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취직 늦는다고 걱정 말아요 사람마다 가는 길도, 속도도 다르니까요”
“졸업‧취직 늦는다고 걱정 말아요 사람마다 가는 길도, 속도도 다르니까요”
  • 이수빈 기자
  • 승인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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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 된 작가 이지선씨
▲ 한동대학교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이지선 동문 이화선 기자 lskdjfg41902@ewhain.net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18년 전 대학생 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로 신체의 55%에 3도 화상을 입었던 이지선(유교‧01졸)씨가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3년 뒤 그는 사고의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책 「지선아 사랑해」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2017년에는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임용돼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이씨는 지난 2월 말 본교 학위수여식에 초청돼 졸업생들에게 축사를 전하기도 했다.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심어린 축사는 많은 후배들에게 감동을 줬다. 그는 “사고 때문에 정작 내 졸업식엔 참석하지 못했는데, 17년 뒤 모교 졸업식에 연사로 서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본지는 이씨를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만났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부, 명예 등 눈에 보이는 가치들만 추구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사고를 겪으면서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어요. 정말 소중한 것은 사랑, 소망, 희망,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죠. 신앙일 수도 있고요. 학생들은 저처럼 아픈 과정을 겪지 않고도 이를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여느 평범한 이화인처럼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이씨는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수술만 약 30차례. 수술 과정에서 8개의 손가락을 한 마디씩 절단해야만 했다.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2004년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재활상담학 석사,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에서는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장장 12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그는 2016년 귀국했다.

  사고 후유증으로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 때 그를 일으킨 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었다. “제가 겪은 사랑은 곧 ‘나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었어요. 정말 살고 싶지 않고 살 이유도 없다고 느끼는 절망 가운데, 그런 나를 다시 살게 하는 힘이요.”

  유학 생활은 쉽지 않았다. 인턴십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체력적 한계에도 부딪혔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공부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사고를 통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세상을 알게 됐어요. 그곳에는 아무리 목소리를 내려고 해도 그러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조차 않는 경우가 많았죠. 저는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일어섰지만,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장애인들을 돕고 그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이 고민들의 답을 찾기 위해 공부를 멈출 수 없었어요.”

  지금 이씨는 교수가 됐지만, 여전히 공부를 시작하며 마음먹었던 바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교수의 자리에서 연구자로서, 한국 사회를 사는 한 일원으로서 처음 공부를 시작한 목적대로 살기를 희망한다.

  이씨가 본격적으로 강의를 맡은 건 작년 2학기부터다. 교육학을 배웠음에도 혼자 아는 것과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은 대개 수업을 통해 큰 그림을 그리길 원하지만 저는 종종 수업의 방향을 잃어 그림을 그릴 수조차 없다”며 웃었다. “때때로 부담감에 강의를 나가기 전 ‘오늘 수업은 휴강을 할까?’ 고민할 정도예요.”

  이씨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새내기 교수의 수업을 들으며 같이 고생하고 따라와 준 학생들에게 너무 고마워요. 그래도 올해 수업 중 두 번째 하는 과목은 조금 성장했음을 느꼈어요. 강의는 저에게 계속되는 도전과 성장의 기회인 것이죠.” 

  그는 아직 자신을 좋은 스승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다만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스승이 되길 희망할 뿐이다. 이를 위해 그는 교수가 된 이후에도 전공 지식에 대한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수업 첫 시간에 나는 늘 배우는 교수라며 학생들에게 서로를 가르치고 성장하자는 이야길 해요.”

  그는 이화의 후배들에게도 응원의 말을 전했다. “저는 사고가 난 뒤 치료를 받느라 늦어지고, 전공도 유아교육에서 재활상담으로, 재활상담에서 사회복지로 바꾸느라 늦어졌어요. 휴학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 늦은 졸업과 취직으로 걱정을 하는 사람들 모두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자신의 길이 다르고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