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본교 노정희 동문이 여성으로서는 역대 일곱 번째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본교에서 배출한 최초의 대법관이기도 하다.

노정희 동문이 법조계에 종사했던 28년 동안 그는 여성, 아이, 장애인, 탈북자 등 약자를 위한 변호 및 판결을 위해 힘썼다. 각종 인권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대두되는 이 시점 그가 시대적 부름에 대한 응답이 될 것이라 평가 받는 이유다.

취임 전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혜화역 시위에 대해 “그동안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나 장이 상대적으로 없었다”며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 그러한 점이 광범위하게 공감되면서 분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대법관 취임식에서 노 동문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겪는 어려움과 품은 소망을 법의 언어로 읽어내기 위해 ‘법’에 대한 성찰과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며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논증의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내 판결하는 마음의 용기를 끝까지 간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본지는 취임을 맞아 노정희 대법관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노정희 동문 제공=본인
노정희 동문 제공=본인

-여성으로서 역대 일곱 번째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소감이 어떤가.

질문을 받고 문득 역대 대법관의 수가 궁금해졌다. 대법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현 대법관을 포함해 150명에 가까운 대법관들이 있다. 그 중 일곱 번째 여성 대법관이니 아직도 극소수다. ‘여성 대법관으로서 몇 번째’라는 것을 셀 필요도, 셀 수도 없는 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성, 그리고 여성법관, 여성변호사로 살아오면서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는 사회를 위한 시대적·사회적 역할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대법관에 임명됨으로써 그 책임감이 더욱 무거워졌음을 느끼고 있는 바다.

-28년 동안 여성 및 아동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법원 내 젠더법연구회 회장을 맡았고 개혁적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기도 하다. 페미니즘과 성차별 해소라는 시대적 부름에 부합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여성 인권이 암흑이었던 당시 어떻게 시대에 앞서나가는 판결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판사 생활을 시작한 지 6년차에 소년재판을 담당했을 때다. 어느 날 경찰관이 사무실로 촉법소년인 소녀 한 명을 데려왔다. 당시 열두 살이었던 어린 소녀는 노숙할 때 쓰던 더러운 담요를 품에 안은 채였다. 잡혀 오게 된 사안이 가벼워서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갑자기 책상을 붙들고 집에 가지 않겠다고 소리를 지르던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여러 차례 맞아왔고, 자다가 머리채를 잡혀 가위로 머리카락이 잘린 적도 있었단다.

2~3년 후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만난 한 여성도 떠오른다. 더 마를 수 없을 만큼 마른 중·노년의 여성이었다. 수십 년간 남편의 심한 폭력에 시달리다가 아들과 함께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구치소로 접견을 가면 오랜 가정폭력의 피해로 심신이 피폐해진 피고인은 자신이 결국 남편을, 그것도 아들을 연루시켜 죽였다는 죄책감과 후회로 줄곧 바닥에 꿇어앉아 무력한 내게 빌곤 했다. 황망하여 같이 바닥에 앉아 울면서 변론을 준비하던 기억이 난다.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전 대법관이 “후배들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결해보려는 노력을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크게 공감한다. 판사로서, 변호사로서 당사자들을 만나며 내 개인의 삶이 우리 사회 속 여성들의 삶과 결코  분리돼 있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이것이 부족하나마 지금껏 내가 여성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며 일을 해 올 수 있었던 동력이 돼주었다고 생각한다.

-판사로서 활동하던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판결은 무엇인가. 어떠한 연유에서 그러한 판결을 내렸는가.

‘장애인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사회복지법인의 임원 전원에 대한 해임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사건이 떠오른다. 임원들에게 성폭력범죄 예방, 가해자 분리를 포함한 피해회복조치 및 고발 등 중요한 의무가 있다는 관점에서 판결했다. 처음 성폭력사건이 드러났을 때부터 언론에도 보도돼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겼지만, 나 역시 시설 내에서 교사 등에 의해 심각한 성폭력이 장기간 지속돼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성폭력범죄가 법인의 임원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은 아니므로 임원 전원 해임처분이 정당한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점 등으로 인해 기억에 많이 남는 사건이다.

-최근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을 불법 촬영한 여성 가해자에게 법원이 징역 10개월을 선고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와 불신이 가득한 상황이다. 왜 지금껏 수많은 남성 불법촬영 가해자들은 묵인해왔냐는 것이 불신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세태에 노정희 동문은 어떻게 생각하며, 앞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타개해나갈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해당 상황분석에 동의한다. 최근 불법촬영문제 해결에 천착하고 있는 변호사로부터 불법촬영의 심각한 실태에 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우선 ‘몰카’라는, 행위의 성질을 모호하게 하는 용어부터 고쳐 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새로운 기술과 결합한 이 범죄에 관해 사법부가 제때 제대로 대처해오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불법촬영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불법촬영으로 인한 피해자의 고통에 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기술적인 문제와도 관련이 있으므로 전문성을 가지고 대처해나가는 것이 긴요하다고 본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불법촬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환기되고 문제해결을 위한 힘이 모아지기를 기대한다.   

-대법관 14석 중 4석이 여성으로 채워진 것은 사법 역사상 최다라고 한다. 조금씩 희망이 보이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여성으로서 법조계에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여성 법조인으로서 어떠한 현실적 장애물이 있어왔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말해달라.

극복이라기보다는 견뎌왔다거나 버텨왔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워서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전쟁 같은 생활이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여전한 측면이 있어서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판사로서의 업무를 함에 있어서는 여성이자 소수자로서의 입장에 치우쳐 공정성을 놓치는 게 아닐까 하는 자기반성, 경계를 오히려 많이 했던 것 같다. 2000년 시작된 여성법커뮤니티, 이후의 젠더법연구회를 함께 한 판사들과 이러한 고민과 애환을 나누고, 연구하고 연대하여 온 것이 극복이랄까, 버텨왔달까 한 데에 참으로 큰 힘이 된 것 같다.  

 -인사청문회 당시 최근 밝혀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그만큼 사법개혁이 현재 절실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법관으로서 어떠한 개혁 청사진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와 관련해서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인사청문회에서 말한 정도 외에 더 언급하기 어렵다. 사법개혁이 절실하다는 점에 대하여는 국민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고 나 또한 같은 생각이다. 다만 그 방향과 내용은 사법발전위원회나 추진단, 그리고 입법과정 등 전 절차에서 국민적으로 중지를 모아야 하는 사안이라고 본다. 물론 큰 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만 대법관으로서 개혁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듯하다. 대법관의 본무는 재판업무이므로 헌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된 재판, 공정한 판단을 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형편이 어려워 자취방이나 하숙집에 머무는 대신 고시반에서 열심히 공부했다는 일화가 일간지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본교에도 힘든 가정 형편 속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러한 후배들에게 어떠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가.

어리고 젊은 시절의 어려움이라 하여 다 지나간다고 가볍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애 전체를 보면 정말 젊은 시절의 어려움은 길지 않다. 추구하는 게 있으면 당당할 수 있다. 또한 마음을 열고 주위를 둘러보면 관심과 애정을 가진 이웃들이 있고, 반드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산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정희 동문에게 이화여대란 어떤 존재인가

늘 다시 기본을 돌아보게 하는 존재! 진부한 말이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대학시절의 선생님, 동문, 캠퍼스, 그 시간들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모색과 연대의 느낌, 사랑과 진정성의 가치를 알게 해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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