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심의위원회, 학교 본부로부터 독립 절실

▲ 이유진 기자 @youuuuuz@ewhain.net

  교내 미투 운동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고 장기적 변화로 이어지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특히 대학 내 성범죄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수직적인 위계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력형 성범죄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피해자를 확실히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과연 본교 상황은 어떨까.  본지는 본교의 ‘성희롱 등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에서 개선·보완할 점은 무엇인지 젠더법학연구소 정현미 소장, 한국성폭력상담소 김신아 활동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김인희 전문위원에게 자문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성희롱 관련 규정 등을 분석하는 시리즈를 2주간 연재한다.

  미투 고발이 잇따르면서 피해자 보호, 가해자 처벌을 위한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제50대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는 28일 학생총회를 소집하며 ‘교수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안 채택의 건’을 안건으로 내세웠다.

  상세 내용은 ▲사건 고발 시점부터 가해지목인과 피해호소인의 공간 분리 의무화 ▲피해자의 교육 및 진로 측면에서 2차 피해 예방 ▲교원징계위원회에 학생위원 1인 이상 위촉 등이다.

 

  △ 2차 피해 막기 위해 구체적 방안 마련해야

  실제로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등의 문제는 2차 피해 예방이 필수적이다. 후속 피해를 막기 위해선 가해자와 피해자를 조사 단계에서부터 공간적으로 분리하고, 가해자가 피해자의 진로·학업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 학교 차원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본교 성희롱 등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 8조 3항은 ‘위원회의 위원장은 조사가 개시되는 경우 피신고인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에게 접촉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물리적인 공간 분리를 명확히 지칭하고 있지는 않다.   

  젠더법학연구소 정현미 소장은 “성희롱 관련 사건에서는 공간 분리가 기본적 규칙이기 때문에 지금도 암묵적으로 반영하고는 있지만, 규정에도 최대한 명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또 “통상적으로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를 해명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연락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피해자에게 큰 정신적 피해를 준다”며 “조사 단계에서부터 가해지목인이 피해호소인과 접촉할 수 없도록 하는 8조 3항이 적극적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의 경우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임시조치 제도가 인권센터 규정에 명시돼 있다. 18조 2호에 따르면, 인권침해 등 피해가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센터장 직권으로 피신고인(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주거, 사무실, 연구실, 강의실 등의 적법한 점유공간으로부터 퇴거, 격리 등 공간 분리 조치’가 이행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인권센터가 정식으로 조사를 개시하는 동시에, 피해자 및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에게 공문으로 임시조치 명령을 공지하고 있다.

  인권센터에서 내리는 결정문(사건에 대한 결정결과를 통보하는 내용의 문서)에도 공간분리에 관한 권고 사항이 포함된다. 가해자가 어떤 건물의 어떤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지, 또는 어떤 공간을 피해야 하는지 등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제한하고, 피해자와 만났을 때는 먼저 자리를 떠야 한다는 등의 자세한 내용을 지시하는 식으로 작성된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지도교수인 경우 등 피해자의 진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태에 있다면 추가적인 조치가 가능하다. 인권센터 규정 32조가 ‘사건이 있었던 해당 부서의 장에게 구제조치 개선을 권고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 만큼, 학과 차원에서 지도교수 변경을 조치하게끔 센터 측이 권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또한, 피해자에게 학과 차원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라고 판단될 때는 학과장이 해당 학생의 보호를 졸업 시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선언적인 문구를 결정문에 명시하고 있다. 당사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것을 주변 환경에 권고할 수 있는 권한을 센터에 부여한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신아 활동가는 “교수와 학생의 관계에서는 학생의 학점이나 진로, 조교의 경우 생계의 문제까지도 교수에게 권한이 부여된 경우가 많다”며 “모든 방면에서 피해자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학교가 책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교원이 속한 부서의 책임자가 가해자의 보복 조치가 일어나지 않게 감시하는 등 적극적인 사후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변 학우와 동료 조교 등으로부터의 2차 가해를 막을 수 있도록 관련 워크숍 등의 소그룹 활동을 실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인들이 피해에 대한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피해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등 집단 내 소규모 활동을 하면 좋을 것 같다”며 “성폭력과 그에 잇따르는 피해를 막기 위해선 학생과 교수가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인권 침해라는 문제와 함께 생각해 규칙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 독립성 찾기 위해 성희롱심의위원회 구조 개편해야

