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기후의 보고, 남극 내륙에 남긴 이화의 발자취
고대 기후의 보고, 남극 내륙에 남긴 이화의 발자취
  • 임유나 기자
  • 승인 2019.0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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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성 최초 남극 내륙 캠프 참가, 이다은 연구원의 남극 연구기
국내 여성 최초로 남극에서 연구를 진행한 이다은 연구원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국내 여성 최초로 남극내륙에서 연구를 진행한 이다은 연구원
우아현 기자 wah97@ewhain.net

‘남극’ 하면 새하얀 눈이 덮인 빙하나 귀여운 펭귄이 떠오른다. 하지만 실제 남극 대륙은 예측할 수 없는 기상 상황과 낮은 기온으로 하루하루 긴장을 놓지 못하는 곳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 첫걸음을 내디딘 본교 연구원이 있다. 2018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37일 동안 국내 여성 최초로 남극 내륙에서 연구 활동을 한 이다은(과학교육학 전공 석사과정)씨다.

이씨가 남극 내륙 캠프 기회를 얻은 것은 우연이었다. 학부생 때 과학교육과를 전공한 그는 교사를 꿈꿨지만, 4학년 여름방학에 지도 교수인 이정훈 교수(과학교육과)와 면담을 하며 진로를 바꿨다.

“원래는 교직에 있다가 대학원에 진학하려 했어요. 그런데 이 교수님께서 임용고시도 쉬운 게 아니라며 바로 연구할 것을 조언해주셔서 4학년 2학기부터 교수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다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과학교육학 중 지구과학을 전공한 이씨는 대학원에서 수증기 안정동위원소를 연구했다. 수증기 안정동위원소는 물순환 추적자로 사용된다. 물을 구성하는 수소와 산소의 물리적 차이를 측정 장비로 분석하면 수분의 이동 경로와 기원을 파악할 수 있고, 나아가 기후 변화 연구에 이용될 수 있다.

극지 기반 연구와 사업을 담당하는 극지연구소에서 일했던 이 교수는 수증기 안정동위원소를 연구하는 이씨에게 연구와 관련된 발표를 제안했다. 유의미한 성과에 남극 출장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기후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 극지에서 빙하를 시추해 과거 기후 복원 연구를 해요. 이때 측정 오차를 줄이는데 안정동위원소가 사용되는데 덕분에 남극 내륙 캠프 빙하팀에 지원할 수 있었죠.”

이씨는 남극 출장을 위해 극지고환경연구부 연수생으로 있으면서 수증기 측정 장비 분석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출장이 확정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극 연구원은 교통수단인 쇄빙선(얼음이 덮여 있는 해역에서 수역의 얼음을 부숴 항로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배)이나 남극 기지의 수용 정도에 따라 인원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예정된 것보다 연구팀 인원을 줄여야 하는 상황까지 왔었어요. 저는 연구소 직원이 아닌 학생에다 여자이다 보니 가장 먼저 제외될 대상이었죠.”

계속되는 기다림 속에서도 이씨는 자신의 실력을 믿었다. 마침내 작년 8월 제주도 한라산에서 실시한 ‘고도에 따른 물순환 실험’이 성공하면서 남극 캠프 참가가 확정됐다. 이씨는 “제주도에서 한 실험이 잘 돼 극지연구소 박사님이 남극에 가서도 실험을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지난해 11월 남극 장보고 기지로 향하는 아라온호에 올라탔다.

이씨가 속한 빙하팀은 해안가인 장보고 기지에서 60km 떨어진 내륙 지역 투말린 평원에서 기후복원 연구를 했다. 기온이 낮고 평평한 지역이라 빙하를 시추하기 쉬웠지만 아무런 기반시설이 없어 캠핑 생활을 해야 했다.

끝없이 펼쳐진 눈밭과 해와 달이 앞뒤로 떠 있는 이색적인 풍경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남극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애초에 캠프 기간을 20일 정도로 계획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10일 차에 연구를 중단하고 16일 만에 기지로 돌아왔다. 재정비한 뒤 기지에서 10km 떨어진 곳으로 장소를 옮겨 21일 동안 2차 캠프를 진행했다. 이씨는 “1년 동안 준비했는데 계획대로 못한 것 같아 속상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기상 악화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블리자드(Blizzard, 온도가 낮고 강한 눈보라를 수반하는 폭풍설)가 불 때 촬영했던 영상을 보여주며 “무너지는 텐트를 지도 박사님과 30분 동안 몸으로 지탱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죽는 건가 싶을 정도로 위험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는 더 힘을 냈다. 남극은 환경이 척박하다 보니 각자도생(各自圖生)해야 했기 때문이다. 텐트 보수를 위해 눈을 삽으로 파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은 일상이 됐고, 장비 관리를 위해 밤낮을 바꿔가며 불침번을 서기도 했다. 이씨는 “적은 인원을 데리고 효율적으로 캠프를 진행하기 위해 체력이 더 좋은 남성 연구원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빙하팀 내 여성 연구원은 내가 처음이라 주변의 우려가 있었는데, 이를 긍정적인 인식으로 바꾸고 싶어 더 열심히 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여성 연구원의 남극 진출이 증가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여성보다는 남성 연구원의 비율이 훨씬 높다. 이씨가 남극에 갔을 때도 약 50명의 인원 중 여성은 5명뿐이었고 남극 내륙 캠프에 참여한 10명의 연구원 중 여성은 이씨를 포함해 두 명이었다. 그는 후배 연구원들에게 “여성 연구원의 비율이 적더라도 한계를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믿고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한국에 돌아와 연구 결과 논문을 마무리하는 그는 앞으로 다양한 활동을 할 계획이다.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 채식도 하고 있는 이씨의 롤모델은 연구와 환경운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영국의 동물학자 제인 구달(Jane Goodall)이다.

“국제기구나 환경단체에서 환경오염을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기도 하고 환경운동가가 되고 싶기도 해요. 연구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처럼 두 분야를 구분하지 않고 같이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