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 앞 상권에 ‘비건식’ 바람이 불고 있다. 비건식은 채식주의 식단으로,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뉜다. 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 채식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2008년 15만 명에서 2019년 150만~200만 명으로 급증했다. 국내 요식기업들도 채식제품 출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본지는 본교 앞 비건 열풍을 살펴보기 위해 이화여대길 주변 상권을 둘러봤다.

 

“2년 새 비건 식당이 정말 많아졌어요. 논비건 식당에서도 비건 옵션을 따로 마련해 주더라고요.”

민동안(중문⋅18)씨는 채식주의자다. 그는 육류, 해산물은 먹지 않고 채소, 계란, 우유를 먹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Vegetarian)이다. 민씨는 “채식을 처음 시작했던 2018년에는 갈 수 있는 식당이 10군데가 채 안 됐던 것 같다”며 본교 앞 비건식당의 증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늘어난 비건식당, 다양해진 채식 메뉴

본교 앞 상권에 비건식을 제공하는 식당은 1년 새 10곳 이상 늘었다.

비거니즘 지향 동아리 ‘솔찬’이 제공한 비건식당 지도 ‘알쓸신비(알아두면 쓸모있는 신비로운 비건식당)’에 따르면 본교 앞 식당 중 비건 메뉴를 두고 있는 식당은 2019년 5월 기준 20곳에서 2020년 5월 기준 30곳으로 늘었다. 비건 메뉴를 두고 있지 않더라도 특정 재료를 빼달라고 요청해 비건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은 10곳에서 15곳으로 증가했다.

본교 정문 근처에 있는 김밥집 ‘영미김밥’은 2018년 9월 ‘비건김밥’을 도입했다. 비건김밥은 일반김밥에서 햄, 어묵, 맛살 등의 동물성 재료를 빼고 만든다. 사장 조영미(62⋅여⋅서울 서대문구)씨는 “원래 비건을 몰랐지만 이대 동아리 솔찬이 메뉴 도입을 제안해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비건 메뉴에 대한 손님들의 선호도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본교 앞 52길에 위치한 분식집 ‘카우떡볶이’도 2019년 8월 채식메뉴를 도입했다. 현재 ‘카우떡볶이’에는 짜장, 로제, 까르보나라 등 다양한 맛의 떡볶이와 주먹밥, 몇 가지 채식용 튀김이 비건 메뉴로 준비돼있다.

사장 이승태(46⋅남⋅서울 은평구)씨는 “단골손님 중 어묵같은 특정 재료를 빼달라고 하는 분들이 어느 순간 늘었다”며 “그때부터 비건 메뉴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이씨는 비건이었던 가게 아르바이트생의 도움을 받아 비건 메뉴를 만들기 시작했고, 기존 메뉴들을 비건 옵션으로도 판매하게 됐다.

비건 음식만을 파는 비건식 전문 식당도 새로 생겼다. 대표적인 식당으로는 ‘베지베어(Vegebear)’,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이세놀)’, 비건 카페 ‘베가니끄(Veganique)’가 있다. 이들이 본교 앞에 개업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베지베어’와 ‘이세놀’은 2019년 9월, ‘베가니끄’는 2020년 1월에 오픈했다.

이뿐만 아니라 본교 앞 중국집 ‘이화성’에서는 비건을 위해 고기를 뺀 간짜장을 제공하고, 카페 ‘앨리스’에서는 요청시 논비건(Non-vegan)인 베지밀 두유 옵션을 비건인 매일 두유로 바꿔준다.

이처럼 본교 앞에서 비건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솔찬’은 “학교 앞 상권의 비건 감수성이 높아졌다”며 “예전에는 ‘비건’을 설명하며 비건 메뉴를 요청드렸는데, 이젠 ‘비건으로 해주세요’라는 말 한마디로 쉽게 비건 메뉴 요청이 가능해졌다”고 전했다.

 

비건메뉴 요청하고 식당 개업까지, 본교생이 만들어낸 ‘비건 프렌들리’ 상권

본교 앞 상권에는 비건을 위한 식당이 많은 편이다. 민동안씨는 타대 앞 상권에 비해 본교의 채식 상권은 상당히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그는 “평소에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건대와 고대 근처로 놀러갔을 때 갈 만한 곳이 인도카레집 한 군데뿐이라 힘들었던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번 학기 입학한 허윤영(철학·20)씨 역시 “경기도에 있는 본가에서 통학하는데 거주하는 동네보다 비건 옵션이 훨씬 많아 좋았다”고 전했다.

서울여대에 재학 중인 오소현(아동⋅18)씨 역시 본교 주변 상권이 다른 곳에 비해 비건 친화적이라고 느꼈다. 락토오보 베지테리언인 오씨는 “비건 프렌들리(Vegan-Friendly)한 식당의 수가 많다는 것은 수요가 그만큼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어 “이화여대에선 동물권과 환경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 같다”며 “이러한 학내 분위기가 쉽게 비건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비건친화적인 상권의 배경에는 본교생들의 관심과 노력이 크다. 많은 학생들이 채식을 실천하며 가게에 메뉴를 문의한 결과다. 솔찬은 2019년부터 학교 주변 식당에 비건 메뉴 도입을 제안해왔다.

‘솔찬’은 비거니즘을 지향하기 더 편한 환경을 만들고자 비건식당 리스트 ‘알쓸신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금은 ‘채식한끼’라는 채식식당 지도앱이 있지만, 동아리가 만들어졌던 2017년 당시만 하더라도 이대나 신촌을 중심으로 한 채식 식당 정보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메뉴 제안을 넘어 직접 비건식당을 차린 본교 학생들도 있다. 학교 앞에 위치한 ‘베지베어’와 ‘이세놀’, ‘쌀라맛(Ssalamat)’은 모두 본교생이 직접 창업한 비건식당이다.

말레이시아 유학생 아주린 아스미(AZUREEN ASMIE⋅식영⋅16)씨는 본교 학생들과 11월 박스퀘어(Boxquare)에 ‘쌀라맛’이라는 가게를 열었다. 쌀라맛은 아시아 퓨전 음식을 파는 가게로, 3가지 메뉴 중 2가지는 비건 메뉴다. 아주린씨는 “이화 학생들 중 비건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며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맛있는 동남아 음식에 비건 옵션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유일한 논비건 메뉴인 ‘코코맛 라이스’도 비건 문의가 많이 들어와 현재 비건 옵션을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비건상권에 대한 아쉬움이 나오기도 했다. 허씨는 “락토오보 정도의 채식 옵션만 있는 식당들이 많다”며 “‘이왕 채식 옵션을 개발해주시는 김에 비건 메뉴도 만들어주시면 어땠을까’ 한다”고 했다.

‘솔찬’ 역시 “비건과 논비건이 함께 식사하려면 비건 옵션이 있는 식당을 검색해야 한다”며 “모든 식당에 비건 옵션 메뉴가 적어도 하나씩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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