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의 선구자, 의사 박에스더' 기획전이 진행되는 이화역사관 기획전시실. 이희윤 기자 hannah101142@ewhain.net
'이화의 선구자, 의사 박에스더' 기획전이 진행되는 이화역사관 기획전시실. 이희윤 기자 hannah101142@ewhain.net

1900년대 한국 여성들을 위해 의술에 힘썼던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 선생.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본교 이화역사관은 <이화의 선구자, 의사 박에스더> 기획전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의료인으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인생의 전환점마다 다른 이름으로 살았던 박에스더 선생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김점동, 박에스더, 의사 박에스더 세 개의 세션으로 구성됐다.

기획전시실 입구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8개의 패널에는 박에스더 선생이 살았던 34년간의 생애가 담겨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이화학당의 네 번째 학생으로 입학했던 학생의 모습이 보인다. 첫 번째 세션은 박에스더 선생의 어린 시절, ‘김점동’이다. 김점동은 박에스더 선생의 본명이다. 패널 속 사진에는 이화학당을 설립한 메리 스크랜튼(Mary Fletcher Benton Scranton) 여사와 그의 친구들, 17살 김점동의 모습이 담겨있다. 뒤편에는 김점동에게 신학문과 기독교 신앙을 가르친 이화학당의 스승들이 보이는데, 중앙에는 김점동의 조력자인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선생이 있다.

박에스더 선생이 김점동으로 지낸 이화학당에서의 시절을 담은 패널 옆에는 보구녀관과 박에스더 선생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1887년 이화학당 구내에 설립된 보구녀관은 김점동이 근대 과학을 접하고 의료 보조인으로 활동했던 공간이다. 패널에는 스크랜튼 여사가 조선에 교사와 의사 파견을 요청했던 보고서와 조선 최초의 여성 전용 병원이었던 보구녀관의 당시 모습이 있다.

보구녀관 이야기를 담은 패널의 반대편에서 김점동에게 의료 지식을 가르쳤던 로제타 선생을 만날 수 있다. 김점동은 보구녀관의 의사로 부임했던 로제타 선생의 통역과 의료 보조를 맡으며 의료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김점동이 처음부터 의술에 관심을 보였던 것은 아니었으나, 수술을 통해 새 삶의 가능성을 찾은 여성을 보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 김점동과 로제타 선생의 관계는 김점동의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다. 1891년 당시 김점동이 쓴 ‘애중하는 의사부인에게 하는 편지로다’라는 한글 문구를 통해 로제타 선생과 각별한 사이였음을 짐작케 한다.

로제타 선생을 담은 패널 맞은편으로 몸을 돌리면 이제는 김점동이 아닌 박에스더 선생이 있다. 김점동은 1891년 에스더라는 세례명을 받게 되고, 1893년에는 박여선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1894년 미국으로 떠나는 로제타 선생을 따라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이때 에스더의 성은 미국의 관습에 따라 남편의 성으로 바뀌었고, 이후 ‘박에스더’로 새 인생을 펼친다.

다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미국에서 의대생이 박에스더 선생을 마주할 수 있다. 학사모를 쓰고 정면을 바라보는 박에스더 선생의 모습에서 의술과 의학 법률을 펼치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마지막 세션에는 1900년부터 그가 사망한 1910년까지 ‘의사 박에스더’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켠에는 1900년 귀국한 박에스더 선생이 보조의사로 부임했던 평양 광혜여원의 사진이 보인다. 사진 속 광혜여원과 보구녀관에서 박에스더 선생은 폐결핵에 걸리기 전 약 5년간 매년 수천 건에 달하는 진료를 봤다. 이처럼 조선의 여성들을 위해 전력을 다했던 그의 삶을 루이스 박사에게 보낸 편지의 문구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조선에서의 의료 활동은 어떤 의미에서든 고됩니다. 저를 비롯한 이곳 의사들은 가장 힘든 환경에서 일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상황입니다. 저도 로제타 홀 선생님도 가능한 많은 환자를 진료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입원 환자 외에도 외래 환자들로 진료소가 매일 가득 찹니다.

박에스더 선생의 죽음으로 전시는 마무리된다. 1905년 박에스더 선생은 폐결핵 발병으로 의사 활동을 중단하고 선교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1910년, 투병 끝에 3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말년에 가족들과 함께 있는 박에스더 선생의 모습도 전시돼 있다. 패널 뒤편에는 1909년 5월5일 자 『황성신문』 기사가 있다. 박에스더 선생이 여성 교육의 상징이자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 받아 은장을 수여받았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박에스더 선생의 당대 사회적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기획전을 맡은 김송이 연구원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이화인들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한 박에스더의 삶을 확인하고, 코로나 팬데믹 시기 자신들의 미래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화의 선구자, 의사 박에스더> 전시는 2일부터 2021년 5월15일(토)까지 열린다. 관람 시간은 월~금요일, 오전10시부터 오후4시까지이며, 주말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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