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이지서베이가 실시한 '2010 직장인 이직 결산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6명이 이직을 결심했지만 실제로 이직에 성공한 사람은 10%에 불과하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원하는 직업을 얻는 데 성공한 이는 많지 않다. 본지는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도전해 진정으로 원하는 직업을 얻은 권민정씨와 양시정씨를 만나 그들의 도전기를 들어봤다.

통계학과 출신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권민정씨
“어느 곳이나 학문이 중요한 분야가 있고 실전이 중요한 분야가 있는 것 같아요. 실전이 중요한 분야에서 일한다면 자신이 전공과 그 분야가 관련 없다고 해서 주눅들지 말고 더 열심히 일하면 되죠.”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권민정(통계‧99년졸)씨는 자신의 일과 전공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웨딩드레스샵이 문을 닫는 월요일에도 웨딩드레스 제작에 여념이 없던 그를 19일(월) 그가 10년째 경영하는 웨딩드레스 샵 ‘로브드K’에서 만났다.

권씨는 어릴 때부터 옷을 좋아했지만 수학을 잘 해 통계학과에 입학했다.
 “5살 때 옷을 하루에도 3~4번씩 갈아입어서 똥깔롱(멋을 뜻하는 부산사투리) 부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또 드레스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드레스 입은 공주 그림을 여러 장씩 그리면 친구들이 예쁘다고 받아갔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에서는 자신의 적성을 알기가 어렵잖아요. 그냥 수학을 잘하니까 이과를 선택했고 그 중에서도 확률과 통계를 잘해서 통계학과에 입학했어요.”

하지만 통계 공부가 지루했던 권씨는 2학년 때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싶어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수학 중 확률과 통계를 가장 잘 했었지만 대학 때에는 졸업을 위해서만 통계학을 공부했어요. 의류학도 배워보고 싶었었지만 그 때는 복수전공이 막 도입되기 시작한 때라서 복수전공을 하는 것이 지금처럼 일반화되지 않았었죠. 그래서 제게 필요한 분야의 학원에 다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디자인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권씨는 낮에는 학교에서 통계학 수업을 듣고 밤에는 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처음엔 반대하던 부모님도 디자인에 열심인 권씨를 보고 권씨의 열정을 인정하게 됐다.
“일러스트학원, 디자인학원, 패션학원 등 제가 부족한 부분들을 가르쳐주는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어요. 시험기간에도 다른 친구들은 통계학 공부를 할 때 저는 밤새 미싱을 돌렸죠. 그런 저를 보자 부모님도 더 이상은 디자인 일이 힘들다고 말리지 못하셨죠.”

 권씨는 많은 종류의 옷들 중에서도 특별한 날 입어 세부 사항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웨딩드레스가 좋아 졸업 후 바로 웨딩드레스 샵에 취직했다. 그리고 웨딩드레스와 전혀 상관없는 통계학을 공부했다는 부담감에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샵에서 뽑은 대부분의 직원들은 웨딩드레스 디자인과 관련된 사람들이었죠. 아마 샵은 저를 신기해서 뽑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게 별 기대를 하지 않다가 제가 새벽1시에 퇴근해서 오전5시에 출근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자 웨딩드레스 제작에 관련한 일을 많이 줬죠. 저는 자존심이 세서 일을 못하는 것을 티내기 싫었어요. 일을 집에 가져가서 하기도 했죠. 잘하는 만큼 일을 더 받아서 힘들었지만 같은 시간에 배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는 ‘내가 신부라면 이렇게 입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드레스를 만들었다. 이것이 순수국내파인 그가 입소문만으로 많은 손님들을 끌 수 있었던 이유다.
“신부를 생각하다 보면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드레스를 떠올리게 돼요. ‘천일의 약속’에 나온 물망초 형상의 드레스도 수애에게는 청순한 드레스가 어울릴 것 같아서 디자인하게 됐죠.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작업해오다 보니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저도 모르게 신부의 마음에 들 수 있는 드레스를 만들 수 있게 됐어요.”

 권씨는 자신을 ‘복잡하지만 아주 단순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다른 것은 따지지 않고 달려들지만 그 일을 할 때에는 많은 것들을 꼼꼼하게 따져본다는 것이다.
 “손님은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부분까지도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완벽해질 때까지 작업해요. 하지만 이 일을 처음 선택했던 이유는 단순히 행복해질 것 같아서였죠. 이 일은 제가 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전공 등 다른 제약들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만든 웨딩드레스가 신부에게 잘 어울릴 때 내 적성과 이 일이 맞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감을 얻어요.”                                                   


정치외교학과 출신 재즈댄서 양시정씨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어요. 저녁에 재즈댄스 배우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신나는 순간이었죠. 청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때부터라도 재즈댄스에 전념하지 않으면 지나가버린 시간을 후회할 것 같아 과감히 퇴사를 결정했어요.”

