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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웠던 '위안부' 실상에 빛을 밝힌 윤정옥 명예교수를 만나다
2016년 02월 29일 (월) 남미래 기자, 윤희진 기자 mirae1201@ewhain.net, hihijiji1995@ewhain.net
   
 
  ▲ 위안부 문제를 최초로 알린 본교 윤정옥 명예교수 사진=본인제공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초로 세상에 알리고 이를 위해 몸소 뛰어온 사람이 있다. 바로 본교 윤정옥 명예교수다. 윤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및 세계평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창단멤버다. 그는 아시아와 세계를 오가며 ‘위안부’들을 찾아 피해를 조사하고 1990년 <한겨레 신문>에 ‘위안부’ 취재기를 기고하기도 했다. 2월17일 그의 자택에서 만나 작년 12월28일에 있었던 ‘위안부’ 합의에 대해 물어보고, ‘위안부’ 문제를 앞장서 문제제기했던 당시의 상황에 관해 들어봤다.

  “일제강점기에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에 끌려간다는 소문을 듣고 강원도에 들어가 숨어살던 적이 있었어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앞장섰던 윤 교수지만 그 당시 어린 소녀들의 ‘위안부’ 공포를 함께 느꼈었다. 이화여자전문대학을 다녔던 윤 교수는 어느 날 일본군이 학교에 와서 지원서를 들이밀며 서명을 강요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그것을 ‘위안부’ 지원서라고 생각한 윤 교수는 다음날 자퇴서를 제출하고 해방 때까지 강원도에서 살았다. “그땐 지레 겁먹고 바로 자퇴서를 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위안부’ 지원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보통 ‘위안부’에 끌려간 사례들은 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혹은 식당에서 비공식적으로 암암리에 끌려갔거든요. 서류와 같은 증거자료를 남기지 않았던 거죠."

  윤 교수가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45년, 서울역 앞이었다. 그는 해방 이후 강제징용됐던 남성들은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또래 여자아이들은 귀국하지 않아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역 앞에서 그는 우연히 행인으로부터 ‘위안부’라는 단어를 처음 듣게 됐다. ‘위안부’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듣지 못했다. 이후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고, 하면 할수록 참혹한 ‘위안부’의 실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위안부’에 끌려간 아이들은 전쟁을 위한 광산이나 비행장 건설현장에서 일본군의 성(性)의 상대가 되어야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피해자 할머니를 찾아 만나고 증언하기를 설득하는 등 어떻게 하면 할머니들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윤 교수에 따르면 ‘위안부’ 문제는 1991년 최초 증언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말씀 이전에, 이미 일본 <아사히 신문>에 먼저 드러났다. ‘위안부’ 피해자인 배봉기 할머니에 대한 기사가 보도된 것이다. 그 작은 기사 한 편을 보고 윤 교수는 배씨가 사는 오키나와로 향했다. “배씨는 옥수수밭에 있는 곳간에서 살고 있었어요. 집에는 잡귀를 쫓는다는 마늘이 빼곡히 걸려있었죠. 독특했던 건, 굉장히 자주 씻었어요. 차를 끓이기 위해 주전자에 물 올리고 손을 씻고, 물 따르고 손을 씻고, 차를 타고 손을 씻었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한 시간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경계심이 많았고 자신이 ‘위안부’라는 사실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어요.”

  윤 교수는 배봉기 할머니에 관한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김학순 할머니가 공식증언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요즘에도 성폭행 피해자가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히기 어렵죠. 하물며 그 시절에는 할머니들의 피해증언을 얻기 더 어려웠어요. 직접 찾아가도 아예 만나기를 꺼리고 ‘위안부’라는 단어조차도 꺼내지 않았었죠. 그래도 배봉기 할머니의 최초증언이 이후 김학순 할머니 등 여러 할머니들의 증언을 이끌어낼 수 있었어요.”

  일본군은 패전 이후, 한국 ‘위안부’ 여성들을 중국, 대만 등에 버려둔 채 떠나기도 했다. 타국에 남겨진 몇몇 할머니들은 우연히 만난 한국인,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광복이 된지 2, 3년이 지나 고국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는 일본 패전 후 꿈에 그리던 고국의 땅을 밟으려했지만  당시 그의 생각에 순결을 잃은 몸으로 가족을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며 바다에 몸을 던진 사람이 있다고 해요.”

  윤 명예교수는 이번 한일 ‘위안부’ 협정에 대해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았기에 전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피해보상금이라는 10억 엔이 ‘위안부’ 할머니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의 정부기금으로 돌아가죠. 피해자들의 보상을 위한 협정인데, 피해 당사자들에게 일절 의견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협상이 문제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윤 명예교수는 대학생들에게  이번 협상으로 ‘위안부’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위안부’ 문제는 아직 현재진행형인 문제에요. 이번 협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아니죠.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선 청년세대들이 책을 많이 읽고 이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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