 생명’이 걸린 약물 복용 여부를 검사하는 업무다 보니 선수들이 귀찮아하거나 싫어해 속상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

중동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 당시 타인에게 성기를 보이면 안 된다는 종교적 이유로 도핑검사를 거부한 사례가 있었다. 이에 박씨는 이 상황을 보고했고, 선수가 결국 도핑 방지 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사례가 있었다. 박씨는 “도핑 관리 절차에는 예외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07년, 박씨는 29살에 한국도핑방지위원회의 도핑검사관이 됐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1회 비치아시안게임에서 전 세계 처음으로 실시된 국제도핑검사관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국내 최초 국제도핑검사관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후 2010년 밴쿠버올림픽, 2012년 런던올림픽, 2014 소치올림픽 등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핑검사관으로 참여했다.

검사관 활동뿐만 아니라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4인천아시안게임, 2018 평창올림픽,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등 국내에서 개최된 국제대회의 도핑 관리 책임자 및 자문관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 국제분야 자문위원으로 OCA 반도핑 위원, 국제경기연맹 도핑방지위원장 등의 활동을 통해 국제스포츠에서 도핑 척결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2020 로잔 청소년동계올림픽에서의 박 사무총장 제공=본인
2020 로잔 청소년동계올림픽에서의 박 사무총장 제공=본인

박씨는 “수많은 국제스포츠 현장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며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스포츠 현장에서 나 역시 국가대표라는 심정으로 일한다”고 밝혔다.

박씨가 본교 학부생 1학년 시절 세브란스 병원 재활학교에서 봉사한 경험은 진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됐다. 봉사활동을 통해 장애인체육에 관심을 갖게 돼 본교 석사과정 중 특수체육을 전공했다. 박씨는 “장애인은 직간접적으로 약물을 접할 수밖에 없기에 도핑에 대한 이해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즈음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도핑과 약물 검사의 중요성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도핑검사관 자격증을 획득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선수에 대한 도핑 지식을 모두 갖춘 인재로 한국도핑방지위원회에 입사했다.

그가 국제도핑검사관으로서 우뚝 설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박씨는 ‘같은 출발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는 이화의 학풍’을 꼽았다. “성별에 의해 기회를 박탈당하는 경험 없이 제 능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죠. 이화에서 배운 리더십과 도전정신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어요.”

박씨는 다양한 국제스포츠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대한민국 스포츠외교를 담당하는 ISF 사무총장도 맡고 있다. 박씨는 오는 7월 일본에서 개최 예정인 2020도쿄올림픽에도 유승민 IOC 위원과 참석하여 스포츠 외교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2030 도하 아시안게임 유치 계획을 듣고 있는 모습 제공=본인
2030 도하 아시안게임 유치 계획을 듣고 있는 모습 제공=본인

2020년 11월 박씨는 2030 아시안게임 유치 신청서를 낸 카타르 도하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를 방문해 개최 도시 평가를 맡았다. 박씨는 아시안게임 개최 도시평가위원 4명 중 한 명이다. 어떤 국가에서 경기를 여는 게 좋을지에 관한 판단이 박씨와 나머지 평가위원 3명에 달려있다.

그는 이번 평가에서 자신의 전문인 ‘도핑’과 코로나19 대응 분야를 꼼꼼히 검토했다. 또한 그는 유일한 여성 평가위원이었기에 두 중동 국가의 여성 스포츠 활동현황과 남녀가 차별 없이 평등한 대회가 개최될 수 있는지에 대해 평가하는 역할을 맡았다.

박씨는 세계 여기저기를 누비며 스포츠 행정에 참여하는 자신의 직업에 애정을 표했다. 그는 “도핑은 프로, 비장애인, 장애인, 국내, 국외 등 모든 스포츠 분야를 다룰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라며“앞으로 대한민국 스포츠 외교에 힘쓰겠다”고 답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화인들에게 많은 도전을 해보라고 전했다. “제가 봉사활동을 통해 진로를 찾았던 것처럼 여러 활동을 경험해보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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