17년 전, 외국계 대기업 입사 3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재즈댄스를 본격적으로 배우기로 결심했던 양시정(정외‧96년졸)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현재 안무가 겸 댄서로 활동 중인 그를 22일(목) 서울시 성동구 도선동에 위치한 무용학원 뮤즈센터에서 만났다.

양시정씨와 재즈댄스의 첫 만남은 그가 취미 겸 운동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찾던 문화센터 재즈댄스 수업에서 시작됐다. 그 후 양씨는 회사일보다 재즈댄스와 정열적인 사랑에 빠지게 됐다.
“차차 재즈라는 장르를 알게되면서 재즈에 빠져들었어요. 순수 무용과는 달리 재즈는 오랜 시간 쌓아온 기본기보다는 비트감, 표현력, 집중력 등 본인의 재능이 중요한 분야라서 매력적이었어요. 결국 재즈댄스 전문학원을 찾아서 다니기 시작했죠. 그렇게 3년 간 회사생활과 재즈댄스를 병행하다보니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하루 종일 춤을 추고 싶어서 회사에 있는 시간을 못 견디겠더라고요.”

결국 그는 재즈댄스를 배운 지 3년 만에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제 청춘이 길지 않으니 적성에 안 맞았던 회사에 열정 없이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죠. 어머니께는 IMF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서 회사를 그만둬야한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부모님은 마음 아파하셨죠. 그 후 재즈댄스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의 추천으로 뮤지컬 '하드락카페 2' 안무를 맡게 됐는데 그 때 공연장을 찾은 부모님께서 재즈댄서로서의 길을 응원하겠다고 하셨어요.”

재즈댄스를 본격적으로 배워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퇴사 일년 후 재즈댄스의 본고장인 뉴욕으로 떠났다.
“회사를 그만두고 낮에는 학원에서 춤을 배우고 밤에는 중․고등학교 보습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생활을 일 년 정도 했어요. 그러다 함께 춤을 배우던 사람들과 세계 최고의 재즈댄스 선생님들이 있는 뉴욕에 가기로 했죠. BDC(Broadway Dance Center)에서 6개월 동안 수업을 듣고 이듬해에는 BDC 강사들이 출장 수업오기도 하는 BDC 동경점에서 재즈댄스를 배웠어요.”

유학을 마친 후에도 그의 재즈댄스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세종대 공연예술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우석대 실용무용과, 서울 뮤지컬아카데미에서 강사로 활동했다. ‘서울국제모터쇼 Performance’ 등 여러 무대에서 쉴 새 없이 공연하고 안무를 만들었다. 재즈댄스에 대한 열정은 양씨가 만삭일 때에도 공연에 오르겠다고 할 정도로 불타올랐다.
“임신 7개월까지 학생들을 가르쳤죠. 9개월 때에는 서울시 주최 공연에서 제가 임산부 역으로 올랐어요. 생명탄생, 사랑, 죽음에 관한 공연이었는데 탄생파트에서 생명 잉태를 표현했어요. 아마 관람객들은 제가 진짜 임산부인지 몰랐을 거에요. 배는 불룩했지만 뱅글뱅글 돌며 춤췄거든요.”

그는 학창시절에도 춤을 굉장히 좋아했고 끼가 충만한 학생이었지만 재즈댄스를 접할 기회
가 없어 재즈댄스에 적성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중․고등학교 때에도 춤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전체응원단장도 했죠. 하지만 대학교는 당연히 공부해서 가야하는 곳이고, 춤과 관련된 진로가 있다는 생각은 못 했었어요. 제가 대학에 다닐 때에는 재즈댄스 동아리도 없었어요. 댄스스포츠 동아리에 들었는데 원하는 춤이 아니었어요. 저는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춤을 추고 싶었는데 댄스스포츠는 정해진 틀과 포즈가 있고 여자는 남자가 리드하는대로 따라가야했기 때문이죠.”

그는 어릴 때부터 재즈댄스를 시작했다면 유명한 댄서가 될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랬다면 그가 나이가 들어 무대 뒤에 서야 할 때, 지금처럼 잘하는 댄서들을 바라보며 행복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찍 댄서가 됐다면 나이가 든 후 젊었을 때 늘 받아왔던 스포트라이트를 잃고 상실감을 느꼈겠죠. 항상 주인공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조연이 돼도 마음이 상하지 않아요. 주인공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주도적으로 살 수 있거든요.”

그는 재즈댄스를 시작한 지 17년이 된 지금도 열정을 갖고 춤을 추고 안무를 짠다. 그리고 꾸준히 재즈댄스의 트렌드를 공부하며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재즈댄스는 계속해서 트렌드를 따라잡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하는 분야에요. 저는 유투브에 올라오는 재즈댄스 수업을 계속 보고 외국의 댄서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유심히 봐요. 앞으로는 더 정제된 실력의 댄서들이 모여 수업도 하고 공연도 할 수 있는 튠 재즈 컴퍼니를 만들 계획이에요. 제 색깔을 가진 댄서들을 따로 트레이닝시키고 공연팀 만들어서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전 세계 유명 예술인들이 모이는 세계적인 예술축제)’에도 참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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