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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의 이상한 그림자 」中
2016년 05월 02일 (월) 장운경 기자 redsea7539@ewhain.net

 스탠바이, 녹화 1분 전.
 스태프와 출연진, 패널과 방청객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무영만 자신의 자리를 찾으면 프로그램은 시작되는 거였다. 무영의 자리는 어디일까. 무대로 나가서 빛을 쬐기만 하면 되는 걸까.
 스탠바이, 녹화 30초 전.
 이제, 진짜 저 문이 열린다.
 ‘하이, 큐!’ 총괄 책임자인 PD가 손짓을 하자 방청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흥행 보증수표로 유명한 일명 국민 MC가 활기차게 뛰어나온다.
 “당신의 그림자를 찾아 드립니다! 꿈이 없는 젊은이들을 위한 초특급 갱생 프로젝트, ‘셰도우 메이커’! 오늘도 여러분께 제대로 빛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방청객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느라 곧 자지러질 판이다.
 “오늘은 게스트로 특별한 분들을 초대했습니다. 데뷔하자마자 ‘생방송 인기노래’에 3주 연속 1위를 휩쓸고 있어서, 괴물 신인이라고도 불리죠? 요즘 정말 대세인 신인 아이돌 그룹, ‘다크 셰도우’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방청객들은 ‘다크 셰도우’의 멤버들이 일어나 고개를 숙일 때마다 또 한번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철저히 앞에 있는 연출의 손짓에 달려있는 일이었다. 방청객들은 최선을 다하기 위해 손바닥에 닭똥 냄새가 나도록 박수를 쳤다.
 “그리고 ‘셰도우 메이커’의 일등 공신이죠? 그림자 전문 미녀 독설가, 구임자 선생님 모셨습니다. 어서오세요!”
 MC의 말에 맞춰 구임자는 최대한 우아하게 카메라를 향해 인사를 했다. 평소 그녀는 백조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활짝 웃되, 경박하게 웃지 않으려고 사실은 아까 그녀 전담 스타일리스트들을 전부 불러내 분장실에서 연습을 했던 참이었다. 발이 아플까봐 7cm 하이힐을 구해줬다가 욕만 먹었던 착하고 불쌍한 코디는 모니터에 비친 구임자의 미소를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
(중략)
 “아니, 그런데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을 ‘루저, 외톨이’라고 부르면 뒤에 계신 오늘의 주인공 기분이 좋지 않겠어요. 우리 주인공도 그림자가 없는 생활을 바꾸기 위해 용기내신 분일 텐데요.” MC가 걱정된 표정으로 다크 셰도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막 20대 초반에 접어든 그들은 아차, 싶은 표정을 순간 지었다. 어떻게 말해야 언론과 대중의 미움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사방에 요동치는 듯 했다.
 “아니죠, 저 친구들의 말이 맞아요.” 도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프로그램이 시작된 후에도 내내 침묵을 지키고 분위기를 지켜보고만 있던 구임자가 입을 뗐다.
 “그림자가 없으면 사실 루저, 외톨이인 게 맞잖아요? 사실이 그렇죠. 10대라 어리다면 이해해요. 아직 애들이니까, 너무 어려서 충분한 경험이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20대 중반을 넘어선 사람들이잖아요. 나이가 그렇게 들어섰는데도 희미한 그림자 하나 없는 사람들은 사회에 나올 진지한 고민조차 하지 않은 걸로 봐야죠. 게으름뱅이들 인거에요.”
 구임자가 어깨를 쭉 내려뜨리며, ‘안 봐도 뻔하다’는 투로 말했다. 꼬았던 다리를 풀고 상체를 앞으로 당겨 턱을 괴는 자세를 하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 같은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이 그나마 좀 부끄러움도 느끼고 경각심도 갖기 시작한 거지, 아마 이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그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살았을 걸요? 아직도 허황된 꿈속에서 살면서 결국 아무 것도 안하는, 그런 그림자도 없는 인간들은 한심하기 그지없어요. 초등학교부터 다시 배워야 해, 정말.”
 메인 작가는 구임자와 눈을 마주치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작가의 칭찬에 구임자는 왠지 모르게 등이 꼿꼿해짐을 느꼈다. 뭔가 더 자극적인 말을 하고 싶어졌다.
 “아마도 우리 구임자 선생님께서는 좋은 시간들을 그냥 허비해버리던 그림자가 없는 분들이 걱정이 되어서 하시는 말씀이겠죠?” 구임자가 한번 발동이 걸리면 주체를 못하고 독설을 쏟아내는 평소 행실을 알고 있었던 MC는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만 알아차릴 정도로 입가에 약간의 경련을 띄고 웃으며 정리하려했다.
 “맞아요.” 그때 또 구임자가 끼어들었다. MC의 눈썹 사이가 가늘게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정확하세요. 여러분, 제 그림자 좀 보세요. 얼마나 선명하고 예뻐요? 저도 지금 이렇게 까맣고 예쁜 그림자를 가지고 있지만 이게 그냥 생긴 건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도 아니에요. 20살 때 시험을 못 봐가지구, 아빠한테 엄청 혼나면서 강제로 미국으로 보내졌었는데, 그 때 얼마나 힘들고 외롭던ㅈ…….”
