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악 석사 출신 강민영 변호사 인터뷰

▲ 음악인에서 법조인이 된 강민영 변호사 이명진 기자 myungjinlee@ewhain.net

  “지금 하는 일과 자신의 적성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정말 ‘내 일’을 찾기 위해선 새로운 길에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악인에서 변호사로 새로운 분야를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간 강민영(한국음악 석사·09년졸)씨를 3월29일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그의 법률 사무소에서 만났다.

  강씨는 어머니 지인의 권유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가야금을 배웠다. 그리고 국악 중·고등학교를 거쳐 학부 전공까지 가야금을 다뤘으나 대학원에서는 국악 이론을 공부했다. “저는 무대 공포증이 심해 악기를 전공하기에는 심리적 압박이 컸어요. 그래서 국악 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이론과 달리 악기는 실수를 만회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대학원에 진학한 강씨는 학문을 깊이 공부할수록 불안함을 느꼈다. 유적이나 유물만으로는 지금 하고 있는 연구의 방향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국악 이론을 전공하면 현재가 아니라 삼국·고려·조선시대와 같은 과거를 공부하잖아요. 논문을 쓰기 위해 과거를 연구하다 보니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목마름을 느꼈어요. 또 제가 하는 연구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면 얼마나 허무할까라는 불안감도 있었어요.”

  하지만 강씨는 논리정연하고 정답이 확실한 법학을 공부하며 답이 명확치 않은 국악 이론으로 인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 “당시 꿈이 국악 이론 교수였기 때문에 10년 동안 이론을 공부해야 했어요. 그래서 고민이 많았는데 우연찮게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친구들이 제 공부 스타일과 맞을 것 같다며 법 공부를 권해줬어요. 그 때 들었던 민법 강의가 너무 재밌어서 사법고시 준비를 시작하게 됐죠.”

  20년 동안 꾸준히 걸어왔던 국악인의 길에서 법조인의 길로 들어선 강씨는 ‘접는다’는 것에 대한 남들의 시선에 큰 두려움을 느꼈다. “‘쟤는 가야금 연주를 그만두고 이론을 공부하다가 이제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네.’ 제가 계속해서 하던 일을 그만 둔 것이 지금은 도전이라는 단어로 좋게 포장됐지만, 그 당시에는 제가 사법시험에 떨어졌을 때 주변에서 또 실패했다는 얘기를 할 것 같아 무서웠어요.”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고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강씨는 소속이 없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꼈다. “제가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 로스쿨이 다시 도입됐는데, 이미 국악 이론 박사과정 중이었기 때문에 로스쿨에 들어가지 않고 사법시험을 봤어요. 그런데 로스쿨은 졸업하면 학위가 남는 반면 사법시험은 합격하지 않으면 남는 게 없잖아요. 아무 소속이 없다는 것이 두려웠죠.”

  이전까지와 너무 다른 길에 헤맬 법도 했지만 한국음악을 공부했던 경험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 “국악 이론을 공부하면서 오랜 시간 책을 읽는 것이 익숙해졌고 가야금을 전공하면서 오래 듣는 것에도 익숙해졌는지 하루에 15시간씩 강의를 듣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또한 강씨가 국악인으로 지냈던 시간은  변호사 생활에 많은 영향을 줬다. “저는 많이 긴장하는 성격 때문에 공연이나 실기 시험에서 제대로 못했던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남들 앞에 서보고, 긴장하지 않으려고 노력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내면이 더 단단해지고 강해졌어요. 그래서 검사나 상대 변호사 앞에서도 떨리지 않는 것처럼 당당해 보이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던 것 같아요.”

  한편 연주자로서 감정에 호소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은 스스로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변호사로서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건 굉장히 행복한 일이에요. 그런데 제가 음악을 해서 그런지 감정이입을 많이 하는 편이라 상대방이 아파하면 저도 함께 힘들었어요. 그래도 이런 점 때문에 의뢰인들은 저를 더 편안하게 느끼고 좋아해 주기도 해요”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강씨에게는 새로운 결심이 생겼다. 국악을 전공했던 사람으로서 우리 문화를 알릴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내가 이 분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와 별개로 국악에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데 스스로 위축되고 가끔 피하고 싶기도 했어요. 또 동료 변호사나 사법연수원 동기들에게 가야금을 연주해달라고 부탁 받을 때도 있었어요. 물론 악기를 놓은 지 오래됐다고 거절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그건 제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한복을 입고 여성변호사협회와 사법연수원에서 침향무와 가야금 산조를 연주한 적도 있었죠.”

  강씨는 국악 이외에 다양한 경험을 쌓기도 했다. 강씨는 이런 경험이 자신의 진로 변경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학부생 때부터 이것저것 도전해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2000년에는 시드니 올림픽을 맞아 국악 응원단을 만들어 호주에서 3개월 동안 지냈었죠. 석사 과정을 하면서 방송작가도 했어요. 우연한 기회로 KBS FM ‘흥겨운 한마당’과 ‘국악한마당’의 구성작가로 8년간 일하기도 했죠. KBS 퀴즈 프로그램 1대100에 나가 최후의 1인으로 상금을 받은 적도 있어요.”

  늦게 시작했지만 좋아하는 일이라 행복하다는 강씨는 진로를 고민하는 이화인에게 도전하는 것을 추천했다. “일단 도전해보는 게 좋아요. 저는 가야금도 연주해보고 국악 이론도 공부 했잖아요? 다양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음악인보다 법조인이 저랑 잘 맞는다는 걸 알았어요. 만약 제가 처음부터 법대에 입학해 법조인이 됐다면 비교대상이 없어서 이게 정말 다른 직업보다 저랑 더 잘 맞는지 몰랐을 거예요. 그래서 비교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제가 남들보다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강씨는 늦게 시작한다는 두려움으로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지 못한 이화인에게 이렇게 전한다. “우리나라는 대학 입시 때 재수하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하지만 지나고 보면 이런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에요. 아마 여러분도 시간이 지나고 원하던 일을 하면 진로를 잘 바꿨다고 생각할거예요. 저는 도전해보고 후회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고 똑같은 고민만 하면 다른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을 버리는 거잖아요. 그래서 실패할 수도 있지만 일단 해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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