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백' 제조기 조보영 전무를 만나다
히트'백' 제조기 조보영 전무를 만나다
  • 이재윤 기자
  • 승인 2020.0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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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언제 핸드백을 살까?’ 

‘여자에게 어떤 핸드백이 꼭 필요할까?’

‘내가 핸드백을 딱 세 개만 가져야 한다면?’

『It Bag』, 110p

조보영 전무제공=본인
조보영 전무
제공=본인

히트 제조기. MCM, 제이에스티나, 닥스, 헤지스, 질 스튜어트 등 여러 브랜드를 거치며 새롭고 독특한 핸드백 디자인으로 조보영 전무(철학·87년졸)가 얻은 별명이다. 그는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1세대 핸드백 디자이너 출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조 전무의 사무실 벽면 가득 붙어있는 컬러 차트와 패턴 차트. 그 사이로 보이는 분기별 실적표에서 현재 LF 액세서리부문 리더로 활약하고 있는그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나다운 나. 가치 있는 내가 되자고 다짐했어요.”

조 전무는 어릴 적부터 디자이너의 꿈을 품고 지냈다. 하지만 창의적인 그에게 입시미술이라는 틀은 답답하게 느껴졌다. “입시미술은 엄청난 훈련이 필요한데, 저는 사실 제 개성을 살려 시험에 임한 부분이 있었어요. 미대 시험에서 떨어지고 나니 다시 시험을 보기 겁이 나더라고요.”

그는 패션과 가까워질 수 있는 연결고리를 미학이라는 학문에서 찾았다. 철학과에 지원한 이유다. 조 전무는 패션과의 접점이 조금이라도 더 있다고 생각되는 신문방송과를 부전공하기도 했다. 전공에 대한 고민으로 혼란스러운 대학시절을 보낸 그는 “돌이켜 보면 이 두 전공이 패션계에서 나을 차별화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디자인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해서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귀금속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취업을 위해 여러 패션분야 입사시험을 보던 중 우연히 부드러운 가죽을 접했어요. 너무 새롭더라고요. 가죽을 만지는 일을 해야겠다 싶었죠.”

핸드백 사관학교라 불리던 핸드백 ◆OEM 수 출회사 ‘청산’에 입사한 그는 내수사업부에서 막 발돋움하고 있던 브랜드 ‘블루틴’에서 국내 핸드백 시장을 개척했다. 당시는 국내에서 핸드백 디자이너 라는 직업 자체가 낯선 시기였기에 일을 가르쳐줄 선배도, 매뉴얼도 없었다.

입사와 동시에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자신의 감각만으로 캐주얼 라인, 정장 라인, 웨딩 라인 세 가지 라인의 핸드백을 디자인했다. “그게 대박이 난 거죠. 저희 엄마가 길에서 제가 디자인한 핸드백을 든 사람을 보면 가서 제 딸이 디자인한 거라고 말 하던게 기억나요.(웃음)”

수많은 핸드백을 디자인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백은 무엇일까. 조 전무는 MCM에서 근무할 당시 만들었던 빨간색 ◆페이턴트 레더 토트백을 소개했다. “그 가방은 MCM이 글로벌화를 하면서 첫 번째로 이태리에서 바잉됐던 상품이에요. 당시 외국 바이어들은 한국을 우습게 생각했었어요. 그렇지만 그 가방은 외국에 바잉돼서 아주 잘 팔리고 셀럽들도 본인 돈을 주고 사는 디자인이었죠. 그래서 MCM의 글로벌 런칭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라인이에요.”

조 전무는 일을 할 때 항상 그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학생 때부터 항상 그래왔어요. 주어진 일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이게 왜 필요한지 알아야겠더라고요. 1988년, 처음 입사했을 때 가방 여러 개를스케치하라는 업무 지시가 있었어요. 스케치의 용도에 따라 수치를 표시하거나, 색을 칠하거나,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당시 상사였던 분에게 스케치의 용도를 먼저 알려 주십사 요청드렸죠. 지금 생각하면 신입이 좀 당돌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향후에도 업무 목적을 함께 말씀해 주시면 더 좋은 결과물을 내겠다고 상냥하게 말씀드렸던 기억이 나요.”

이런 조 전무가 생각하는 리더로서의 역량은 ‘경험’과 ‘융합’이다. 그가 말하는 리더는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을 통해 똑똑한 직원들 개개인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 그런 장점들을 서로 화합해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조 전무는 자신이 가진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나눠주고 그게 성과로 이어졌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여러 브랜드를 책임지는 조 전무가 항상 가지는 고민은 어떻게 각 브랜드의 고유 정체성을 지키면서 트랜드를 따라가야 하느냐다.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요소 중에서 트랜드에 맞는 요소 몇 가지를 찾아내는거죠. 트랜드 10개 중에 1~2개라도 부합하는 게 있는지 찾아내요. 그 트랜드와 브랜드가 맞지 않는 시기에도 트랜디한 브랜드로서 상품성을 가 지고 소비자에게 선택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하는 거죠.”

여러 브랜드에서 성공을 거둔 화려한 디자 이너의 모습 뒤에는 두 딸의 엄마가 있었다. 그는 결혼이라는 것을 택하는 순간 자신이 맡아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고 말한다. “회사에서는 점점 일이 많아지고 가족들도 제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으니까요. 그 중에 몇몇은 흘러가는대로 내려놓는 게 필요한데 모든 것을 잘 해내려고 하다 보니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일하는 여성들의 고충이죠.”

바쁜 업무로 아이를 키우는 동안 자책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제가 일을 안했다면 입시에 대한 정보력이 더 많아서 아이의 입시에 도움을 더 많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래도 지금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제 몫을 다 하고있는 큰 딸을 보면 미안함이 덜어져요.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조 전무는 이화인이라는 것을 하나의 브랜드라고 말했다. “학교를 다닐 때는 잘 느끼지 못하던 부분들이 사회에 나오면 느껴지더라고요. 이대출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이나 자존심을 사회에서 인정해주고, 반대로 이대출신들은 스스로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니까요.”

조 전무는 이화인들에게 ‘나’를 위한 선택을 하라고 강조했다. “학생일 때는 미래가 막막해서 더 많은 시도를 했고 그래서 많이 부딪히기도 하고 힘들어 했었어요. 엄마나 친구들이 그냥 평범하게 살라고 얘기할 정도였죠. 젊음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가장 큰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많이 꿈꾸고 다 두들겨보고. 남의 기준에 맞추지 말고 본인을 위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OEM: 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

◆페이턴트: 에나멜. 가죽에 광이 나도록 가공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