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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 문제 해결위해 구조부터 겨냥해야" 연출가 구자혜씨의 눈에 비친 사회의 민낯
'가해자 탐구_부록:사과문작성가이드' 연출가 구자혜 동문 인터뷰
2017년 05월 08일 (월) 유현빈 기자 heybini@ewhain.net
   
 
  ▲ 예술계 내 성폭력을 소재로 한 연극 '가해자 탐구_부록:사과문작성가이드'의 연출가 구자혜씨 이명진 기자myungjinlee@ewhain.net  
 

  작년 가을, 예술계에 만연했던 성폭력 사건들이 수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SNS에서는 #예술계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수많은 피해자의 폭로가 이어졌다. 문학계, 무용계, 미술계를 포함한 대부분 영역에서 성범죄 사실이 거론됐다. 하지만 연극계에서만은 피해 사례가 드러나지 않았다.

  성폭력 문제에 침묵하던 연극계의 정적을 깨고 이 문제를 다룬 첫 연극이 4월21일~4월30일 무대에 올랐다. 구자혜(국문·06년졸)씨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작성가이드’다. 4월29일 남산예술센터에서 사회적 문제의 본질을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연출가 구씨를 만나봤다.

  이 공연은 예술계 내 성폭력 사건들이 위계에 의해 묵인돼 왔다는 점에 집중한다. 예술계 내 성폭력이 묵인돼온 이유를 예술계의 특수한 권력구조에서 찾은 것이다. 그 구조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 구씨는 연극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가해자의 주변 인물만을 등장시켰다.

  작품에는 가해자의 주변인들이 각각 ‘일러두기, 대전제, 추천사’ 등의 책의 요소로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대사를 주고받지 않고 가해자의 성폭력에 대한 입장을 독백으로 밝힌다. 가해자의 잘못을 논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책은 점점 그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연극이 주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성폭력이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성폭력을 덮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성폭력 사건의 거듭된 폭로로 예술인들이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어도, 정작 그 이슈가 겨냥한 예술인들은 큰 타격을 입지 않은 거죠. 그래서 저는 반대로 이번 연극에서 궁지에 몰린 가해자들이 세상의 반응과 정면 승부하는 상황을 설정해봤어요.”

  구씨는 집단이 가진 폭력성보다 집단의 허점을 노출시키는 데 집중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반복적으로 예술계를 ‘이 세계’라고 칭하며 가해에 대한 자신의 판단과 가해자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예술계 밖 세상과의 벽을 더욱 공고히 쌓아 올린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는 내내 강조해온 예술만의 특별함은 마지막 대사 속 ‘허상’이라는 말로 무너진다.

  구씨가 속한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은 사회적 이슈를 담은 연극을 주로 다룬다. 세월호에 관련된 연극도  매년 극장에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대학을 다니던 시절까지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는 일에 큰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연극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인간 존재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에 가까운 극을 주로 썼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며 ‘내가 속해있는 사회가 굉장히 불편하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연극을 주로 하는데, ‘이것이 아니면 지금 이 시점에서 또 어떤 얘기를 다룰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구씨가 사회적 이슈를 다룰 때 가장 많이 공을 들이는 부분은 그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 결정하는 절차다. 그는 문제를 논할 때 제대로 된 윤리적 기준을 갖추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연극을 제작하기 전 배우들과 함께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결정하는 시간을 가져요.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대사를 할 때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논의하죠. 무대에서 폭력적인 사건을 고발한다는 이유로 작업자들이 그 폭력의 주체가 되거나, 관객에게 그런 인상을 주면 안 되니까요.”

  구씨는 문제의 실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연극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조직의 부조리함을 낱낱이 드러내기 위해 권력구조를 구성하는 가해자 스스로 가해 사실을 말하게 했다. 문제의 본질에 파고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다. 자신이 몸담은 예술계를 폭로하는 일은 두렵지 않았다. 비판과 풍자의 대상에 자신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제가 속한 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용기가 있어서라기보다 꼭 필요한 얘기이기 때문이에요. 불편함은 우리가 속한 연극계를 비판한다는 데에서 오는 게 아니었죠. 저 자신도 어떤 면에서는 가해자이자 방관자라는 점이 부끄러웠어요.”

  구씨는 연극계 내의 성폭력에 대한 증언이 없는 이유로 연극의 특수성을 꼽았다. 위계적인 구조가 비교적 확연히 드러나는 연극계의 보수적 특성이 문제를 묵인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는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지속적인 교육과 문제의 공론화를 제시했다.

  “최근 남산예술극장이 최초로 배우와 스태프에게 성폭력예방교육을 시행했어요. ‘걷기왕’(2016)이라는 영화의 대본 앞에는 아예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매뉴얼이 적혀있다고 해요. 저는 연극계의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문제를 명확히 알려주는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성폭력 사건들을 공론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는 모든 사회적 문제들의 근원을 그 문제가 발생한 시스템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그 구조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폭력과 여성 배제는 사실 예술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어요. 그러니까 관객들이 이 문제를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문제로 확장해 이해해주길 바라요. 저는 제 개인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예술로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건강한 시각의 작업자로 기억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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