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록 공개는 의견 갈려  “피해자 의사 중시, 무차별적 공개는 지양”

▲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조형예술대학과 음악대학의 미투(#MeToo) 고발을 다루는 성희롱심의위원회는 ‘성희롱 등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에 명시된 절차에 따라 사건을 처리한다. 이에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방향으로 규정이 수정·보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본지는 본교 ‘성희롱 등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을 분석해 수정이나 개설이 필요한 조항 등을 알아봤다. 젠더법학연구소 정현미 소장, 한국성폭력상담소 김신아 활동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김인희 전문위원에게 자문했다.

 

피해자 회복 조치, 규정으로 명시해야

  현재 본교 성희롱 등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에는 징계 조치 등 가해자 처벌에 대한 내용은 명시돼 있지만, 피해자의 회복 조치에 관한 조항은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임시 조치, 보호 조항, 의료적 구제에 관련된 조항 또한 미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양성평등센터 박미숙 연구원은 “피해자에 대한 심리·의료·법률적 조치는 조항에는 명시돼 있지 않아도 센터 내에서 피해자에 따라 지원하는 사안”이라며 “규정에 세부적인 부분까지 명시할 경우 오히려 지원에 제한이 생길 수 있어 고민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무에서 보호·구제 조치를 더욱 용이하게 이행하기 위한 취지로 규정을 명시하는 것이라면 고심해 볼 만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인권센터 규정 8조 1항은 성희롱·성폭력상담소의 기능으로 피해자의 심리적, 법적, 의료적 구제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결정문(사건에 대한 결정 결과를 통보하는 내용의 문서)에서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심리 상담 비용을 물게 하는 등 피해자의 구제 조치를 위한 법적 근거로 쓰인다.

  서울대 인권센터 김인희 전문위원은 “사건의 인지와 동시에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선언적인 규정이 명시돼  있으면 법적 근거로 인정받을 수 있어 실무 조치를 이행하는 당사자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라며 피해자의 회복과 보호조치를 규정에 명시할 것을 제안했다.

 

문제 상황 빠르게 해결하기 위한 중재 조항 필요해

  사건 당사자 간의 중재를 규정하는 조항이 보완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중재는 징계 요청까지는 넘어가지 않되, 빠르게 문제 상황을 조정하기 위한 제도다. 성희롱과 같은 사건의 경우, 2차 피해를 막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앞당겨질수록 피해자의 부담을 덜 수 있어 중재로 이어지는 건이 많다.

  본교 규정 8조 7항은 사건의 심의·의결 이전에 사건의 중재가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지만, 중재의 절차나 요건 등 세부사항은 정해져 있지 않다.

  박 연구원은 “본교에서도 피해자가 원하는 경우 중재 과정을 거치고 있다”며 “중재의 조건으로 결정된 조치를 가해자가 이행하지 않으면 성희롱심의위원회에 회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성평등센터에서는 가해자의 시정 조치 이행 여부를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있다. 가해자가 상담 교육을 지시받은 경우, 교육 이수 여부를 확인한다. 수업 중 다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행해진 성희롱 발언 등은 연구원이 수업에 간헐적으로 참여해 확인하거나, 녹화가 가능한 강의실로 수업 장소를 변경한다. 가해자가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사건이라면, 피해 당사자에게 가해자의 조치 이행 여부를 직접 묻는 방식으로 확인한다.

  서울대는 인권센터 규정 29조와 30조에 따라 양측 당사자의 협의로 피해 회복 방안을 마련하고, 조정에 임하도록 조처하고 있다. 엄밀한 사건 조사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양측이 서로의 진술과 상황을 인정하면, 각 피해자에게 맞는 회복 조치를 거쳐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서약을 한다.

  이 과정에서 쓰이는 서약서는 인권센터 측이 작성한다. 중재에 임하는 당사자들이 내용을 확인하고, 양측이 서약서에 명시된 조치의 수위에 만족하면 서약이 진행된다. 서약서에는 인권센터의 구제조치 조항에 근거해 징계를 제외한 조처를 내릴 수 있다. 지도 교수 교체 등이 그 예다.

  가해자가 교수인 경우, 감시가 가능한 학장이나 선배 교수를 동석한 채 가해자에게 서약한 내용을 소리 내 읽게 하는 절차를 가지기도 한다. 이때, 감독의 역할을 맡은 교수도 함께 서약 단계에 참여한다.

 

성희롱심의위원회의 회의록 공개 여부, 피해자 우선으로 두고 논의 이뤄져야

  제50대 중앙운영위원회는 28일 열린 학생총회 요구안에서 ‘성희롱심의위원회의 투명한 운영을 보장해야 한다’며 회의록의 공개를 예로 들었다. 이에 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본교는 ‘위원회의 회의는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6조 8항에 따라 회의록과 회의 결과 모두를 비공개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성희롱심의위원회는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원칙이며,  기본적으로 모든 처리과정에서 비밀보장을 전제로 피해자가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회의록 공개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정에 명시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사례를 통한 성희롱에 대한 이해교육이나 양성평등센터의 일 처리 과정에 대한 안내 차원에서 사건 당사자들의 동의가 이루어진다면, 해당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는 선에서  성희롱 처리와 관련한 사례집을 제작해 보는 것은 고민해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현미 젠더법학연구소장은 “회의록의 공개 여부는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각 상황에 맞게 철저히 피해자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의무적으로 이행해야하는 일반 규정으로 두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피해자의 의사를 중시하는 동시에, 가해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희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학교에서 가해자에게 어떤 징계를 부과했는지 등의 내용을 익명으로 공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인권 침해 등의 문제를 고려해 피해자나 가해자가 드러나지는 않는 선에서 사건 유형과 그에 대한 조치 정도는 알리도록 학생 측에서 건의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신아 활동가는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며 공론화가 된 상황에 한해 진행 상황을 공개하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스스로가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한 상태에서 사건이 처리되는 경과를 미리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김 활동가는 회의록 공개를 규정에 포함하는 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피해자의 결정을 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에 회의록이 공개를 의무화 하기보다 사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규정 36조 비밀 유지조항에 따라 사건의 경과를 일반 학생에게는 공개하지 않는다. 김 전문위원은 이에 “사건에 대해 잘못된 소문이 난 경우 등 피해자들이 공개를 원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외부에 무차별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지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대에서는 결정문을 직접적으로는 공개하지 않되, 연 단위나 시기별로 사건 당사자를 추정할 수 없도록 각색해 추상화한 상태에서 판단 기준만을 공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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