  전문가들은 본교 성희롱심의위원회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본교 규정에 따르면 성희롱심의위원회는 교무처장, 총무처장, 학생처장, 양성평등센터소장과 총장이 지정하는 3인 이상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교무처장이 위원장을 맡는다. 또 피해자가 직원이나 학생일 때는 직원위원이나 학생위원을 추가로 위촉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김인희 전문위원은 “성희롱심의위원회의 과반수를 보직교수가 차지하고 있는 만큼, 위원회와. 학교본부의 관계가 너무 깊은 것 같다”며 “사건의 조사를 진행하는 양성평등센터가 학생처에 속한 기관인 만큼 교수 사건을 공정하게 다룰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고 본교 양성평등센터와 성희롱심의위원회의 독립성을 지적했다. 

  정 소장도 “성희롱심의위원회의 구성에 교수들이 주를 이룰 경우, 가해자와 나잇대나 업무가 비슷해 감정이입과 공감이. 쉬운 만큼 학생 피해자에게 불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또한 피해자가 학생일 경우 성희롱심의위원회 구성 규정에 학생위원을 반드시 추가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규정에 의하면 학생위원을 굳이 포함하지 않더라도 위원회가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공개로 진행되는 성범죄 사건 조사의 경우, 학생위원의 필수 참여가 규정상 명시돼 있지 않다면 학생들로서는 해당 사건의 발생 사실과 조사과정 등에 대해 전혀 모른 채 넘어갈 수도 있다.

  서울대의 경우 사건 발생 때마다 성희롱심의위원회가 각기 다른 위원들로 구성된다. 학교 본부로부터는 완전히 독립돼 있다. 위원들은 상담소장이 위촉하는 3~9명으로 꾸려지며,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외하면 유동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

  인권센터 측의 설명에 따르면 교수에 의한 성범죄 사건 발생 시 심의위원으로 참여하는 교수는 가해자 교수의 학연, 지연 등을 철저히 고려해 가해자와 관계 없는 사람들로 위촉된다.

  학교 본부는 인권센터의 조사과정에 관여할 수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다. 김 전문위원은 “다만 이런 방법으로 위원회를 구성할 경우, 위원을 선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위원회 구성부터 징계까지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단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본교 중운위는 교원징계위원회에도 학생위원을 추가 위촉할 것을 안건에 포함했다. 성희롱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에 따라 가해자의 행위가 성희롱 등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교원징계위원회에서 징계 여부와 수위 등을 결정하게 되는데, 학생들이 진상조사뿐 아니라 징계의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안건의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김 활동가는 “징계를 판단하는 위치의 사람이 다양한 처지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이는 전문성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며 “교수의 문제라서 교수가 판단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다양성, 전문성, 공정성을 고려했을 때 누가 개입할 수 있는지에 관련된 문제이기에, 학생들이 꼭 참여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 전문위원은 “성희롱심의위원회가 사실상 주요 보직교수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이들이 권고한 징계 조치가 징계위원회에서 바뀌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구조에서는 징계위에 학생이 투입된다고 해서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며 안건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 성희롱 관련 사건, 징계의결기한 축소해야

  중운위 측이 마련한 학생총회 안건에는 교원징계의결기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교원인사규정 52조에 따르면 징계위원회가 징계의결의 요구를 받은 때엔 그 요구서를 접수한 날부터 60일 이내에 징계에 관한 의결을 해야 한다.

  다만, 부득이한 사유가 있을 때는 징계위원회의 의결로 30일의 범위 안에서 1차에 한해 그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 즉, 연장 가능한 기한까지 합하면 정직·해임·파면 등 가해자의 징계 조치가 최종적으로 이행되기까지 최대 90일의 기한이 주어지는 셈이다. 

  정 소장은 “성희롱 같은 경우에는 의결기한이 길어선 안 되는 특수한 사항”이라며 “결정을 최대한 빨리 내리는 것이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학교 같은 경우 조직이 크고, 겸직하는 교수도 많기 때문에 일을 빨리 처리하겠다는 인식이 없는 편”이라며 “관련 사안이 워낙 다양해 적당한 기한을 제시하긴 어렵지만, 90일은 너무 길다”고 규정의 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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