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소리 가이드 러너, 양재림 알파인 스키 선수

▲ 평창패럴림픽에서 자매 같은 호흡을 보여준 고운소리 가이드 러너(왼쪽)와 시각장애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 양재림 선수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함께했던 지난 3년 동안 패럴림픽만 바라보고 달려왔던 그들이 무사히 활주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바로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평창패럴림픽) 시각장애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 양재림(동양화·16년졸) 선수와 그의 파트너 고운소리(체육·14) 가이드 러너. 이들은 공교롭게도 스키뿐 아니라 ‘이화’라는 연결고리로도 이어져 있다. 패럴림픽 그리고 이화와 공존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3월23일 학교 정문 앞 한 카페에서 그들을 만났다.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봤던 경기 속 진지했던 모습과 달리, 그들의 얼굴엔 꽃샘추위도 녹일 만큼의 따뜻한 미소가 가득했다. “학업과 스키를 병행하느라 학교를 7년 정도 다녔어요. 오래 다녀서 그런지 지하철에서 내려서 정문까지 오는 데 몇 분이 걸리는지 알 정도예요. 오늘도 학교 다닐 때로 돌아간 듯 자연스럽게 왔네요.” 양씨는 졸업 후 처음으로 학교를 찾았지만 학교가 전혀 낯설지 않다.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고씨도 캠퍼스를 둘러보며 반가움을 표했다.

  양씨는 이번 패럴림픽에서 슈퍼대회전, 슈퍼복합, 대회전, 회전 종목 등 4개 종목에 출전했다. 그는 회전에서 7위, 슈퍼대회전과 대회전에서 9위를 기록했다. 슈퍼복합은 1차 시기에 기문(회전 경기에서 선수가 통과해야 하는 문)을 통과하지 못하며 실격하는 아쉬움을 낳았다.

  메달 순위권에 들지 못한 것도 아쉽지만 양씨는 자신이 목표한 만큼 연습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예기치 못한 무릎 부상으로 2016년 1월부터 10개월간 재활 치료에 전념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들만큼 눈밭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훈련을 많이 했으면 결과가 어땠을까’란 생각도 했어요. 그래도 재활하면서 좋은 컨디션을 만들어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1976년 스웨덴 웨른셸스비크 동계패럴림픽 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장애인 알파인스키는 장애 유형에 따라 시각장애, 입식, 좌식 경기로 분류된다. 그중 양씨가 출전한 시각장애 부문은 시각장애인 선수가 무선 헤드셋을 통해 가이드 러너로부터 코스 방향을 안내받아 비탈길을 내려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이드 러너는 측면에서 먼저 출발해 선수가 신호에 따라 속도와 움직임을 결정할 수 있게 돕는다.

  이들은 2015년 여름, 양재림 선수의 가이드 러너 모집공고를 통해 처음 만났다. 양씨는 2012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간 여러 가이드와 호흡을 맞춰왔지만, 가족처럼 친해진 가이드는 고운소리씨가 처음이다. 다른 지원자들과 달리 가이드 러너 경험은 없었지만 고씨의 성격이 양씨의 마음을 끌었다. 고씨는 6살 때부터 스키를 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2015년 여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계속해서 국가대표 상비군에 머물러 있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선수 생활을 접고 가이드 러너의 길을 택한 것은 양씨의 소치 패럴림픽 경기 영상을 보고 나서다.

  양재림 선수는 혼자가 아닌 둘이 경기에 참여하는 종목의 특성상 가이드 러너와 선수의 호흡이 경기력의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그는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가이드로서의 경력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자주 만나고 친해지는 게 중요했죠. 같은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훈련이 없을 때도 자주 만나며 친해졌어요.”

  그들의 돈독한 관계에 ‘이화’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양씨는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스키 선수 생활을 병행하고 있었기에 고운소리씨의 전공인 체육과학부 수업도 자주 들었다. 두 사람은 양씨의 졸업 전 마지막 학기에 우연히 같은 수업을 듣기도 했다.

  사실상 그들의 마지막 패럴림픽인 평창패럴림픽은 단순한 경기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고씨는 양씨와 함께했던 3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고 말한다. “서로 마지막인 것을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더 애착이 가기도 했지만 조바심을 느낄 때도 있었죠. 경기 후 미디어 존에 가자마자 재림 언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떠오르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양씨는 경기 한 달 전부터 마지막을 위한 마음을 정리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보통은 시원섭섭하다고들 얘기하는데, 마지막 시합에서 모든 걸 다 보여주지 못해서 그런지 시원하진 않고 섭섭한 마음이 커요.”

  1년 365일 중 300일, 24시간을 붙어있던 그들은 주위에서도 ‘친자매’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두 사람은 이제 이 말이 익숙하다는 표정이다. 특히 고씨는 친오빠보다 양씨가 더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에게 언니와 있던 일을 얘기하면 꼭 자기들 이야기 같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지금은 한 명이 씻고 있을 때 다른 한 명이 들어와 용변을 볼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어요.(웃음)”

  마냥 즐거워 보이는 그들도 가끔은 의견충돌로 다투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과 다툼이 있으면 고씨는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하고 화해해야 하지만 양씨는 시간을 가진 후 오해를 푸는 성격이다. 서로 성격이 다른 것을 알았기에 의견이 맞지 않을 땐 상대방 성격을 되새기며 이해하려 노력했다. 또, 서로의 생각이 정리된 후에는 대화를 통해 각자의 감정을 나누는 과정을 꼭 거쳤다. 친한 사이에서 싸우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고 말하는 그들은 싸우는 동안에도 미운 정이 쌓여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평창패럴림픽 후 함께하는 인터뷰는 본지가 처음이라는 두 사람에게 그간 서로에게 하고 싶던 말을 물었다. 바라만 봐도 눈물이 고이는 그들은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이 가득한 듯했다. 양씨는 자신의 경기를 위해 긴 시간을 함께해 준 고씨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꿈 많고 친구들과 한창 재밌게 놀 시기인 20대 초반을 포기해가며 제 꿈만을 위해 같이 스키를 타준 게 고마워요. 고운소리 가이드 러너는 메달보다 더 값진, 평생 함께 지내고 싶은 사람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고씨는 양씨와의 만남 후 자신이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자신의 삶 속 핵심인물이라는 양씨를 만난 후 주위로부터 어른스러워졌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인생과 꿈에 대한 생각이 뚜렷해졌다. “어쩌면 평생 경험하지 못할 패럴림픽을 경험하게 해 준 언니에게 정말 감사해요. 비장애인도 내려오기 힘든 코스를, 매번 무서워하면서도 열심히 하는 언니의 모습을 보고 많은 걸 배웠어요. ‘왜 언니처럼 열심히 살지 못했나’라는 반성을 많이 했죠. 또, 언니와 생활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며 대화하는 법을 익혔어요.”

  양씨는 이번 패럴림픽을 통해 장애인 스포츠가 많이 홍보됐지만 이 열기가 곧 식어버릴까 걱정이다.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등 인기종목도 좋지만 비인기 종목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앞으로도 그들의 동행을 볼 수 있을까. 두 사람에게 구상 중인 미래 계획을 묻자 양씨는 약 8년을 스키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당분간은 편히 쉬고 싶다고 대답했다. 한동안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거나 복잡한 고민을 하기보단 휴식을 가질 예정이다.

  고씨는 2018학년도 2학기 복학 전에 스포츠 외의 다른 분야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평창패럴림픽, 양씨와의 만남과 가이드 러너로서의 활동은 그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장애인 복지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기를 통해 많은 걸 깨달았죠. 시각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들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