 이때 메인 작가가 콧구멍을 넓히며 황급히 손으로 엑스 자를 그려 보인다. ‘그건 안돼요! 그건 안돼요!’라며 다급한 입모양을 했다. 구임자가 금방 눈치를 채고 큼큼거렸다.
 “여튼 제 말은요, 그림자를 찾기 위해서는 충분히 아픈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림자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많이 도전하고 부딪히고 아프고 쓰리기도 해봐야죠. 저도 충분히 아픈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이렇게 그림자가 생긴 거구요. 그래서 그림자가 없는 사람들은 용기가 없다고 하는 거예요. 상처받기가 두려워서 과거로부터 단 한 발자국을 진보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니까요.”
 구임자가 팔짱을 끼고 새침하게 말한다. 작가는 PD쪽으로 돌아보며 양손으로 가위 표시를 했다. 편집해달라는 이야기다. 저런 이야기까지는 대본에 없었는데. 아휴, 저 사고덩어리. 대입에 실패해 도피 유학을 간 것이 인생 최대의 고난이었던 구임자의 이야기가 방송을 통해 퍼지면, ‘충분히 아파야 그림자가 생긴다’는, 한때 웹사이트를 흔들어 놓으며 ‘셰도우 메이커’라는 프로그램을 3주 연속 인기 검색어에 올려놓은 희대의 명언은 다른 이들의 공감을 받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인데, 저 온실 속 화초 하나 때문에 망쳐놓을 수는 없다. ‘그래, 사람의 고난은 상대적인거지’라고 생각하다가도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돈이 없어 생계를 위해 방송국 작가 노릇을 하며 더러운 꼴을 여럿 봐야했던 메인 작가는 왠지 구임자의 말에 왠지 눈을 흘겨 뜨게 되었다.
 ‘그래, 너 같은 공주님이 뭘 알겠니. 기껏해야 얼굴에 뭐 바르고 자기 분야에서 좀 있어 보이는 말을 할 줄이나 알지.’
 졸업을 하고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어 누구보다 멋지게 등단을 하고 싶었던 메인 작가의 꿈은 어느새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 어둡게 비틀려지고 있었다.
*
그림자  [그ː림자]
[명사]
1. (사물의 경우) 물체가 빛을 가려서 그 물체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
2. (사람의 경우) 과거의 자신의 경험이나 성과가 시간에 의해 퇴적되어 나타나는 검은 그늘.
3. 사람의 자취.
[유의어] 상23, 조영4, 불행
*
 “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림자의 사전적 정의는 과거의 자신이 했던 경험이나 성과가 시간이 흐르고 점점 쌓여 나타나는 검은 그늘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그동안의 삶을 열심히 살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면 더 짙고 아름다운 그림자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편집점을 위해 2초간 멘트를 멈췄던 MC가 웃는 표정으로 오프닝의 마무리 멘트를 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말이죠, 아직 그림자가 없으신 분들도 우리 사회 한 편엔 존재합니다. 그림자가 생겨야 할 나이가 훨씬 지났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저희 ‘셰도우 메이커’는요, 이렇게 그림자가 없는 삶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 그리고 더 나은 그림자를 만들고 싶으신 분들에게 훨씬 멋진 그림자를 선물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어떤 분일까요? ‘허무영’양을 함께 만나보시죠!”
 경쾌한 음악 소리.
 그리고 무영이 서있었던 세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무영이 있었던 어두운 곳까지 조명 빛이 가닿았다. 밝은 빛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먼지가 바닥으로 내려앉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빛은 무영의 작은 몸을 비추었다. 무영은 눈이 부셨다. 한참을 어둠 속에 있으며 대기했기 때문인지, 한꺼번에 밀려드는 밝은 빛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무영은 순간 당황스러웠다. 눈앞은 온통 환한 빛인데, 무영의 눈앞은 오히려 깜깜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그냥 앞으로 그냥 쭉 가면 되는 걸까, 아니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잠깐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걸까.
 무영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앞으로 나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혹시나 이번 기회로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조심스럽게 한 발을 앞으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음 발을 앞에 두었고, 그리고 그 다음 발을 앞에 두었다. 빛은 이제 완전히 무영을 감싼 모양이 되었다. 귓가엔 방청객들이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영은 멍한 기분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밝은 빛이었다. 대학에 들어와 제 또래들 가운데 무영만 그림자가 없는 것을 발견한 뒤에 줄곧 그늘만을 찾아다녔던 무영은 몇 년 만에 떳떳이 만나는 빛이 낯설었다.
 그것은 적나라했다. 그때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 저것 좀 봐.’, ‘역대급이다, 진짜 아무 것도 없어’와 같은. 무영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고, 사람들은 무영을 볼 수 있었다. 무영은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일방적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무영은 가볍게 무대를 한 바퀴 훑었다. 아니야, 그리 서보고 싶었던 무대 아닌가. 심호흡을 다시 한 번 크게 한 뒤, 무영을 위해 마련된 무대 한 가운데의 의자를 향해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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