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희 서초구청장. 제공=서울시 서초구청
조은희 서초구청장. 제공=서울시 서초구청

여름철 뙤약볕을 가려주는 횡단보도 그늘막, 겨울철 칼바람을 막아주는 온기 텐트, 밤이 되면 불빛이 환하게 바닥을 밝혀주는 활주로형 횡단보도. 아이디어가 빛나는 이 정책들은 모두 서울시 서초구에서 시작됐다.

인구 약 45만의 서초구는 서울시 25명의 구청장 중 유일한 미래통합당 출신 구청장인 조은희 동문(영문·84년졸)이 7년째 이끌고 있다. 2021년 4월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미래통합당 후보로 조 구청장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그에 대한 주목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본지는 서초구를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그를 8월 초 서면으로 만나 서초 행정의 ‘비하인드’를 물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많은 변화가 있을 거예요. 이념과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주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생활행정’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조 구청장은 구민들의 소리와 마음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 즉 ‘공감’과 ‘배려’를 담은 구정활동을 참신한 생활행정 정책들의 배경으로 꼽았다. 전국 어느 도시에서나 여름만 되면 만날 수 있는 횡단보도 그늘막인 ‘서리풀 원두막’의 탄생 배경 역시 작은 공감과 배려의 마음이 시작이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땡볕 아래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주민분들을 봤는데, ‘우리 엄마가 저기 서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 마음에서 그늘막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게 된 거죠.”

처음엔 도로법상 그늘막 설치가 어렵다는 서울시 의견에 부딪혔지만, 서초구는 2015 년 6월 관내 횡단보도 2곳에서 1년간 시범운영했다. 이후 2017년 4월 현재의 모습과 같은 ‘서리풀 원두막’을 52개소로 확대하니 주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서초구청 홈페이지엔 ‘세금은 이런 곳에 써야지’, ‘시민을 위한 행정은 바로 이런 것’ 등 호평이 줄을 이었고, 지금은 187개의 그늘막이 서초구 전역에 설치돼 있다.

서리풀 원두막. 제공=서울시 서초구청
서리풀 원두막. 제공=서울시 서초구청

‘서리풀 원두막’은 2019년 행정안전부의 ‘그늘막 설치·관리 지침’의 모델이 돼 전국에 확대됐다. 경기, 부산, 강원, 제주 등 전국 방방곡곡 거리마다 펼쳐진 우산 모양의 그늘막은 어느새 낯익은 풍경이 됐다. 조 구청장은 “앞으로도 ‘서리풀 시리즈’처럼 주민의 마음을 살펴 작지만 큰 감동을 주는 생활 밀착형 행정을 할 것”이라며 포부를 전했다.

서리풀 원두막 외에도 그의 포부에 걸맞게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서리풀 온돌의자’, 미세먼지로부터 보호되는 청정 구역인 ‘스마트 에코 쉘터’, 어르신 세대에게 키오스크 사용법 등을 교육하는 ‘스마트 시니어 사업’ 등 다양한 정책들이 있다. 이런 조 구청장의 행보를 증명하듯 서초구청장직을 맡은 2014년부터 서초구가 수상한 내역만 250건이 넘는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그의 아이디어와 세심함은 ‘언택트(Untact)’ 행정서비스로 빛을 발했다. 전국 최초로 3월13일 이후에 입국한 모든 구민들을 자가격리하고 귀국 즉시 검사를 받게 했다. 4월1일부터 해외입국자 대상 검사를 실시한 서울시보다도 빠른 대응이었다.

꼼꼼한 방역체계와 감염예방을 위한 시도들도 한발 빨랐다. “모든 주거용 건물 승강기에 바이러스 차단 효과가 있는 ‘향균필름’을 지원한 것도 서초구가 처음이었죠.” 전국 최초로 관내 초중고 51곳에 적외선 카메라와 안면인식 기술이 탑재된 AI 로봇을 배치하며 화두가 되기도 했다. 이 로봇은 자율 주행하면서 등교하는 학생의 체온을 측정해 화면에 표시해준다.

서초구의 코로나19 선제 대응은 국내를 넘어 해외 도시들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해외 자매도시인 프랑스 파리 15구와 터키 시실리구에서 화상 통화로 코로나19 대응 전략을 공유하기도 했다. 조 구청장은 “아직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 대응 성공을 논하기엔 이르다”며 “그럼에도 우리 구의 코로나 대응 행정에 대해 세계 유수의 도시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서초구의 코로나 대응 행정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새로운 미래는 언제나 위기로부터 출발하며, 위기 속에는 미래의 씨앗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죠.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위기 속에서도 많은 가능성의 씨앗이 자라고 있고, 우린 이미 그걸 눈으로 확인했어요.”

이런 그도 처음부터 공직에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1988년 영남일보를 거쳐 1998년까지 경향신문 기자로 일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아이가 있는 기혼여성, 가정주부의 사회 진출이 상당히 어려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남보다 늦은 나이에 기자생활을 시작했기에 ‘독종’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그러던 중 ‘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괌 구상’ 소식을 특종으로 내보냈고, 김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돼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후 2008년부턴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과 정무부시장을 거쳤다. 당시 서울시에서 여성 정무부시장은 그가 최초였다.

적극적이고 저돌적인 조 구청장의 학부 생활은 어땠을까. 대구에서 상경한 그는 이화에서의 학부 시절을 ‘여자들만의 자매애를 배운 시간’이라고 추억했다. “저는 여자 형제가 없어요. 이모도 자매도 없어 여자들만의 생활은 미지의 세계였죠. 학부 때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감성을 나누며 이화인이라는 자부심을 느꼈어요.” 그는 당시 느끼고 가꿔온 자매애가 지금의 ‘조은희’를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조 구청장은 “여자의 동지는 여자”라며, 이런 힘을 길러준 모교에 늘 자부심과 애착을 느낀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조 구청장은 후배들에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는 여성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공감능력이 뛰어난 여성의 섬세하고 따뜻한 소통이 빛을 발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급속한 시대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이화인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는 훌륭한 여성 리더로 성장하기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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