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물결을 일으킨 서지현 검사를 만나다
변화의 물결을 일으킨 서지현 검사를 만나다
  • 우지은 기자, 이지선 기자
  • 승인 2020.0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지현이 말하는 n번방부터 이화까지
황보현 기자 bohyunhwang@ewhain.net
황보현 기자 bohyunhwang@ewhain.net

“26만명 모두 범죄 단체 조직죄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죠.”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5월23일 토요일 오후,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으로 일하는 서지현 검사(법학·96년졸)를 만났다. 후배들을 만나 반갑다는 서 검사의 미소는 날씨만큼이나 밝고 따뜻했다.

그는 현재 디지털 성범죄 TF팀 대외협력팀장을 맡아 n번방 사건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26만명 모두 처벌해야 한다”는 그의 단호한 목소리에서 결연한 의지와 자신감이 느껴졌다. 본지는 서 검사에게 n번방 사건의 핵심 쟁점부터 미투(#MeToo) 운동, 이화에서의 이야기까지 들어봤다.

 

현재 바쁠 것 같다. 무슨 일을 하고 있나?

검사로서 법무부에 파견돼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양성평등에 관한 정책을 연구하고 그에 대한 정책을 세우는 일이다. n번방 사건이 크게 이슈화된 후에는 법무부 내 구성된 디지털 성범죄 TF팀에 투입됐다. 현재 디지털 성범죄 TF팀 대외 협력팀 팀장으로서 국회,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하고 여성단체, 언론 등과 소통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찰청 여성안전정책 자문단으로 위촉됐다. 경찰청에서 만든 자문단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대비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수사 진행에 있어서 자문을 주는 역할이다. 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의 일과 유사하다.

 

n번방 사건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굉장히 분노했다. 그러나 ‘예견된’ 범죄였다. 이제까지 이와 유사한 사건이 굉장히 많았으나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검찰에서는 기소유예 아니면 벌금형 정도를 선고해왔다. n번방 사건 이후 변화가 있어 다행이지만, 동시에 이렇게 많은 피해자가 희생되기 전에 우리가 더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 이런 피해를 막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프다.

 

현재 검찰 내에서 이번 n번방 사안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젠더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나?

사실 ‘이제까지 검찰 내 젠더감수성은 없었다’라고 얘기해도 무방한 정도였는데, 지금은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까지 검찰 조직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집단이다 보니 이런 성범죄가 중대한 범죄,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근데 이번 600~700만 국민이 n번방 관련 청와대 청원을 한 것을 계기로 정치권은 물론이고 법조계에서도 굉장히 놀랐다.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반성 역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n번방 사건에 대해서 최대한 강력한 처벌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법무부가 n번방 참여인원에 대해 ‘범죄 단체 조직죄’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성 착취물을 단순 시청하거나 그 방에 입장했다고 추정되는 26만명 모두에게 범죄 단체 조직죄 적용이 정말 가능한가?

26만명 모두 범죄 단체 조직죄로 처벌할 수 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나는 실수로 들어갔다’, ‘우리는 보기만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범죄 단체 조직죄를 적용함에 있어서는 ‘쓸데없는 소리’다. 범죄에는 주범이 있고 종범이 있다. 조주빈의 역할을 똑같이 해야만 공범인 것은 아니다.

n번방에 돈을 내고 입장한 것을 나는 펀딩(funding)으로 본다. 이들은 일종의 자금 조달책 역할을 한 것이다. 또한 ‘노예’로 불린 피해자들을 상대로 ‘이걸 해라, 저걸 해라’ 구체적으로 지시한 행위 자체를 적극적인 가담 행위로 볼 수 있다. 더욱이 가담하지 않으면 강제 탈퇴되는 구조였다면 말이다. n번방은 실수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지금까지 유료회원 2명에게만 범죄 단체 조직죄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여타 디지털 성범죄 사건처럼 또 흐지부지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범죄 단체라는 것은 우두머리부터 행동 대원, 조직원들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주범 몇이 잡혔다고 해서 그 모든 구조가 파악되진 않는다. 따라서 더 많은 사람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고, 수사를 통해 이 사람들 간의 지위 체계나 역할 분담 체계를 보다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처벌 강화의 움직임에 대해 한편으로는 ‘동일 범죄인데 처벌 강도가 한순간에 달라지는 것이 ◆법적 안정성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전까지 성범죄에 대해서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법적 안정성을 침해하는 행위다. ‘국가가 본인을 지켜줄 것’이라는 피해자들의 기대를 지금까지 국가가 저버려 왔던 것이다. 또한 비판하는 이들이 말하는 법적 안정성만을 지키는 것이 법이 해야 하는 최우선의 가치는 아니다.

 

최근 20대 국회에서 n번방 방지 법안이 일괄 통과됐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20대 국회에서 n번방 방지 법안이 일괄통과된 순간,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특히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에서 미성년자 나이 설정을 13세에서 16세로 상향했다. 이 법안은 일정 연령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동의를 받고 성관계를 해도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내용의 법안이다. 이 미성년자의 나이 설정에 있어서 13세라는 연령은 16세부터 18세까지 지정했던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낮은 연령이었는데 상향됐다.

