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5일 국내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2021)가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서 전 세계 190개국에 동시 공개됐다. 우주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승리호’ 선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공개 후 5일간 전 세계 넷플릭스 1위를 하며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K-SF’, ‘새로운 K-콘텐츠의 시작’이라 불리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승리호’는 누가 발굴했을까. 광활한 우주 속 승리호를 관객들의 눈앞에 가져다주기까지, 모든 과정엔 영화사 비단길 김수진 대표(독문·89졸)가 있었다. 역삼동에 위치한 영화사 비단길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영화사 비단길 김수진 대표. 영화 ‘승리호’(2021)를 제작했다. 이주연 기자 liberty@ewhain.net
영화사 비단길 김수진 대표. 영화 ‘승리호’(2021)를 제작했다. 이주연 기자 liberty@ewhain.net

“세상이 좋아지는 데 1%라도 도움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김수진 대표는 ‘추격자’(2008), ‘늑대소년’(2012)으로 이름을 날린 베테랑 영화 제작자다. 영화사 비단길의 공동대표인 그는 첫 영화 ‘음란서생’(2006)으로 시작해 쉬지 않고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제작자는 영화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시나리오 선정부터 투자사 섭외, 제작 상황 검토, 배급까지의 과정을 담당한다. 김 대표는 “아카데미 시상식 맨 마지막에 작품상을 받는 사람이 영화 제작자”라며 “작품의 창의성과 완결성, 자본과 관객과의 커넥션, 법적인 문제 등 모든 것을 완성하는 최종 책임자”라고 전했다.

그는 인터뷰 당일 아침부터 ‘승리호’에 대한 축하 전화를 연이어 받았다. 한국에서 우주 SF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의 추진력은 언제나 ‘더 좋은 이야기, 더 새로운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갈증에서 나온다.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터미네이터나 스타워즈, 에일리언, 이런 할리우드 영화보다 좋은 영화.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김 대표가 ‘승리호’ 제작을 구상한 건 12년 전이다. 2009년 그는 당시 신인 감독이었던 조성희 감독으로부터 ‘승리호’의 기본 아이디어를 들었다. ‘우주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이 세상을 구한다’, 한 마디의 시놉시스를 듣자마자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우주 SF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자본, 인식이 없었다. 게다가 감독마저 신인이었기에 투자를 받기도 역부족이었다. 김 대표는 일단 다른 영화로 실력을 보여주자 생각했다.

영화사 비단길 김수진 대표. 영화 ‘승리호’(2021)를 제작했다.이주연 기자 liberty@ewhain.net
영화사 비단길 김수진 대표. 영화 ‘승리호’(2021)를 제작했다.이주연 기자 liberty@ewhain.net

2012년 조 감독과 함께 송중기, 박보영 주연의 ‘늑대소년’을 제작해 대박을 터뜨렸다. 누적관객수가 700만 명이 넘었다. 이후 ‘탐정 홍길동’(2016)을 통해 기술과 액션신을 탄탄히 한 후 2016년 다시 ‘승리호’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는 뭐든지 “왜 안돼?”라는 생각으로 도전한다. 본교 졸업 후 프랑스에 방문한 김 대표는 프랑스 영화의 참신함에 반해 ‘퐁네프의 연인들’(1992), ‘레옹’(1995)을 수입했다. 처음 주변인들은 ‘왜 사왔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수입해온 영화들은 국내에 프랑스 예술영화 붐을 일으켰다.

이후 한국에 IMF가 터져 국내 영화 투자사들이 문을 닫자 미국영화학교(American Film Institute)로 유학을 떠났다. 조엘 실버(Joel Silver) 프로덕션,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에서 일하며 실력을 쌓은 그는 2005년 한국에 돌아와 영화사 비단길을 차렸다.

비단길에서 두 번째로 제작한 영화 ‘추격자’ 역시 그의 안목과 도전정신을 보여준다. 연쇄살인범과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다룬 ‘추격자’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가 환영받지 못했다. ‘범인을 처음부터 알려주는 스릴러가 어디 있냐’는 비난을 듣기 일쑤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굴하지 않고 지문 하나하나까지 감독과 상의하며 수정했다. 결국 투자를 따내 2008년 개봉한 ‘추격자’는 500만 관객 수를 찍으며 한국형 스릴러의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대표는 영화가 ‘좋은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한 편의 도전일 수 있지만, 그 도전을 통해 작게는 100명에게 직업이 생긴다”며 “또 개봉했을 때 100만 명 이상이 즐거워질 수 있다 생각하면 일이 정말 재밌다”고 전했다.

그는 영화가 숨겨진 사람들에게 관심을,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추격자가 소외당하고 살해당한 여성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했다”며 “승리호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꿈꾸지 못하는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은 많은 사람들한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새로운 마음으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1980년대 가수 김현식, 유재하의 이야기를 다룬 ‘너와 나의 계절’은 촬영을 끝낸 후 후반 작업에 들어간다. 그는 ‘승리호’의 속편에 대한 가능성도 내비쳤다. “처음에 승리호의 세계관을 확장하느라 시간을 많이 들였다”며 “시퀄, 프리퀄, 인물별 시리즈도 생각 중이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이화에 대한 애정을 내비치며 이화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기를 권했다.

“이화인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감성이 독립심과 자부심과 연결됐을 때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자부심을 잃지 마시고 열심히 도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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