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국제영화제 초청상영 및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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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워바디'(2019) 한가람 감독(사회·09년졸).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아워바디'(2019) 한가람 감독(사회·09년졸).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요즘 볼 영화 없나.” 영화관 상영 표엔 이미 본 것 같은 영화가 수두룩하다.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독립영화가 인기라던데, 한 번 볼까 싶다.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받은 독립영화 ‘아워바디’(2019)가 눈에 띈다.

포스터의 ‘멈추고 싶은 순간, 달리기 시작했다’란 문구 밑에 ‘각본/연출 한가람’. 실력파 신인 영화감독으로 평가받는 그는 본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한가람(사회·09년졸)씨다. 한가람 감독을 영화 개봉일인 26일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아워바디’의 주인공 자영(최희서)은 30살이 넘은 백수다. 8년 동안 해오던 고시 공부는 그만뒀다. 그리고, 달린다. 달리다 보니 몸에 변화가 생긴다. 자영의 몸의 변화와 욕망을 그대로 영화에 드러낸 한가람 감독은 마치 ‘영화감독이 된 자영’ 같았다.

“졸업하고 되게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너만 잘되면 걱정이 없겠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죠. 제가 달리기 시작한 건 20대 후반, 방송국 비정규직을 관두고 시나리오를 배우고 있을 때였어요.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낮엔 시나리오를 쓰고 밤엔 달렸어요. 달리는 동안에는 현실적인 고민을 잊게 됐죠.”

“자영이와 자신이 닮았다”는 한 감독은 영화 내용의 상당 부분을 실제 경험에 비춰 제작했다. 취업 준비를 오래 한 것, 달리기를 시작한 것, 사람들과 함께 달린 것 모두 자영과 닮았다. 그는 “운동하는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생긴 궁금증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며 “몸의 변화에 대한 고민을 달리기란 소재로 풀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43회 토론토국제영화제 디스커버리 부분 초청

제43회 홍콩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초청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수상

한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고민했던 건 ‘왜 달리느냐’였다. 그저 취업에 실패한 자영이 달리기를 통해 건강해지는 얘기가 아니라는 그는 “현실은 노력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지만, 몸은 노력한 대로 결과를 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달리는 것만으로는 해답이 될 수 없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게 이 영화예요.”

“자영이는 이제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살진 않을 것 같아요. 엄마의 기대 같은 것에서 자유로울 것 같네요. 아르바이트하든, 새로운 것에 도전하든 자영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일을 찾지 않을까요?”

자영이는 영화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감정적으로 교류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몸을 활용해 몸의 욕망을 드러낸다. “몸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에로스적인 장면도 들어갔어요. 그런 장면도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확인하는 행위라고 생각했죠. 자신의 몸을 활용하는 건 달리기와 비슷한 측면이 있어요.”

자영은 달리기 메이트인 현주(안지혜)의 성적 판타지를 대신 실현하기도 한다. “그 장면을 불편하게 보는 분들도 많아요. 그래서 편집할 때 그 장면을 삭제할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넣었어요. 중요한 건 자영한테 그 남자는 상사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이란 거예요. 운동으로 변한 자신의 몸을 알아주는 사람이 눈앞에 있던 거죠. 결국 그것도 자영이가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이에요.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인 거죠.”

‘몸’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카메라는 등장인물의 몸을 자세히 보여준다. 기존 미디어에서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 하는 방식과는 좀 다르다. 달리기하며 달라지는 몸의 근육을 세세하게 카메라에 담는다. 한 감독은 배우에게 특정 신체 부위의 근육을 단련해야 한다고 미리 전달하기도 했다.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 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촬영 감독과 촬영 전에 얘기했던 건 이미 이 영화의 주체는 여성이라는 거예요. 다만 서로 쳐다보는 시선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자영이는 현주의 몸을 동경하고, 동생 화영(이재인)의 몸을 봐요. 자영의 친구 민지(노수산나)나 엄마(김정영)는 자영의 몸을 보죠. 우리는 모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잖아요.”

한 감독은 이런 시선을 보여주는 영화가 성적 대상화되고 있는지 고민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영화 맥락상 여성의 몸을 그렇게 소비하지 않는다”며 “자영이가 현주의 몸을 봤을 때 느끼는 감정, 자신 몸의 변화를 거울로 직접 확인했을 때의 감정이 잘 드러나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영화 '아워바디'의 포스터. 한가람 감독은 기존 미디어가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방식과 다르게 주인공 자영의 몸의 변화와 욕망을 그대로 영화에 드러냈다. 이미지 출처=네이버영화
영화 '아워바디'의 포스터. 한가람 감독은 기존 미디어가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방식과 다르게 주인공 자영의 몸의 변화와 욕망을 그대로 영화에 드러냈다. 이미지 출처=네이버영화

작년 여름에 완성한 ‘아워바디’는 토론토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최희서 배우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워바디’로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다. 영화를 맨 처음 공개한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는 ‘여성이 이렇게 많이 참여한 영화라는 게 신기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제 영화 스태프 성비는 반반일 거예요. 특별히 여성이 더 많지 않았어요. 생각해 보면 이게 당연한 일이어야 해요. 여성이 주인공이면 특별한 게 아니라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여성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가 주목받는 것도 그런 면에서 반가운 일이죠.”

그의 어렸을 적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사 교양 PD를 하기 위해 방송국 입사 시험을 봤죠. 졸업할 때부터 시험 봤는데 29살까지 계속 떨어졌어요. 최종 면접까지 가도 결국 안 됐어요. 그러다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근데 같이 언론고시 스터디를 했던 친구들이 글을 잘 쓰니 시나리오를 써보면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취미로 시나리오를 시작한 한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연출 전공에 지원했다. “어차피 잃을 게 없으니까 떨어지면 어때”란 생각이었다. 합격한 후엔 닥친 일을 열심히 했다. 1년 동안 단편 과정을 수료했고, 장편 과정에서 ‘아워바디’를 제작했다.

한 감독은 영상 제작을 꿈꾸는 학생을 위한 조언을 묻자 “제 코가 석 자”라며 웃었다. “제가 학교에 있을 때 친구들과 항상 하던 농담이 있어요. ‘우린 이 학교의 하위 0.2% 정도야’란 농담이었죠. 정말 진심이었어요. 제 생각에 후배님들은 저보다 더 똑똑할 거라 생각해요. 어렸을 땐 방송국 같은 버젓한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근데 꼭 그 길만 있는 건 아니에요. 자기가 찍고 싶은 영상이 뭔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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