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날아라 박씨’의 컴퍼니매니저 이지나씨 김나영 기자 nayoung1405@ewhain.net


“여주씨 식권은?”
                     “여주씨 주차권은?”
“여주씨 회식은 언제해?”
                “여주씨! 여주씨! 여주씨!”
                …
  뮤지컬 ‘날아라 박씨!’에 나오는 주인공 오여주. 그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팀원의 요구에 지쳐 쓰러진다. 그의 직업은 뮤지컬 컴퍼니 매니저. 식사부터 주차권까지 공연의 모든 사소한 뒤처리는 그녀의 몫이다. ‘날아라 박씨!’는 언젠간 무대에 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일하는 주인공 오여주가 꿈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 뮤지컬이다.

  ‘날아라 박씨!’에 오여주가 있다면 극 밖 현장에는 이지나(한국음악·09)씨가 있다. ‘백스테이지의 멀티걸’이라고 불리는 그는 뮤지컬 ‘날아라 박씨!’의 컴퍼니 매니저다.

  이씨의 직책인 컴퍼니 매니저는 한마디로 공연팀의 살림꾼이다. 그는 배우와 감독, 작가 등 스태프 약 60명을 엄마처럼 돌본다. 스태프의 식사, 물품 구비, 지출 관리 등 사소한 잡무부터 배우관리, 홍보마케팅 등 무대 기획까지 이씨의 손을 거쳐야 비로소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다이어리와 휴대전화는 이씨의 손에서 단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다.

  “제 휴대전화는 매일 아침 일어나는 순간부터 울려대죠. 팀을 속속들이 다 챙겨야 하기 때문에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랄 지경이에요. “지나씨, 지나씨” 하고 부르는 소리에 달려가느라 한 숟가락 뜨기도 전에 밥이 다 식어버리는 건 다반사죠. 공연팀, 음향팀, 제작사 사이에서 각자가 요구하는 것들을 듣고 조정하는 것이 주 임무에요.”

  이러한 업무 특성상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급작스러운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그는 ‘빨래사건’과 ‘제본사건’을 가장 긴박했던 일로 꼽았다.

  “며칠 전 옷이 젖은 채로 배우가 무대에 올라갈 뻔한 일을 겨우 수습한 적이 있어요. 빨래한 공연 의상이 마르지 않아 축축하다는 걸 공연 직전에야 알고,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드라이기로 말렸죠. 새 대본이 일요일에 나와 신촌에서 용산까지 가서 겨우 문을 연 제본 집을 찾았던 적도 있어요. 할아버지 한 분이 혼자 수작업으로 제본 하시더군요. 저는 급해 죽겠는데 느긋하게 하나하나 제본하시는 할아버지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던 일도 참 아찔했네요.”

  이씨의 꿈은 한국의 공연예술 콘텐츠를 만들고 수출하는 ‘문화 외교관’이 되는 것이다. ‘이화문화기획단’, ‘기독교동아리CCC’ 전국 총 대표단 등에서 게릴라성 콘서트나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며 꿈을 키워온 그는, 작년 10월 지인의 소개로 ‘날아라 박씨!’ 팀에 합류했다.

  “일하기 앞서 공연계를 실제로 체험해보고 싶었어요. 공연 현장에서 스태프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현실을 체감하고 싶었죠. 컴퍼니 매니저라는 직업이 온갖 고된 일을 하는 역할이고 보수도 적어 사서 고생이란 생각도 들지만 겸손하게 차근차근 배운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사실은 난 서러웠었지/간절히 원하던건/늘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녹아갔어’

  뮤지컬 ‘날아라 박씨!’의 주제곡 ‘어제와 다른 세상’의 첫 소절이다. 이씨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그는 힘든 일에 치여 살던 중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무대 뒤에서 혼자 식권을 자르고 있는데 이 노래가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쳇바퀴 속을 도는 하루들’, ‘간절히 빌어도 남는건 차가운 거절’ 등 가사가 제 상황과 너무 똑같아 한참을 울었죠. 하지만 ‘난 살아있다, 살아있다’라는 노래의 끝소절처럼 이 일을 통해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두려움 없이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으로 버텼어요.”

  ‘‘이지나’라는 귀한 보배 덕분에 ‘날아라 박씨!’는 매일매일 기적의 일기를 써내려가고 있어요.’

  이씨가 힘들어 할 때 동료들이 보내준 메시지다. 힘들 때마다 다독여주는 동료들이 있어 이씨는 하루하루가 고되지만 행복하다. 오늘도 이씨의 휴대전화는 어김없이 울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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