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약했다. 한 여자가 어린 아들만을 데리고 2001년 뉴욕으로 갔다. 대출을 받아 헤어 액세서리 업체인 ‘Soho(소호)’를 인수해 열었다. 소호는 날로 성장해 미국 곳곳에 10여개의 매장을 연이어 열었고 매장당 월 매출이 2~3억에 이를 정도였다. 이런 그가 소호를 뒤로 하고 돌연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나라의 궁궐, 무궁화 등에서 영감을 얻은 가방 브랜드 ‘쿠미오리’를 새롭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주)퓨리탄의 이지남(장식미술학과․97년졸) 대표를 7일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가 환히 웃으며 건넨 명함에는 ‘get up early’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본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고 남편의 공부를 위해 미국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그는 자신이 원하는 패션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미국에서 접한 패션은 실용적인 면에 집중돼 있었어요. 창의적인 패션을 배우기 위해 1999년에 이탈리아의 마랑고니 패션스쿨(Instotuto Marangoni)을 다녔어요. 그곳에서 패션 공부를 하는 것은 정말 즐거웠어요. 살아있는 공부를 한다는 느낌이었죠.”

2000년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첫 아이를 낳았다. 그는 육아에만 매달리게 되자 점점 디자이너로서의 꿈과 멀어져갔다. 결국 아들을 데리고 뉴욕으로 가 대출을 받은 후 헤어 액세서리 업체인 ‘소호’를 인수해 열었다. “지인이 ‘뉴욕에 액세서리 가게가 있는데 한 번 운영해볼래’하고 물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좋아요’라고 말했죠. 저는 워낙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판매 일도 적성에 잘 맞았어요.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위한 ‘Art’가 아니라 대중의 취향에 민감한 ‘Fashion’을 추구했던 제 철학도 사업에 도움이 됐어요.”

이후 소호는 미국 내에 약10개의 매장을 둘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이 대표는 아이를 제대로 볼 시간도 없이 바빴다. “매일 출장을 다니고, 유축기를 가지고 다니며 모유 수유를 했어요. 일이 바쁘다고 아이를 내버려 둘 순 없었고, 제 앞에 있는 모든 일도 해결해야 했으니까요.  워킹맘의 고충을 실감했어요.”

이 대표는 매일 이런 생활에 지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 때문에 하루에 5시간을 넘게 자 본 적이 없던 그는 문득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저는 원래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무엇을 위해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해졌죠. 소호가 돈만을 좇아 하는 일도 아니었고, 하고 싶은 일이어서 재미있기도 했지만 이렇게 일만 하는 것이 서글프게 느껴졌어요.”

그는 이탈리아에서의 경험을 떠올려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살린 실용적인 디자인을 하고자 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면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세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깨달았죠. 다른 나라의 디자인과 문화를 동경한다고 해도 똑같이 만드는 것 이상으로 그 디자인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 처럼요. 세계에 감동을 줄 무언가는 우리 안에서 나온다는 것을 실천해 보고 싶었어요.”

그가 남편과 함께 만든 (주)퓨리탄의 첫 번째 라인인 쿠미오리는 히브리어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뜻이다. 쿠미오리는 우리나라의 궁궐, 신윤복의 미인도 등을 모티브로 삼아 디자인한 가방을 선보인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경영, 다문화가정과 소외 계층을 지원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쿠미오리를 만들며 항상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 정직하면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컬처 크리에이터(culture creator)’로서 우리나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한류로 전하고 싶어요.”

이 대표는 최근 NewsMaker가 선정한 ‘2012 혁신리더’로 뽑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 이상봉 디자이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뉴스메이커 기사에 실린 자신의 사진이)앞으로 제 인생에 어떤 방향성을 지시해 주는 사진 같았어요. 최근에 만든 가방 라인 이름이 ‘go bag’이에요. 제가 우리나라를 사랑한다는 고백이고, 전 세계에 우리나라를 빛내고자 하는 고백도 담겨 있어요.”

그에게 이화 후배들에게 전하는 조언을 부탁했다. “이화의 후배님들, 자신의 분야에서 ‘문화 창조자’가 되길 바라요. 우리는 각자의 ‘보석’을 가진 사람이에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죠. 그러기 위해선 실력이 있어야 하고, 나를 넘어서 공동체를 생각하는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해요. 공부가 전부 스펙이 되는 것이 아니듯 그 너머에 있는, 그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귀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요.”

임경민 기자 grey24@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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