이것과 더불어 성매매 대상이 된 미성년자들을 보호처분이라고 해서 일종의 처벌을 했었다. 이러한 태도는 아이들을 범죄자로 본 것이다. 왜 아이들이 성매매에 내몰릴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검토가 없었다. 이 부분 역시 일괄 법안 통과를 통해 성매매 대상이 된 미성년자는 모두 성매매 피해자로 처우하게 됐다.

여전히 부족하더라도 국가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관계를 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선언한 것이고, ‘우리 아동·청소년 성착취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우 의미 있는 법안이다.

 

n번방 사건에 대한 여성 청년들(‘추적단 불꽃’ 등)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여성 청년들이 연대하는 행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기성세대와 국가가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었다. 그것을 지금 여성 청년들이 하고 있다. 이 사실에 무척 고마우면서도 부끄럽다. 기성세대들도 많이 노력해왔지만 일단 사회 전반적으로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현재는 높아진 여성들의 교육 수준으로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정치를 하는 여성들의 수가 늘어났다. 이에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근래에는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해지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반작용으로 ‘안티 페미니즘’도 생겨났는데, 이런 분들은 페미니즘을 잘못 이해하고 계신 거다. 페미니즘은 결코 ‘남성을 혐오하겠다’, ‘여성이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더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바람직하다. 물론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지만 말이다.

 

서 검사는 n번방 사건 이전에도 미투 운동을 통해 본인의 목소리를 내며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 변화를 이끌었다. 서 검사의 미투 운동 촉발로 각기 다른 영역에서 피해자들은 용기를 얻었고 숨겨야만 했던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다. 재작년 본교에서도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미투 운동이 있었다.

재작년 본교에서 후배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미투 운동을 하며 피해자를 위한 지지의 목소리를 냈다.

언론을 통해서 봤는데 깜짝 놀랐다. 대학을 졸업한 지 15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대학 내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었고, 후배들이 이런 고통을 겪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긴 세월 동안 사회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 피해자들이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참 마음 아팠다. 미투 운동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성폭력에 대해 침묵하지 않겠다는 것,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라는 것이다. 이제까지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해온 잔인한 사회에서 피해자들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으니까. 피해자를 위한 지지의 목소리에 너무나 감사했고, 이러한 목소리가 피해자를 비난하고 성폭력을 조장해온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투 운동 이후 후배들을 비롯한 많은 국민이 서 검사의 행보에 큰 관심과 지지를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부담이 있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양성 평등정책 특별자문관으로 일하고 있지만, 공무원 조직이라는 게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렇지만 미투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 인식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돼 개인적으로 기쁘다. 미투 운동은 유리천장을 깨부수기 위해 한 건 아니었고 그저 여성이기에 딛고 있어야 했던 낮은 땅의 높이를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자신을 자책하고 괴롭히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 잘못이 아니라 가해자와 가해자를 방치한 사회의 잘못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많은 여성이 본인의 잘못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 후 2년이 지났지만 변화는 여전히 더디다. 언제까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면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서 검사가 큰 용기를 내는데 ‘이화’가 어떤 영향을 미쳤나?

이화에서의 배움은 내 인생을 좌우할 만큼 영향을 미쳤다. 이화에서 여성은 2등 시민도 누군가의 보조자도 아닌, 그냥 존엄하고 독립된 한 개인이었다. 처음 검찰에 들어왔을 때 ‘여검사는 남검사의 능력 절반에도 못 미친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것을 봤다. 여검사는 성폭력, 가정폭력 같은 남검사들이 회피하는 업무를 전담하는 존재 정도로 인식되기도 했다. 또 동등한 검사임에도 성적 대상으로 취급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화에서 받았던 교육은 그런 게 아니다. 그런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던 것은 내가 이화인이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이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법학관 올라가는 길에 피어있던 목련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학 다닐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당시 도서관에서 내려오는데 찬란하게 피어있는 목련꽃을 보고 눈물이 났다. 가로 등에 비쳐 빛나는 꽃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또 지금은 없어진 이화교도 생각난다. 이화교를 지날 때 ‘억지로 뛰거나 천천히 가지 않고 자연스레 가다가 기차 첫머리나 끝머리를 밟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사실 대학생 때만 해도 이제 ‘내 인생은 핑크빛’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내 능력을 인정받으며 생활할 것이라고. 그러나 인생은 핑크빛이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일을 만나고, 내게 일어날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던 일들을 마주하게 된다. 인생은 끝없는 좌절과 시련을 겪는 여정이다. 하지만 그게 결코 불행하지는 않다. 정말 다양한 색깔들로 채워진다. 그런 게 인생이다. 그저 누구에게나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고통이 와도 시련이 닥쳐도 너무 좌절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길 바란다.

 

법적 안정성: 사회의 여러 사람이 법에 의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것. 법이 시행되지 아니해 사회의 질서가 어지럽게 된다든지, 법이 함부로 고쳐지거나 없어진다든지, 법이 모호하여 명확하지 않다든지 하면 사람들은 법에 의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없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